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393

비 오는 날의 공상

봄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에 시작된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 낮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이슬비로 변해서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안개에 잠긴 듯 희뿌옇다. 며칠간 계속되던 더위가 도망을 가 버렸다. 또한 농촌에는 고마운 단비가 될 것이다. 밭에 심은 모종들이 건조한 태양의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긴다. 이런 날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한적한 바닷가에 가고 싶다. 그리고 인적 드문 해안가를 쓸쓸히 걷고 싶다. 옆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말이 없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다. 바닷가 작은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것이다. 넓은 유리창으로는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낙..

길위의단상 2005.05.06

꽃사과나무

이사 온 이곳 동네에는 주변에 꽃사과나무가 많다. 둘레의 화단이나 인근 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주종이 꽃사과나무이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보기 좋더니, 봄이 되니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처음에는 분홍색 봉오리가 맺히더니 꽃이 피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온 나무가 하얗게 덮인다. 이름이 예쁜 꽃사과나무는 관상수로서 아주 좋을 것 같다. 또한 열매는 새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찾아오는 새들이 없어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데, 나무밑에 주차해 있는 차들이 떨어진 열매의 진액으로 지저분해진 것을 자주 보았다. 봄의 하얀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빨간 열매, 마당의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꽃사과나무 한 그루 쯤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의향기 2005.05.05

운동의 즐거움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운동을 자주 하고 있다. 업무에서 많은 부분 해방이 되어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주로 하는 운동은 테니스인데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공을 맞추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통쾌하게 웃고, 고함을 지르는 유일한 시간이 이 때이다. 하루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몸무게가 4 kg이나 불어났다. 그러나 3, 4월 두 달간 열심히 땀을 흘린 덕분인지 2 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몸 컨디션이 아주 좋다. 몸은 정신에 비해 무척 단순하다는 것을 느낀다. 신경을 쓰고 다듬는 것만큼 그대로 반응한다. 비하여 정신세계는 아직 내적 법칙을 몰라서인지 난해하고 불가해하기만 하다.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를 않는다. 햐얀 길..

사진속일상 2005.05.04

두 스님의 대화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긴 기간의 단식을 마치고 이제 활동을 재개한 지율스님이 대원사로 도법스님을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도법스님은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 순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두 분간에 나눈 대화가 마침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일부를 옮겨 본다. 기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사보다는 이 대화를 통해두 분의 생각과 느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고뇌하고 흔들리는 솔직한 모습도 보인다. 대화 중에서 지율스님이 말씀하신 동화와 전설이 사라진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특히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에 대한 영혼의 떨림이 없는 환경운동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은 머리 보다는 가슴, 이성 보다는 감성을 원한다. 사실은 이 시대가 동화와 전설을 쫓아내고 있다. ..

길위의단상 2005.05.03

새싹

콩, 고구마, 토마토, 그리고 다시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이곳 분들은 고구마를 꽂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감자도 놓는다고 하구요. 보통 우리는 나무고 작물이고 전부 심는다고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종류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게 재미있습니다. 사실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본 사람이라면 '감자를 놓는다' 그리고 '고구마를 꽂는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고맙고도 재미있습니다. 산은 벌써 신록의 색깔을 입기 시작했지만, 밭에는 이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 심었던 옥수수는 5 cm 정도 키가 자랐고, 감자싹도 덮여있던 흙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옥수수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아침에 볼 때와 저녁에 볼 때가 다릅니다. 지금의..

참살이의꿈 2005.05.02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창문을 열자, 새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내 사랑, 내 마음이 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소나무 가지 사이에 새 한 마리 휙 날아간다 고마워, 내 사랑, 저 날아가는 새들을 보여 주다니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들은 먼 곳에서 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심장보다도 더 가까운 곳 내 눈물, 웃음보다 더욱 더 가까운 곳 그곳에 님이 있었다 고마워, 내 사랑 정말 고마워 -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시인이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하는 내 사랑은 누구일까? 사랑은, 창문 밖의 새소리를 볼 수 있게 해 주고,작은 풀꽃의 미소를 들을수 있게 해 준다. 그 사랑은 내 심장..

시읽는기쁨 2005.04.29

자주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 꽃 모양이 비슷하다. 대개 괴불주머니는 노란색이고 현호색은 자주색 비슷해서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자주괴불주머니는 색깔 마저 현호색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기나 꽃대에 꽃이 달린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 괴불주머니 쪽이 현호색 보다는 꽃이 크고 꽃대를 따라 총총이 달려있다. 사실 비슷한 종류 사이에는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왠일인지 잎의 모양은 잘 입력이 되지 않는다. 주로 도감을 찾아보며 꽃의 이름을 익힌 터라 어떤 경우에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자주괴불주머니는 군락을 이루며 자라길 좋아하는 것 같다. 봄날 산기슭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자주괴불주머니 꽃밭은 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환하게 해 준다.

꽃들의향기 2005.04.28

M51

- 허블망원경이 찍은 나선은하 M51 (사진출처; hubblesite.org) 오늘 신문에 일제히 허블망원경이 찍은 아름다운 은하 사진이 실렸다. 특히 경향신문에는 1면에 M51 은하의 대형 사진이 실렸다. 최근에 허블이 찍은 것인데, 지금껏 인간이 촬영한 최고 해상도의 M51 사진이라고 한다. M51은 지구에서 37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로 지름이 10만광년 정도이며, 1천억 개의 항성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은하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며, 나선은하 중 아름답기로 이름난 은하이다. 이제 허블망원경은 15년 간의 활동을 끝내고 곧 기능이 상실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름 240cm의 렌즈를 달고 지구 궤도를 돌면서 그동안 70만 장의 선명한 사진을 찍어서 우주의 경이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

사진속일상 2005.04.27

저 연초록 세상

지금 산야는 온통 연초록세상입니다. 겨울의 황량하던 풍경이 어느새 기적처럼 저렇게 변했습니다. 땅은 초록의 물감을 비밀스레 숨기고 있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지상으로 쏟아낸 듯 합니다. 아직 신록에 들기 전이지요, 연두빛과 연초록이 뒤섞인저 찬란한 색깔의 향연에 초대받은 나는 행복합니다. 터에 오가는 길에 만나는 봄숲의 자태에 넋을 잃습니다. 저 빛은 병아리의 지저귐이고,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망울입니다. 갓난 아기의 해맑은 미소입니다. 누가 절망을 얘기하나요? 저 연초록 세상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혁명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터에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고개가 있습니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감사와 외경의 마음으로 저 연초록 세상을 바라봅니다.

참살이의꿈 200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