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샌. 2021. 2. 9. 10:45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꽃을 주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두 친구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공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같지 않으니 같은 꽃이라도 보는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쓴 사람은 이명희와 정영란 선생이다. 한 분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다른 분은 약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공통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함께 책을 만들면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분이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 만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다. 거기에 애정이 더해진다면 친구면서 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두 분에게 꽃과 나무는 그러한 존재일 것 같다. 부제가 '오늘 지나는 길, 스치는 나무, 꽃과 바람에게 삶을 묻는다'이다.

 

이 책을 보면서 식물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여러 개 알게 되었다. 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숭숭 뚫린 나뭇잎이 늘 궁금했다. 벌레는 한 잎 전체를 갉아먹지 않고 이 잎 저 잎 옮겨다니며 구멍을 내는 것일까? 식물은 벌레에게 먹힐 때마다 피톤치드라는 방어 물질을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벌레는 피톤치드 냄새를 맡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숲이 피톤치드로 가득한 것은 벌레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혼인목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마침 내가 자주 찾아가는 나무가 혼인목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반가웠다. 식물이나 나무가 서로 배려하며 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도 치열한 생존경쟁이 있다. 나무는 자기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만, "생존을 위한 치열함은 있으나 비열함은 없다." 인간 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한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기에 뿌리를 땅 속에 묻고 온갖 지혜를 짜내었을 것이다. 운명을 탓하며 옆자리를 아무리 탐해본들 소용없고 오로지 신이 주관할 영역이라는 사실을 식물들은 일찌감치 알았을 것이다. 한자리에 선 채로 사랑을 하고 자식을 갖고 또 그들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식물들은 제자리에서 매개자를 부르기 위해 향도 만들고 모양도 맞춰보고 유혹의 미끼로 꿀도 만들어 본다. 바람 불어도 막아줄 어미도 없고 목이 말라도 어느 누가 물 한 바가지 가져다주지 않는다. 식물의 삶은 이 같은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지구 상에서 가장 진화한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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