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힘없는 자는 / 박노해

샌. 2019. 8. 17. 10:49

힘없는 자는

용서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비굴함이기에

 

힘없는 자는

화해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도피이기에

 

힘없는 자는

침묵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불의의 승인이기에

 

힘을 기르자

저 강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저 사나운 폭력을 끝끝내 품어 안을

끈질긴 힘, 사랑의 힘을

 

- 힘없는 자는 / 박노해

 

 

지난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인용한 시가 김기림의 '새나라송頌'이다. 이 시에는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라는 구절이 나온다. 대통령 메시지의 핵심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그 의미가 엄중하게 다가온다.

 

박노해 시인의 이 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냉혹한 국제 역학 관계에서 힘이 없으면 서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100여 년 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다시는 그런 치욕을 겪을 수 없다는 다짐이 한민족의 핏속에 각인되어 있다. 극일(克日)의 열망이 뜨거운 2019년 여름이다. 그러나 경제의 힘, 군사력의 힘을 넘어 문화의 힘, 사랑의 힘으로 세계를 품어 안아야 한다.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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