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걷다

샌. 2010. 8. 28. 20:11

여주 밤골에서 떠나온지 3년이 넘었다. 그런데 당시 세금 계산이 잘못 되었다며 추가분 2천여만 원을 더 내라는 연락이 지난 달에 세무서에서 왔다. 농지를 자경한 것 같지 않으니 고세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경작했다는 증빙서류를 붙여 청구서를 제출했는데 인정할 수 없다는 통지를 어제 받았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낭에 물 한 병 넣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 선바위역에서 내려 양재천을 걸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했다. 가는 비는 맞았고 굵은 비는 다리 밑에서 피했다.

 

10년 전 밤골 땅을 구입할 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방학과 주말을 이용해 경작하겠다고 신청해서 여주군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곳 세무서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행정관청인데 한 곳에서는 가능하다고 허가를 해주고, 다른 곳에서는 안 된다는 거다.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 없다.

 

답답하다. 탈서울과 귀농을 예정하고 산 땅이라 정말 온 힘을 다해 농사를 지었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과 인간 관계도 다 포기했다. 주민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아 우리 두 부부의 노동으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했다. 그걸 무엇으로 증명할까? 세무서에서는 무조건 못 믿겠다고 한다. 하늘에 맹세컨대 100% 자경을 했다. 그리고 살기 위한 집도 짓고 거주를 했다. 그 과정에서 흘린 피눈물을 어찌 짧은 글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양재천, 탄천을 지나 한강과만났다. 다리가 아파왔지만 계속 걸었다. 지금은 걷는 것만이 약이 될 것 같았다.

 

돈도 돈이지만 내 땀과 이상이 모독당한 것 같아 더 속 상하다. 순수한 삶을 찾아 선택한 귀농이 투기범으로 몰리고 있다.다시 이의 신청을 할 것이고 그것도 안 되면 법의 심판이라도 받을 것이다.

 

세무 집행이 엄격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세금을 납부하고 3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잘못 되었다며 수천만 원의 돈을 더 내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그것도 납세자의 주장은 무시해 버린다. 그들이 내세우는 법 조문과 원칙은 너무나 견고해 보인다.

 


청담대교 하류쪽 둔치길이 넓게 확장되어서 걷기에 편했다. 15:00, 잠원지구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면했다.

 

그리고 세무소에서 말하는 실거주 기간 1/2 이상이라는 기준도 그렇다. 이제 와서 실제 거주한 날짜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민등록이전과 전기 사용, 농사 짓기 등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나는 여름방학 대부분과 주말,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는 평일에 그곳에 있었으니 1/2 조건도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획일적으로 서울에 직장이 있으니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독단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가리 한 마리가 철학자의 자세로 한강 교각 아래 앉아 있다. 먹이를 구하는모습 같지는 않다. 물이 불어난 깊은 한강물을 보며 왜가리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어제 저녁에는 SBS TV의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지가 절단된 50대남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었다.전립선암 검진을 받다가 대장균이 혈액에 들어가 패혈증에 걸린것이다. 의료사고였다.남자는 온 몸이 썩어들어가서 사지와 코를 절단해야 했다. 멀쩡했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불구자로 변했고 가정은 풍지박산이 났다. 병원에서는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 이 분, 그 지경이 되어서도 의사가 어디 고의로 그랬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발버둥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았는지모른다. 원망하고 한탄할 수록 자신만 더 상할 뿐이다.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왔다. 걸음을 바삐 했다. 국립현충원 옆 산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여섯 시간 동안의 긴 걸음이었다. 그리고 길 옆의 꽃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걸은 시간; 11:00 - 17:00

* 걸은 거리; 25 km

* 걸은 경로; 선바위역 - 양재천 - 한강(청담대교-영동대교-성수대교-동호대교-한남대교-반포대교-동작대교) - 산길 -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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