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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읍리 산수유마을

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개군면에 있는 산수유마을에 들리다. 양평군 개군면에서는 이번 주말에 산수유축제가 열리는데 내가 찾은 곳은 주읍리였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니 산수유꽃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전체가 노란 산수유꽃으로 덮여 있었다. 생각보다 꽃도 예쁘고 나무도 연륜이 오래 되었으며 규모도 컸다. 작은 디카를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마을 뒤편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 인상적이었다. 마당에 나와계신 할아버지에게 산 이름을 물었더니 해발 515m의 주읍산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나무 하러 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셨다는 얘기도 해 주신다. 아직 축제 전 평일인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흘깃 눈길을 돌려보니 수채화로 그린 산수유마을 풍경이..

꽃들의향기 2006.04.05

물을 넣다

동파를 막기 위해 보일러의 물을 빼고 겨우내 비워두었던 터에 다시 물을 넣었다. 물 빼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물을 넣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체한 보일러를 다시 연결하고 에어를 빼내기 위해 보일러관에 물이 꽉 차게 하는 일에거의 두 시간 정도걸렸다. 넉 달이 넘어서 다시 보일러가 돌고 바닥에 온기가 돌아오니 마치 냉동인간이 깨어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집도 정이 들면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아껴 주고 잘 관리해 주면 활기에 차 보이지만, 무관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왠지 쓸쓸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일러를 통해 물이 돌아가고 그래서 발바닥으로 따뜻한 기운이느껴질 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었다. 이젠 터에서 정을..

참살이의꿈 2006.04.05

봄비가 촉촉이 내리다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남쪽 지방에는 많은 비가 내리는 것 같은데 이곳은 무엇이 그리 조심스러운지 곱게만 내린다. 초봄이면 늘 가뭄에 시달리는데 그래선지 이맘 때 내리는 비는 모두에게 반갑다. 사무실 앞 활짝 핀 목련과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하는 매화가 봄비를 맞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남녘은 이미 매화가 졌겠지만 여기는 이제 시작이다. 느릿느릿한 봄의 여신의 발걸음이 드디어 이곳에도 도착했다. 온 들판을 눈부시게 장식하는 꽃의 향연이 아니면 어떠랴. 한 그루의 매실나무, 한 송이의 매화에도 온 봄의 정기가 담겨있는 것을. 이런 날은 봄이 오는 들길을, 아니면 호젓한 산길을 걷고 싶다. 도시의 매연 냄새 아직 모르는 공기로 호흡하며, 온통 살아있는 존재들의 숨소리 듣고 싶다. 저 질식할 것 같은 벽돌길 대..

사진속일상 2006.04.04

봄 감기

봄 감기가 가족 전체에게 찾아왔다. 제일 먼저 아내에게 나타난 증상이 아이들을 거쳐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아내는올봄에 특히 더 힘들어한다. 감기뿐만 아니라 몸 이곳저곳이 아파 몇 주째 바깥 나들이를 못하고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 가족에겐 잔인한 봄이 되고 있다. 젊은 아이들은빨리 회복이 되는데 어른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아내는 약과 병원을 무척 좋아한다. 좋아한다기 보다는 믿는 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반면에 나는 되도록이면 병원이나 약 사용을 삼가한다. 한번 아플 때마다약을 먹어라, 병원에 갔다와라는 아내의 잔소리와, 안 먹는다, 안 간다라는 내 고집이 부딪쳐 마찰음이 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감기의 경우에는 약의 효능을 나는 별로 믿지 않는다. 대신에 최상의 방법은 푹 쉬는 것이라고 ..

사진속일상 2006.04.04

입장의 동일함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 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 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잘 알려진 신영복 님의 글이다. 님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한 '입장의 동일함'이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과연 내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가끔씩 이리저리생각해 보게 된다. 관찰에서 애정, 애정에서 실천적 연대, 실천적 연대에서 입장의 동일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나와 그것에서 나와 너의 단계를 지나 궁극적으로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는 말을 잘 쓰..

