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을 보러 갔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데 2004년에 처음 만난 이래 이번이 네번 째다. 백송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되었다. 나이가 600살이고 키는 15 m다. 또한 제일 아름답다. V자 모양으로 뻗은 줄기는 멀리서 보면 눈부실 듯 하얗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와 있지만 옛날에 이곳은 풍양 조씨 집안이 대대로 살던 터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풍양 조씨는 판서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명문이었다. 영조 때는 조상경 판서가 살았던 집이었다. 풍양 조씨가 득세할 때는백송의 껍질이 유난히 희게 보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에 안동 김씨가 세력을 얻으면서 백송은 흰빛을 잃어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물론 풍양 조씨 쪽에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뒤에 이 터는 개화파인 박규수에게 넘어갔다. 나무 옆에는 박규수의 집터였다는 안내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 뒤에는학교가 들어섰다가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자리잡고 있다. 백송은 그대로건만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권세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기득권을 지키려고도 했고 새 세상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 나무 아래에 서면 더욱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백송 주변은 고즈넉한 쉼터로도 좋다. 다만 헌법재판소 구내이니 정문에서 허락을 받고 출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