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옷은 많이 헐었으나 잘 기워 입었고
띠를 단정하게 매고
신발은 떨어졌으나 끈으로 잘 묶고
위나라 혜왕을 알현했다.
혜왕이 물었다.
"선생은 어찌 이리도 고달픈 신세가 되었습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가난할 뿐 고달픈 것은 아닙니다.
선비가 도와 덕을 행할 수 없으면 고달픈 것이고,
옷이 해지고 신발이 구멍 난 것은 가난일 뿐
고달픈 것은 아닙니다.
가난은 이른바 때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莊子衣大布而補之
正혈
係履
而過魏王
魏王曰
何先生之憊邪
莊子曰
貧也非憊也
士有道德不能行憊也
衣弊履穿貧也
非憊也
此所謂非遭時也
- 山木 6
장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게 거의 없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짧은 한 문장으로, 장자의 이름은 주(周)며 송나라 몽(蒙) 지방 사람으로 칠원(漆園)에서 말단 관리를 했다는 기록만 전한다. <장자>라는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공자의 말씀 뿐만 아니라 행적도 자세히적힌 <논어>와 다른 점이다. 그러기에 산목에 나오는 이 구절은 상당히 소중하다.
장자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장자>의 다른 곳에서도 먹을 양식이 없어 친구에게 꾸러 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고 장자가 가난을 찬양하고 부를 경멸한 디오게네스 같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자신이 가난한 것이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물질에 구애 받지 않았을 뿐이다.위 혜왕은 가난하니 고달플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장자에게 가난은 자유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풍요나 궁핍이 아니라 물질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다. 돈에 집착하는 부자는 돈의 노예일 뿐이다.
'산목'에 나오는 이 구절을 통해 돈과 권력에 초연한 장자의 면모를 읽는다. 생사마저 초월한 장자에게 그것들은 한낱 부스러기만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의 마음에 있음을 장자는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이 외적 성취를 과시하려고애 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