길위의단상 2006.04.03

TAO[15]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타오를 깨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보일 듯 말 듯 신비로우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깊이는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그윽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달라고요? 글쎄요, 언어로 표현하려면 비유를 들어 말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의 신중한 몸짓은 살금살금 살얼음 강을 건너는 아낙네 같으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은 난생 처음 산길을 지나는 나그네 같으며, 다소곳한 모양새는 남의 집을 처음 방문한 손님 같으며, 남과 노니는 모습은 얼음이 녹아 물 흐르듯 부드럽네요. 그 소박한 모습은 산에서 갓 빼어내 다듬지 않은 통나무 같으며 그 마음의 깊이는 탁 트인 계곡을 연상케 하네요. 고여 있어서 희끄무레한 탁류 같다가도 흘러 흘러 어느새 깨끗한 청정수 - ..

삶의나침반 2006.04.02

돌단풍

풀을 보면 그들도 좋아하는 환경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햇빛을 좋아하는 놈, 응달을 좋아하는 놈, 습기 많은 땅을 좋아하는 놈, 건조한 곳을 좋아하는 놈 등 풀마다 각양각색이다. 인간의 눈에는 척박한 땅으로 보이건만 굳이 그런 땅을 자신의 터로 잡고 살아가는 풀도 있다. 환경이 좋아보이는 곳으로 옮겨주면 도리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흔히 사람들이 산에 있는 꽃을 캐 와서 화단에 심는데 어쩌면 그건 인간의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돌단풍은 말 그대로 돌이나 바위 틈에서 자란다. 아마 그곳이 돌단풍에게는 가장 따스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일 것이다. 이른 봄에 돌단풍이 꽃몽우리를 달고 꽃대를 내미는 모습은 앙징스러우면서도 힘차다. 그리고는 곧 화..

꽃들의향기 2006.04.01

TAO[14]

다섯 가지 감각으로 느낄 수 없어도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답니다. 티끌보다 더 작은 것은 아무리 보려고 발버둥 쳐도 보이지 않지요. 도둑 발자국 소리보다 더 작은 것은 아무리 들으려고 발버둥 쳐도 들리지 않지요. 스르르 미끄러지는 실크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아무리 만지려고 발버둥 쳐도 만져지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작은 것보다 더 작은 것은 작으니까 서로 잘 섞인답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부드럽게 녹아있는 공간, 그곳이 '무(無)' 혹은 '공(空)'으로 보일지라도 진정으로 존재하는 곳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곳은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고 이 세상 환히 비추는 밝음만 있는 게 아니고,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고 이 세상 시커멓게 물들이는 어둠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하얗다가 까맣..

삶의나침반 2006.03.31

꽃샘바람 속에서 / 박노해

꽃샘바람 속에서 우리 꽃처럼 웃자 땅속의 새싹도 웃고 갓나온 개구리도 웃고 빈 가지의 꽃눈도 웃는다 꽃샘바람에 떨면서도 매운 눈물 흘리면서도 우리 꽃처럼 웃자 봄이 와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봄이 오는 것이니 - 꽃샘바람 속에서 / 박노해 꽃샘바람을 따라 감기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특히 목이 아픈데 아무래도 최근의 술과 담배를 즐긴 탓인가 보다. 올봄은 봄을 시샘하는 바람도 세고, 기상 변덕도 심하다. 오늘도 기온의 일교차가 15도가 넘는다고 예보되어 있다. 몸이 적응하기에 무리가 된다. 살다보면 인생의 꽃샘바람도 여러 번 겪는다. 세상사란 좋은 일이 생길수록 그것을 시샘하는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법이다. 그래도 웃자! 꽃샘추위가 있음으로써 봄은 더욱 화사하게 빛난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

시읽는기쁨 2006.03.31

일십백천만 구구팔팔이삼사

며칠 전 모임에서 한 분이 재미있는 말을 소개해 주었다. 사람이 나이들어 가면서'일십백천만'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어 했다. 마침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걸 그림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기에 퍼와봤다. 또 '구구팔팔'이라는 말은 들어보았는데 요사이는 뒤에'이삼사'가 붙는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으니 실소가 나왔다. 어쩌면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일 - 우리 하루 한가지 이상 좋은일 하고 살아야겠지요. 십 - 최소한 하루 열사람 이상 만나 정을 나누고 백 - 하루 백자는쓰고 천 - 천자 정도는 읽고 (신문만 읽어도..) 만 - 하루 최소한 만보는 걸으며 살아야지요. 이렇게 살다보면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수있답니다. 2- 이틀 정도 앓다가 3- 사..

길위의단상 200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