일주일에 한 번 분당에서 당구 모임이 있다. 이날은 일부러 목적지보다 대여섯 정거장 전에서 버스를 내린다. 걷기 위해서다. 천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좋은 산책로가 있는데, 매번 이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30여 분 걸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당구는 11시부터 시작한다. 회원은 아홉이나 보통 대여섯 명 정도 모인다. 두 테이블로 나누어 4구와 3쿠션 게임을 한다. 나는 하수지만 주로 3쿠션을 친다. 수지는 몇 년째 10이다. 작년에는 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연구를 했지만 별 진척이 없다. 공 다루기가 당구만큼 어려운 종목도 없다. 나이 들어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한다. 이젠 실력이 느는 건 포기했다. 그저 즐기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오후 2시경 게임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인 점심을 한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단, 정치 얘기는 사절이다. 다들 보수 우파들인데 나만 왼쪽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갈 정도의 열성파도 있다. 정치는 입에 올리지 말자는 내 제안을 다들 잘 지켜주고 있다.
식사 뒤에는 바쁜 사람은 가고 일부는 2차 당구를 한다. 대개 서너 명은 남는다. 1차 당구와 점심비는 1/n이지만 이제부터는 게임비나 후식 내기 시합이다. 작게라도 뭔가를 걸어야 재미가 더해지고 열의가 생긴다.
당구가 끝나면 저녁 시간이다. 이날은 성적이 좋았던 H가 치킨집으로 안내했다. 주점 분위기와 치킨/생맥주 맛이 만족스러웠다. 20대 때 함께 지내던 이야기로 따스했다.
그리고 더 늙어 심신이 허약해졌을 때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한 친구가 요사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는 생활 형태를 소개해줬다. 젊은 부부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대신 일정 부분 활동 보조를 받는다는 구상이었다. 다른 친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말했다. 앞으로 10년 뒤에 로봇이 실용화되면 노년의 삶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였다. 로봇과 공존하는 경험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겠다고 웃으며 응대했다.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에도 오전과 같은 코스를 역으로 걷는다. 오로지 홀로 걷는 시간이 좋아서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운 게 흠이다. 특히 올 2월은 예년과 달리 긴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찬바람이 눈에 닿으면 눈물이 줄줄 흘러서 고글을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중무장으로 걷는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걷는 게 좋다. 걸을 때는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쯤 된다. 10여 시간을 밖에서 보낸 피로감이 나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끼리 서로 만나 교류하고 부딪치는 가운데 충족되는 욕구가 있다. 늘 고맙게 생각하는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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