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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냄새

어머님이 방 한 켠에 메주를 쑤어서 달아놓았다. 방안에 들어서면 구수한 메주 냄새가 온 몸을 적신다. 또 하나의 고향 냄새다. 어릴 때는 드나들며 저 메주콩을 뜯어먹기도 했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이 가지고 있는 냄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년 시절에 함께 했던 냄새들 - 고향의 공기, 고향의 땅, 고향의 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마도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고향땅을 밟을 때 편안해지는 것은 아마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젖냄새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후각이 퇴화되었다 하더라도 시각보다는 후각이 도리어 더 옛 향수를 자극한다. 가끔씩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쇠락하고 시들어가지..

사진속일상 2006.01.09

에버렛 루에스

에버렛 루에스(Everett Ruess)는 1914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재주가 뛰어났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을 들어가지만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환멸만을 느낍니다. ‘영원한 자유의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싶었던 내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철창이 없는 감옥, 나는 이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주위엔 온통 길들여진 사람들뿐이다.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뻔뻔스런 얼굴이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시가 싫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는 문명 세계 대신에 자연의 품을 택합니다. 자연 속에서의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던 그는 결국 19..

읽고본느낌 2006.01.08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그리움 / 유치환 '그리움'은 허기진 땅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그 무엇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 하고, 가고 싶은 저 피안의 땅을 그리워 한다. 모든 그리움의 대상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다. 그리움을 아름답다고 했지만 동시에 그리움은 한없이 아프기도 하다. 욕망이 충족되어도 그리움은 남는다. 올해는 나에게 그리움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누구든, 마음 속으로 아름답게 아프게 그리워 해야 할 것 같다.

시읽는기쁨 2006.01.05

금산 송악

지난 겨울 남해도의 금산에 올랐을 때 이 송악을 만났다. 보리암 부근의 장군봉이라는 바위였는데, 송악임을 가리키는 안내 간판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송악은 이름만 들어보면 소나무 종류인 것 같지만 실제는 두릅나무과의 늘푸른 덩굴나무이다. 줄기에는 부착근(附着根)이 있어서 돌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서 타고 올라가며 자란다. 남쪽 지방에서는 돌담장에 이 나무를 심는다는데, 그래서 별명이 담장나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오래 되면 담장을 감싸서 강풍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영어 이름은 Ivy인데 잎이 꼭 집에서 관상용으로 기르는 아이비 잎처럼 생겼다. 이 금산의 송악은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와 동고동락하며 살았던지 나무 줄기의 색깔이 바위와 구별하기가 힘들다. 오래 함께..

천년의나무 2006.01.04

두루미를 만나다

두루미를 만나러 아내와 함께 철원에 찾아갔다. 마침 두루미 축제 기간이어서 사파리 버스를 타고 민통선 안쪽에 들어가 두루미를 볼 수 있었다. 어제 밤은 두루미를 만날 생각에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 마냥 마음이 설레었다. 전에는 새해의 연례 행사가 두루미를 보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어디에 마음을 앗겼는지 몇 년간 잊고 지냈었다. 이래저래 감회가 새로웠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아쉽게도 자리가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행사장에는 간이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공연장도 크게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두루미를 보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 논에는 무리를 지어 쉬고 있는 쇠기러기들이 자주 보였다. 먼저 토교저수지에 들렀는데 독수리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다. 저수지 둑에 독수리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거..

사진속일상 2006.01.03

한강을 걷다[선유-뚝섬]

오늘은 선유도에서 출발했다. 선유도에서 여의도까지 간 후, 서강대교를 건너 강 북단으로 건너가서 뚝섬까지 걸었다. 걸은 거리는 22km였다(12:00-17:00). 선유도공원은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원래 이 섬에는 선유봉이라는 절경의 봉우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개발 열풍에 사라져 버렸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쌍둥이빌딩과 63빌딩의 단순한 조형미가 아름답게 보였다. 서강대교에서 내려다 본 밤섬의 전경. 철새의 낙원이라는데 오늘은 철새 그림자 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 발길이 끊긴 밤섬은 덩굴식물의 천국이 되었다. 나무를 뒤덮은 모양이 마치 이불을 뒤짚어 쓴 듯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한강 고수부지는 온통 시멘트로 도배를 했는데 ..

사진속일상 2006.01.02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다시 새해 첫날이 열렸다. 어제의 아쉬움이 오늘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변했다. 날든, 뛰든, 아님 앉은 채 그대로든 모든 존재들에게 새해 첫날은 기적처럼 똑 같이 주어졌다. 여기엔 잘난 이, 못난 이의 차별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매일매일이 첫날처럼 설레임과 경이로 가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의 축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잔뜩 흐린 날씨처럼 오늘 우리 집엔 무겁게 저기압이 드리워져 있다. 새벽 꿈자리마저 뒤숭숭하더니 아침 밥상 자리 작은 데서 일이 터졌다. 하필 새해 첫날에..... (그런데 이 시에서 재미있는 점은 가만히 ..

시읽는기쁨 2006.01.01

2005년의 끝 날

한해의 끝 날이어선지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 한해 특별히 잘못 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을 우리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먹는다는 것은 허기가 채워진다는 뜻인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허기지고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 ‘먹는다’는 표현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말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속일상 2005.12.31

청초호의 철새

직원들과 함께 1박으로 속초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내내 추웠던 날씨가 풀리고 바람도 잦아들어 바깥 나들이길에는 아주 좋았다. 여러 군데 다녔지만 속초 시내에 있는 청초호의 철새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청초호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수질이맑아보여서 무척 반가웠다. 호수에는 갈대 같은 수초들도 잘 자라고 있어서 새들이 지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청초호는 도시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도 도시와 잘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철새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호수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지방의 소도시여서 그런지 호수 주변의 소음이 적고 조용해서 좋았다. 문득 서울의 석촌호수를 떠올..

사진속일상 2005.12.30

슬로 라이프(4)

- 땅에서 나고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닮은 집. 슬로 하우스(slow house) 개념으로 요사이 주목받는 것이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다. 이 집은 짚으로 만든 블록을 쌓아서 짓는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북미나 호주 등지에서 궁극의 친환경 주택으로 불리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발군의 단열성이다.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는데.... 잡(雜)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잡초, 잡목림, 잡곡, 잡종....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1차산업에서 재인식되어야 할 말들이다. 특히 미래의 음식문화에서는 잡곡을 빼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 먹어야 한다면 줄이기라도 하자. 육식 예찬의 이데올로기에서 ..

읽고본느낌 200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