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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O[4]

타오는 공(空)에서 시작해요. 그곳은 아무리 퍼 올리고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신비의 우물. 모든 것이 나오는 고향일지도 몰라요. 타오의 몸짓은 섬뜩하게 솟은 예리한 칼날을 두루뭉술하게 갈아 주고요, 딱딱하게 엉킨 실을 술술 풀어 주고요, 잔뜩 화가 나서 쭈뼛쭈뼛 솟은 머리를 살살 어루만져 주고요, 하늘하늘 가볍게 춤추는 티끌을 조용히 잠재우지요. 그러니 타오는 깊은 숲 속 깊은 계곡과 같답니다. 그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면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가게 되지요. 그곳은 흘러 흘러 이제 다 왔겠지 하면 또 앞이 보이는 곳이지요. 그러니 누가 저에게 '넌 누구의 자식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타오의 자식이에요'하고 대답할래요.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삶의나침반 2006.03.14

교문 풍경

학기초가 되면 고등학교 교문에는 연례행사처럼 이런 플랭카드가 걸린다. '서울대 및 의대 00명, 연세대 00명, 고려대 00명, 서강대 00명, 성균관대 00명, 한양대 00명,...... 기타 4년제 대 00명'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아마 저기에 들어간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서열화된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연장되면 서열화된 계급사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뻔하다. 플랭카드에서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면 의대에 입학해도 서울대 통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작금의 의대에 몰리는 세태를 읽어볼 수 있다. 요즈음은 실업계 고등학교도 여기에 동참하는 것 같다. 이젠 실업계 고교 입학도 좀더 쉽게 대학에 가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자식의 대학 입학은 대한민국 온 가정의 중..

사진속일상 2006.03.14

TAO[3]

세상은 머리 좋은 사람이 최고라고 하네요. 그러니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알려고 아둥바둥할 수밖에요. 세상은 금은보석이 최고라고 하네요. 그러니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복달할 수밖에요. 세상은 더 똑똑해지라고 더 많이 가지라고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것까지 욕심내라고 재촉하지요. 그러니 아둥바둥, 안달복달할 수밖에요. 하지만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헛된 욕심과 부질없는 야망을 모두 잊어버린답니다. 그저 배부르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세상이 더 똑똑해지라고 더 많이 가지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철면피 정치가, 악덕 기업가 발붙일 틈 없겠지요. 그래요. 헛된 욕심과 부질없는 야망일랑 접어 두고 타오의 문을 열어 보세요. 그려면 분명 타오의 길이 보일 거예요. 비록 좁다란 골목길일지라도. 不尙賢, ..

삶의나침반 2006.03.13

성읍리 느티나무

지난 달에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을 찾아들어가니 집집마다에서 사람들이 나와 안내를 자청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개별적으로 안내를 하고 나중에 특산품을 사 가라고 권유한다고들 한다. 나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유롭고 둘러보고 싶어도 주민들 시선이 부담이 돼 망설이게 된다. 마치 현대식 쇼핑 매장에서 점원들의 호객 행위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속적인 면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느티나무에 대해물으니 실망하는 눈치로 위치를 알으켜 준다. 성읍마을은 조선시대 약 500 년간 지금 식으로 하면 군청 소재지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그 전 고려 시대 때부터 이곳에 나무가 울창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수령 1천 년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의 역사도 그 때까지 올라가는 것 같다. 길..

천년의나무 2006.03.13

TAO[2]

하늘과 땅이 태어나고 그 사이에 이름이라는 것이 붙여졌지만, 이름이란 겉모습을 말하는 그저 이름일 뿐.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다른 몸이 아니랍니다. 아름다움은 추함이 있기에 아름답다 부를 수 있는 것이지요. 좋음과 나쁨도 마찬가지랍니다. 좋은 게 있으니까 나쁜 게 있지요. 나쁜 게 있으니까 좋은 게 있지요. 맞아요. 세상의 모든 '있음'은 '없음'이 존재하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서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편만 존재해서는 안 된답니다. 그렇다면 긴 건 어떨까요? 짧은 게 있어서 긴 게 있지요. 높은 건 어떨까요? 낮은 게 있어서 높은 게 있지요. 앞뒤는 어떨가요? 앞이 있어야 뒤가 있지요. 그러니 타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조금 아는 걸 많이 안다고 떠벌리지 않아요. 그저 세상의 중심에 ..

