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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

불두화(佛頭花)는 이름 그대로 '부처 머리를 닮은 꽃'이다. 흰 꽃이 둥글게 모여있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곱습곱슬한 부처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해서 누군가가 이름을 재미있게 붙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불두화는 무성화라고 한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고, 곤충을 유혹하든 아니면바람이나 다른 자연의 힘을 빌리든 수분을 하고 씨를 맺는다. 꽃의 아름다운 색깔, 향기는 그들 생존의 한 방편인 것이다. 불두화는 꽃은 있지만 이런 생식기능이 없다. 그래서 분주나 삽목으로 번식을 한다. 아마도 사찰에 불두화를 많이 심은 것은 그 명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속세의 연을 끊고 수도의 길을 걸어가려는 마음과 이런 꽃의 성질과 닮아서이지 않을까 싶..

꽃들의향기 2005.06.28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국화 옆에서 / 서정주 누군지 이름이 기억하지 않지만 어느 물리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여기서 꽃 한 송이를 꺾으면, 저 멀리 있는 별이 흔들린다." 아마 이물리학자는 우리 우주계가 서로간의 만유인력에 의해 얽혀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물질세계만 이렇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세계나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세계도 이..

시읽는기쁨 2005.06.27

작은 연못

교정에 작은 연못이 있다. 수면에는 꽃 그림자가 비치고, 물에는 금붕어와 잉어들이 살고 있는 언제 보아도 평화로운 작은 세계이다. 금붕어는 수면 근처에서 아기자기하게 놀고 있고, 잉어는 속에서 의젓하게 돌아다닌다. 자신들이 놀고 있는 영역이 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경계는 없다. 가끔씩 잉어가 수면으로 떠올라와도 금붕어는 개의치 않는다. 금붕어는 이름 그대로 노는 양이 귀엽고 재미있다. 물에 비친 꽃잎과도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금붕어는 움직이는 꽃잎이다.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

사진속일상 2005.06.24

인디언 이름

‘자연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한 종족이나 민족 전체가 자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희귀할 것이다. 그래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이야 말로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소개한 책을 읽어 보면 인디언들은 생래적으로 자연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적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나는 부족의 어른과 함께 산길을 가다가 지팡이가 필요해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새로운 지팡이를 들고 자랑스럽게 걷고 있는 나를 보고 부족의 어른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그것을 손에 넣었는가고 물었다. 나무에게 허락을 구했는가? 꼭 필요한 만큼만 잘랐는가? 나무에게 선물을 바쳐 감사의 표시를 했는가? 내가 그냥 나뭇가지를 잘..

길위의단상 2005.06.23

항복

풀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두 손을 들었습니다. 터를 장만하고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농약은 사용하지 말자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제초제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풀도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자연에 가하는 인위적인 통제를 최소로 하면서 작물을 가꿔보고도 싶었지만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그렇게 했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일 테니 그것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깔끔한 것이 보기에는 좋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시골에서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화단만 하더라도 적당히 풀과 어우러져서 꽃들이 피어있는 쪽이 저에게는 훨씬 더 보기에 편합니다. 이것도 풀이 적당히 나 있을 때 얘기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잠깐만 방심하면 풀은 온 터를 점령해 버립니다. ..

참살이의꿈 2005.06.22

작약

작약은 늘 모란과 비교되면서 얘기 된다. 그것은 작약과 모란은 겉으로 보기에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작약은 풀이고, 모란은 나무이기 때문에 사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옛 사람들은 둘 중에서 모란을 더 아꼈던 것 같다.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작약에 대해서는 별로 그런 언급이 없다. 작약(芍藥)이라는 이름 그대로 꽃 보다는 약 쪽에서 더 귀히 여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작약이 모란보다 훨씬 더 예쁘고 정감이 간다. 모란이 남성적이라면 작약은 여성적이다. 지난 번 강원도에 갔을 때, 아직도어느 집 뜰에피어 있는 작약을 만났다. 모란이 지고난 후 작약이 피는데, 그 작약도 이미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강원도는 역시 기온이 낮은지 우연히 올해의 마지막 작약..

꽃들의향기 2005.06.21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하늘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좋아..

시읽는기쁨 2005.06.20

내가 바라는 세상

나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자랑하기보다는 좀 못 살더라도 계층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 정신적으로 풍요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이(利)를 쫓기보다는 의(義)를 먼저 구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 년째 그칠 줄 모르는 부동산 광풍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모두가 돈 앞에서는 천박하고 저열해지는 것 같다.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마찬가지다. 국민대부분이 투기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일말의 수치심이나 양심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의식주는생활의 기본일진대 이것은 인간으로서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이다. 제발 다른 사람의 몫을 뺏아 자..

길위의단상 2005.06.18

감자꽃이 피었습니다

터에 심은 감자에 꽃이 피었습니다. 세 고랑에다 주로 흰감자를 심고, 한 쪽에 자주감자를 심었는데 거름기가 별로 없는 땅인데도 잘 자라주더니 예쁘게 꽃이 피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주감자가 익숙치 않은지 크는 모습을 보더니 작약이 아니냐며 묻습니다. 자주감자는 꽃이 자주색깔이고,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 보니 줄기가 붉은 것만 아니라 잎도 작약을 닮기는 했습니다. 권태응님의 '감자꽃'이라는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정말로 자주감자는 꽃도 줄기도 자주색깔입니다. 아직 캐보지는 않았지만 땅 속에서 크고 있는 감자도 자주색깔일 것입니다. 감자를 실제 기르며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런 단순한..

참살이의꿈 2005.06.17

동생은 재주꾼

동생은 재주꾼이다. 뭐든 못하는 일이 없다.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도시 생활을 접고 가족과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벌써 4년이 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손으로몇 년에 걸쳐 흙집을 지었다. 그동안은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이번에 갔더니 많이 정리가 되고, 생활도 안정되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농사도 짓고, 산으로 약초도 뜯으러 다니며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제 마음의 여유도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집 입구에 있는 장승도 동생이 직접 만든것이다. 또 서각을 배우더니 자신의 집을 '達屯煙家'라 칭하고멋지게 글자를 새겨 길 옆에 걸어 두었다. 민박을 겸하고 있으니 집의 간판인 셈이다. 동생은 이웃들과도 잘 어울린다. 귀농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웃과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동생은 처신을..

사진속일상 200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