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다. 수령은 900년 정도 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의 한 고사와 관계되어 유명하다. 고려 공왕양 2년(1390)에 목은 이색(李穡) 등이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청주옥에 갇혔을 때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이색과 권근이 모두 체포되어 청주옥에 구금되었는데, 국문이 매우 혹독하여 일이 어찌될 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는 새벽부터 비가 쏟아져 한낮이 못되어 산이 무너지고 물이 솟아 넘쳐서 성문이 허물어져 물이 넘쳐 성안으로 들어오니, 가옥이 모두 물에 잠겼다. 문사관(問事官)이 물에 빠져 떠내려가다가 압각수(鴨脚樹)를 붙잡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석방하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색과 권근이 보전할 수 있었다. 처음에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이 이색과 권근 두 분이 무고되어 옥에 갇혔다는 소문을 듣고 말하기를, “두 선생은 바로 하늘이 특별히 낸 사람이라 반드시 하늘의 도움이 있을 것이다.” 하더니, 그 말이 마침내 맞았다.’
후에 권근(權近)은 이런 시를 남겼다.
流言不幸及周公
忽有嘉禾起大風
聞道西原洪水漲
是知天道古今同
근거 없는 소문으로 주 무왕의 아우 주공에게 불행이 미치니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 벼를 쓰러뜨렸네
고려 공양왕이 청주에 큰물이 넘쳤다는 말을 듣고
하늘의 뜻이 예나 이제나 같음을 알았도다
이는 7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이 은행나무는 200살 쯤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홍수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이 충분히 구조 받을 수 있는 크기였다 할 수 있다. 얼마나 큰물이었으면 옥사가 유실되고 이색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 나무에 올라가 화를 면하였을까 싶다. 권근은 이 일을 옛날 주공의 고사에 비유하여 시를 지었고, 공양왕도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모두를 석방하였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키가 20 m, 줄기 둘레가 8.6 m이다. 압각수(鴨脚樹)란 은행잎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은행나무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