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해피 엔드

샌. 2019. 9. 19. 10:23

 

'다가오는 것들'에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강렬하게 남아 올레TV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찾아보았다. '해피 엔드'는 올여름에 개봉한 그녀의 최근작이다. 자막을 보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것 같다. 만든 이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다.

 

'해피 엔드'는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프랑스 상류층의 한 가족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속은 병들어 있다. 밝은 화면과는 대조적이다. 이 영화에서 위페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나온다. 아들을 후계자로 키우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들'에서 보여준 자립적이고 지적인 여성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인지, 이 영화에서는 위페르의 연기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물질의 풍요가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따스한 가슴이 없을 때 인간관계는 서걱거리고 개인은 병든다. 당돌한 열세 살 에바의 행동이 이를 잘 증명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에바는 어머니를 약물 중독으로 입원하게 만들고, 조르주의 자살을 방조한다. 아이의 내부에서 자라는 냉담과 복수심이 섬찟하다.

 

이는 한 가족만 아니라 물질주의로만 치닫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균형을 맞춰줘야 할 종교마저 자본에 종속당한 세상이다. 화려한 집에서 근사하게 살지만 사람들 표정에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이 없는 인간은 좀비에 불과하다. 굉장히 우울한 영화다.

 

'해피 엔드'는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미 '행복[Happy]'은 '끝난[End]' 시대라고, 영화 제목은 말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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