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여름 오는 길

샌. 2019. 6. 1. 17:27

 

6월이면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그 첫날에 뒷산길을 걷다. 이맘 때 숲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진다. 동네 뒷산인데 깊은 산 속에 온 듯하다. 숲에는 온갖 움직이는 생명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수선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제일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역시 검은등뻐꾸기의 지저귐이다. '홀딱벗고' 새라고 해야 더 알아듣기 쉽겠지.

 

새 소리를 들으며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복효근 시인의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라는 시다.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집 뒤 대숲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나무라듯 웁니다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온몸으로 맨몸으로 첫날밤 그러했듯이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벗고, 홀딱벗고

막 여물기 시작하는 초록빛깔로 울어댑니다

 

 

자꾸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보게 된다. 한여름의 진녹색이 되기 전, 6월 초순까지의 어린티가 남아 있는 나뭇잎 색깔은 곱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숲이 주는 위로를 담뿍 받는다.

 

 

 

이 평안과 행복이 내 노력으로 얻어진 것 아니다. 그냥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세상의 비극이나 눈물에서 한 발 비켜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연일 뿐, 그저 우연일 뿐이다...... 다뉴브 강의 슬픔을 생각하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생신과 고향집  (0) 2019.06.10
두물머리 산책  (0) 2019.06.06
곰배령과 불바라기약수  (0) 2019.05.19
성공회강화성당과 보문사  (0) 2019.05.15
성지(15) - 강화도  (0) 2019.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