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분매(盆梅) / 임영

샌. 2019. 3. 27. 10:37

백옥당 안에서 어느 날 문득 피어난 매화여!

벗님과의 술자리에서 고결한 미소를 짓누나

온 천지에 눈 내리고 찬 바람 휘몰아치는데

그대, 짙은 향기를 풍기며 어디메서 왔는가?

 

白玉堂中樹

開花近客杯

滿天風雪裏

何處得夫來

 

- 분매(盆梅) / 임영(林泳)

 

 

올해는 남도 지방에서 몇 그루의 고매(故梅)를 만났다. 매화는 선비가 지켜야 할 정신을 상징하는 꽃이었음을 이번 길에서 확인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말이 나타내듯, 어떤 가난과 고난에도 선비는 지조를 꺾을 없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꽃을 피워내는 매화를 보며,선비들은 위안을 받고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다짐을 했을 것이다.

 

임영(林泳, 1649~1696)은 조선조의 문신이다. 경전과 역사서에 정통하였고,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았다 한다. 실내에서 기르던 분매(盆梅)가 한겨울에 문득 꽃을 피웠다. 벗과 함께 술 한 잔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300여 년 전 분매를 옆에 둔 선비들의 모임 자리가 훤히 그려진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은 스캔들이다 / 최형심  (0) 2019.04.14
한국은 노래방 / 김승희  (0) 2019.04.03
안동 숙맥 박종규 / 안상학  (0) 2019.03.17
슬픔을 물들이다 / 손세실리아  (0) 2019.03.08
동방의 등불 / 타고르  (0) 201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