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강남몽

샌. 2011. 3. 8. 07:23

박선녀,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났으나 여상에 다닐 때 예쁜 외모와 몸매로 우연히 모델로 발탁된다. 그녀는 룸살롱 종업원을 거쳐 마담이 되고 강남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번다. 그녀가 만났던 세도가들의 도움이 컸다. 나중에는 대기업 회장의 세컨드가 되어 최상류 계층으로 뛰어오르고, 강남의 백 평 빌라에서 딸과 함께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1995년 그날, 남편의 소유였던 삼풍백화점에 들렀던 그녀는 건물이 붕괴되면서 매몰된다.

임정아도 시멘트 더미 사이에 갇혔다. 그녀 역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삼풍백화점 지하 일층 아동복점 매장에서 근무했다. 그녀의 부모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구로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혼했고 도시 개발로 변두리로 밀려나며 가난하게 살았다. 동생은 다리를 못 쓰는 장애를 가졌다. 파출부를 나가는 어머니가 잘 사는 집 얘기를 하자 임정아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봤자 좋은 차에 널찍한 집에 사는 거지 뭐, 세끼 밥 먹구 사는 건 마찬가지야. 우리가 남에게 해 끼치구 산 적 없잖아. 엄마, 나 정말 열심히 살 거야.”임정아는 맨 마지막으로 구출된 생존자가 되었다.

<강남몽>은 1960년대부터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강남 개발과 인간 욕망을 다룬 황석영의 소설이다.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룸살롱 마담, 대기업 회장, 조직폭력배, 부동산업자, 노동자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돈을 쫓아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던 초기 강남의 어둡고 추잡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와 권력을 이용해 돈을 움켜진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욕심으로 몰락한다. 저자가 소설 제목을 ‘강남몽(江南夢)’이라고 정한 것은 세상살이가 꿈과 같이 덧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꾼 황석영의 소설로서는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웠다. 우선 다섯 개 장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야기가 강남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산만하다. 조직폭력배들 끼리의 이권과 세력다툼, 김진과 그 무리들의 친일과 해방 후 활동은 시대적 배경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서술이 너무 길다. 그래도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탐욕을 소설로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하고 싶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임정아가 구출되는 장면이다. 박선녀와 임정아는 함께 매몰되었고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 “우리 둘이 꼭 살아 나가서 재밌게 지내자구.” “그래요, 사모님.” “앞으로 꼭 하구 싶은 게 뭐야?” “돈 벌어서 내 동생 전동휠체어 사줄 거예요.” “그게 비싼가?” “엄청 비싸죠. 집두 이사 가야 해요. 평지에다 공원 근처에 이사 가면 순아를 데리고 나갈 수도 있고....” “그래, 그거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나 재력이 있는 사람이야.” “내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을 못 벗어났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살아야지.” “그렇지만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그 뒤 박선녀는 더 버티지 못하고 죽었고, 임정아는 구출되었다.

저자는 이야기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시점에서 끝냈지만 강남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강남몽’이 ‘대한민국몽’으로 변했다. 강남으로 상징되는 문화와 물욕은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그러나 신기루가 무너질 때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쌓아놓은 탐욕의 무게에 짓눌려 어둠 속에 갇힐 것이다. 우리는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을까?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 건전한 정신과 노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임정아의 구출을 통해 저자는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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