삶의나침반 2006.03.12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보다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Y 형과 같이 수리산을 찾았다. 사진으로만 접한 변산바람꽃이 너무나 예뻐서 지난 달에는 변산까지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다행히 서울에서 가까운 수리산에도 변산바람꽃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간 것이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높이가 500m에도 못 미치는 수리산을 오르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올들어 처음 황사가 나타났고,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여 시정 또한 좋지 않았다. 슬기봉에 오른 뒤 동막골을 향해 내려가는 계곡길에서 정말 바람같이 나타난 변산바람꽃 군락지를 만날 수 있었다. 4시간여 산길을 걷는 동안 꽃이라고는 유일하게 만난 것이다. 어디서 피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찾은 산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둘이서 악수를 나누며 환호 하였다...

꽃들의향기 2006.03.11

TAO[1]

'이것이 타오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타오가 아니랍니다. '이 이름이 타오랍니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타오가 아닙랍니다. 그것을 타오라고 말하거나 타오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유는 타오라고 말하기 이전에 타오라고 이름 붙이기 이전에 이름 없는 타오의 세계가 아득히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 그럼 이름 없는 세계로 떠나 볼까요? 옛날 옛날에 이름 없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없는 세계에서 하늘과 땅이 태어났지요. 바로 그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루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름들이 태어났답니다. 그러니 하늘과 땅은 이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지요. 본디 이름 있는 것에는 욕심이라는 녀석이 딱 달라붙어 있답니다. 욕심이 달라붙으면 이름 있는 것의 겉모습만 보인..

삶의나침반 2006.03.10

운동의 즐거움

긴 동면을 마치고 흙을 밟으며 운동을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지금의 나에게는 운동이야말로 생활에 활력을 주는 묘약이다. 육체적 활동이라면 걷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운동은 테니스가 유일하다. 지난 가을에 어깨를 다친 뒤로 반 년 가까이 코트에 나가지 못했다. 봄이 찾아오고 다시 날씨가 따스해지니 오랜만에 라켓을 들고 동료들과 시합을 즐겼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치기도 하고, 상대방 실수에 대해 박장대소를 하면서 그동안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날려버릴 수 있었다. 평소에는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 살피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테니스장은 나에게는 일탈의 작은 해방구이다. 정형화된 시공간적 리듬에서 벗어나서 정신적 이완을 경험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육체적 활력은 내 지..

길위의단상 2006.03.09

내소사 전나무 길

꽃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다르듯, 숲에도 그만의 향기와 색깔이 있다. 그래서 숲에 들 때 받는 느낌도 여러 가지이다. 같은 숲이더라도 때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내소사 전나무 길은 수령이 100여 년 된 전나무 숲 사이로 사람의 마을과 절을 연결해 주고 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의연하고 당당하다. 이 길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다. 속세를 등지고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상징성 때문일까, 세속에 물든 탐진치 삼욕이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따라 모두 씻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설법을 꼭 법당에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이 숲에 들면 사람의 음성이 아니더라도 나무가 해주는 설법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일상에 지치고 마음 상한 사람이라면 자연이 주는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06.03.08

마흔 살의 동화 / 이기철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부는 바람 따라 길 떠나겠네 가다가 찔레꽃 향기라도 스며오면 들판이든지 진흙 땅이든지 그 자리에 서까래 없는 띠집을 짓겠네 거기에서 어쩌다 아지랑이 같은 여자 만나면 그 여자와 푸성귀 같은 사랑 나누겠네 푸성귀 같은 사랑 익어서 보름이고 한 달이고 같이 잠들면 나는 햇볕 아래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겠네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내 가진 부질없는 이름, 부질없는 조바심 흔들리는 의자, 아파트 문과 복도마다 사용되는 다섯 개의 열쇠를 버리겠네 발은 수채물에 담겨도 머리는 하늘을 향해 노래하겠네 슬픔이며 외로움이며를 말하지 않는 놀 아래 울음 남기고 죽은 노루는 아름답네 숫노루 만나면 등성이서라도 새끼 배고 젖은 아랫도리 말리지 않고도 푸른 잎 속에 스스로 뼈를..

시읽는기쁨 200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