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설봉공원에서 놀다

샌. 2022. 8. 26. 20:02

이천에 볼 일이 있는 아내와 동행했다가 - 운전기사 역할로 - 남는 시간에 설봉공원에서 혼자 놀았다. 다른 때 같으면 공원의 호수 둘레를 걷든지 설봉산에 오르든지 했을 텐데 이번에는 동선이 적은 쪽을 택했다. 어제 서울에 나갔다가 너무 늦게 들어와서 몸이 피곤해서였다.

 

설봉공원 안쪽에 들어갔더니 '이천 시립 월전미술관'이 있었다.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 화백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그림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미술관 뒤에는 월전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았다.

 

 

1996년의 작품 '야매(夜梅)'다. 달 밝은 밤에 핀 백매(白梅)를 그렸다.

 

淸影淸影 月明人靜夜深

맑은 그림자여 맑은 그림자여, 달 밝고 인적 없는 야심한 밤

 

 

1994년 작 '매화(梅花)'.

 

 

1994년 작 '죽(竹)'

 

 

1977년 작 '장미"

 

 

1990년 작 '수선(水仙)

 

 

1981년 작 '배추'다. 이번 전시에는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그중에 배추가 있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吾畵墨菜高菜値 一帳妄想千金得

停筆回顧爲求食 海內貧民多菜色

筆端煦煦生春風 吁嗟難救吾國貧

此時定有眞英雄 閉門種菜如蟄蟲

 

내 먹으로 배추를 그려 한 폭에 천금을 꿈꿔본다

붓을 멈추고 먹고사는 것을 돌아보니 가난한 백성들 온통 굶주린 안색이다

붓끝엔 훈훈한 봄기운 돌지만 아, 우리나라의 가난은 구제할 길 없구나

이럴 때 아마 진짜 영웅은 문을 걸어 닫고 칩거하여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일 터

 

 

1960년 작 8폭 화훼병풍

 

 

전시실에는 월전 선생의 어록도 적혀 있다. 

 

 

 

가까이에는 '이천 시립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이 개관한 지 20년이 되었는가 보다. '빗장을 열다'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평일의 지방 박물관에 관람객이 있을 리 없다.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해설사 분이 다가오더니 말을 붙인다. "다 아시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이는데 내 태도가 조심스러웠나 보다.

 

해설사가 최고의 색깔이라며 칭찬한 청자양각연판문(靑磁陽刻蓮瓣文)접시. 은은한 빛깔과 접시 밑의 연꽃무늬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달항아리도 있었다.

 

 

박물관 뜰에 있는 '벅수'. 수신(守神)이라고 하며 민속 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사찰,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녀 한 쌍이 나란히 서 있는데 수더분하고 어수룩하며 익살스러워 민중들의 순후하고 절박한 심성을 투영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돌하르방도 벅수의 일종인가 보다.

 

 

의도치 않게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었다. 밖에 나가면 오로지 걷기만 염두에 두다가 이렇게 일탈을 하는 재미도 괜찮았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카페에서 책을 보며 보냈다. 

 

 

요사이는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 코로나로 두 주 넘게 집안에만 갇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어제저녁에는 술자리에 끼였으나 방관자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스무날 넘게 금주를 지키고 있다. 그날 일만 떠올리면 쪽 팔려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아둔한 놈한테는 충격요법이 필요한 법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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