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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찔레꽃을 보면 왜 그런지 그리움과 슬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에게 찔레꽃에 관계된기억이라면어릴 때에 찔레꽃 새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기면 나오는 하얀 속살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했던 것 정도다. 맛을 탐했던 것은 꼭 배가 고파서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찔레꽃 하면 그 화사한 꽃 색깔과는 달리 그리움과 슬픔의 꽃으로 다가온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처음에는 이 노랫말이 잘못된 줄 알았지만 남쪽 지방에는 붉은색의 찔레꽃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보지를 못했다. 사람에 따라서 앞의 꽃이름을 무엇으로 하든 나름대로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찔레꽃이 주는 뭔가 애상적인 느낌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

꽃들의향기 2006.02.02

첫째의 첫 출근

오늘은 첫째 아이가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날이다. 지난 몇 달간 취직을 하기 위해 여러 군데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더니 한 작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구직 기간이 길지 않은 것 같지만,이름 있는 회사에 낸 원서는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탈락해서 아이 나름으로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의 적당한 선에서 만족해 준아이의 태도가 고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계속 청년 실업자의 대열에 서 있어야 했을 것이다. 직장을 구하는데 아빠가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도 안스럽고 안타까웠다. 그것은 내 아이가 취직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한국 ..

길위의단상 2006.02.01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어지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하고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

시읽는기쁨 2006.01.31

한 장의 사진(4)

35년 전인 1971년 설날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무렵에 아버님께서는 매년 설날이면 읍내에 있는 사진사를 불러서 이렇게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당시의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마침 이때는 내가 대학시험에 합격하고 입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지금도 고향집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긴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 아버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대부분 초등학생이던 동생들은 벌써 4, 50대의 장년이 되었다. 내 나이도 이미 사진 속의 아버님 연배를 넘어섰다. 지금 돌아보니 생전의 아버님은 명절 때면 많이 쓸쓸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님 형제분은 2남3녀였는데 다른 집들과 달리 명절이어도 차례는 늘 아버님 혼자서 지내셨다. 외지에 나가 계시던 삼촌은 고향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집간 여동생들..

길위의단상 2006.01.30

안양천을 걷다

어제는 안양천을 걸었다. 양화대교에서 시작해 한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안양천으로 접어들어 석수까지 갔다[걸은 거리; 20 km, 12:00-16:30]. 안양천은 경기도 과천에 있는 청계산에서 발원해서 안양을 지나 서울 남서부 지방을 흐르는 길이 약 35 km의 한강 지류로, 아마 서울에 있는 한강 지류로서는 제일 긴 하천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안양천은 오염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탁한 물과 풍기는 악취가 걸어본 지천들 중에서 제일 심했다. 곁에 있으면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프고 불쾌해질 정도였다. 강에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인간들은 저렇게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지만 공기와 물이 오염되건 말건 자신들의 배설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게까지..

사진속일상 2006.01.27

양지꽃

야생화를 좋아하게 된 초창기에는 베낭에는 항상 도감과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처음 만난 꽃에 환호하고, 그리고 도감으로 이름을 확인하며 다시 기뻐하고, 또 나름대로 사진을 찍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때 도감을 보며 이름을 찾고 알게 된 제 1호 꽃이 바로 이 양지꽃이다.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첫 경험이어선지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아마 4월 초쯤 되었을 것이다. 봄꽃을 구경하러 가자며 가족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랐었다. 성벽 옆에 피어있던 환한 이 노란색 꽃을 발견하고 모두들 환호성을 올렸다. 관심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꽃이었다. 양지꽃이라는 이름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양지(陽地)꽃, 이름만 들어도 참 따스한 꽃이다. 말 그대로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서 피어나는 우리나라의 대표..

꽃들의향기 2006.01.26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 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 정희성 가끔은 이런 명랑시를 읽으며 빙긋 웃고 싶다. 성(性)과 성(聖)은 원래 한 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태초에는 그 어떤 구별도없었으리라.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성(性)은 부끄럽고 은밀한 것으로 변했다. 이제 다시 낙원으로 돌아가려는지 성(性)은 개방되고 상품화되어 여기저기서 흘러 넘친다. 너무 많은 정보와 과도한 드러냄의 문제점은 성(性)..

시읽는기쁨 2006.01.24

양재천을 걷다

양재천(良才川)은 경기도 과천에서 발원하여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를지나서한강에들어가는 길이 약 20 km의 하천이다. 하류에서 탄천과 합류하여 한강과 만난다. 전에는 직접 한강과 연결되었는데 1970년대에 개포지구 토지 정리를 하면서 물길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예전의 하천 이름은 공수천(公需川), 학천(鶴川), 학여울 등으로 불리었다고 하니 아마 예전에는 학(鶴)이 이곳에 많이 다녀갔는가 보다. 지금도 인근에 학여울이라는 지하철역명으로 남아있다.현재 이름은 이 하천이 양재동을 통과하여 흐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데 옛 이름이 훨씬 멋있게 들린다. 오늘은 양재천을 따라 걸었다. 한강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과천의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걸었다[걸은 거리; 15km, 11:00-14:00]. 양재..

사진속일상 2006.01.23

자성(自省)

따스한 봄날도 어떤 때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황사가 몰려오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바다도 늘 물결이 일고 있다. 어떤 날은 큰 바람이 불어 세찬 파도가 일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쉽고 편안하게만 사는 집이 어디 있으랴. 바깥 일은 논외로 하더라도 가정 안에서도 부모-자식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물결을 일으킨다. 어떤 것은 잔물결로 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쓰나미가 되어 집안을 휩쓸어 버린다. 곱게 차려입고 화사한 웃음을 짓는 저 사람들의 표정 뒤에도 남모를 고통의 그늘이 서려있음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가 그 사람의 진면목은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이면에서 이런 고(苦)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길위의단상 2006.01.22

동심의 그늘

동심(童心)이라는 말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동심은 모든 그리움의 원형이며, 그 속에는 인간 존재의순수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린 한 때 이 동심의 기간을 지나왔지만, 그러나 철이 들면서 동심은 이미 다다를 수 없는 세계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비한 동화의 세계로 남아있게 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 주는 필터링 효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가혹했던 군대 시절마저 추억에서는 아름답고 멋진 기억으로 탈바꿈합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워버리는 기법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참살이의꿈 200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