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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리 / 양문규

마당 한가운데 너럭바위 있다 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 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흑백사진 속의 풍경처럼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장선리 / 양문규 30년 전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처음 읽었을 때 정보, 지식 혁명에 대한 개념들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3의 물결이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가 ..

시읽는기쁨 2005.12.07

글 뒤에 숨은 글

‘글 뒤에 숨은 글’은 최근에 읽은 김병익 산문집이다. 평론가, 출판인으로 살아온 저자의 자서전적인 글모음인데 내용이 진솔하고 담백해 잔잔한 감동을 받으며 읽었다. 내용 중에서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독서 편력에 대한 고백인데 초등학생 시절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책밖에 없었고, 그래서 많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5남매의 막내였다 보니 집에는 형들이 읽던 책들이 많았고 여러 분야의 책들을 접하며 지적으로 조숙해졌고 고등학교 때는 ‘사상계’나 ‘현대문학’, 실존철학서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내 경우를 보면 저자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5남매의 장남으로 형이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집에는 교과서 외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것이 5, 60년대 농촌의..

읽고본느낌 2005.12.06

패랭이꽃

남한의 국화는 무궁화이고,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이다. 둘 다 나무꽃인데 만약 풀꽃 중에서 우리나라 국화로 적당한 것을 고르라면 개인적으로는 이 패랭이꽃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패랭이꽃은 제주도로부터 백두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꽃이다. 산이나 들, 길가 등 어떤 곳에서도 잘 자란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도 강하다. 키가 작아 사람들 발길에 짓밟혀도 바로 줄기를 곧세운다. 작지만 강인한 꽃이다. 패랭이꽃은 수줍은듯 볼을 붉히고 있는 청순한 소녀를 연상시킨다. 꽃잎은 다섯장이고 끝은 톱니마냥 갈라져 있다. 그러나 작고 가녀린 모습 뒤에는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것 같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패랭이는 옛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쓰던 모자였다. 양..

꽃들의향기 2005.12.05

눈 내린 한강과 청계천을 걷다

밤 사이에 첫눈이 내렸다. 올해 서울 지방의 첫눈은 기록상으로는 11월 28일이지만 그때는 가는 눈발이 잠깐 비치며 땅에 쌓이지도 않고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눈장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내렸다. 그러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밖에는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강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같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지난 번에는 아내가 발이 부르터 고생을 한 탓에 이번에는 신발을 런닝화로 바꿔 신고, 또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중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11:30에 집을 나서 올림픽대교에서 시작해 한강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 휴일인데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를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하는..

사진속일상 2005.12.04

지구의 밤

이것은 인공위성에서 지구의 밤을 찍은사진입니다. 잘 사는 나라들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환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깜깜합니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이 눈에 띄게 환합니다. 부와 문명의 편중 현상이 한 눈에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아마 백 년 전이었다면 전 지구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캄캄했을 것입니다. 지구 40여억 년의 역사동안 내내 그랬을 겁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밤 풍경은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백 년 뒤에는 대륙 전체가 온통 빛으로 덮일 것 같습니다. 지구의 이름이 그때는 광구(光球)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 사진은 한반도 주변을 찍은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입니다. 북쪽에..

참살이의꿈 2005.12.03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 서정홍

쿠바에는 새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쿠바에는 개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 해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 있는 옥수수도 골목마다 핀 노란 해바라기도 잔디밭에 누워서 까닭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학생들도 훤한 대낮,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을 안고 있는 젊은 경찰도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이더라 '저렇게 살갗이 검을 수가 있을까' 싶은 아가씨와 '저렇게 살갗이 하얄 수가 있을까' 싶은 사내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낡은 옷을 보고 가난하다고 말한다. 못 산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

시읽는기쁨 2005.12.01

국익과 진실

'맹자가 양(梁) 혜왕(惠王)을 만났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시면 대부(大夫)들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家)에 이익이 될까?' 하고, 사(士)와 서인(庶人)들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게 됩니다. 이렇게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다툰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만일 정의를 나중에 생각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를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어찌 이익을 말씀하시겠습니까?"' 황우석 교수의 난자 취득 과정에 대한 최근..

길위의단상 2005.11.30

서양등골나물

초겨울에 접어든 이맘때에는 들이나 산에서 볼 수 있는 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남산에 갔을 때 산책로를 따라 무리지어 피어있는서양등골나물을 보았다. 대부분의 풀들은 시들고 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려 겨울 준비를 하는 이 때, 홀로 환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이 풀의 강인한 생명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이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이 풀은 우리 고유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번식력이 좋아 환경부에서는 위해 식물로 분류를 해놓고 있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인 셈이다. 전에 자주 다녔던 대모산에서도 이 풀을많이 보았다. 어떤 곳에서는 계곡 전체가 서양등골나물에 점령되어 있었다. 그러나 흰색의 작은 송이들이 모여 피는 꽃은 밝고도 환하다...

꽃들의향기 2005.11.29

도시의 저녁

빌딩 사이로 해가 넘어간다. 도시의 저녁은 다른 곳에서 보는 석양에 비해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유랑민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도시인들은 저 빌딩들 사이를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보다. 여유있는 퇴근 시간이 된 날이면 일부러 지하철 서너 정거장에서 내려 한강변으로 나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런 저녁 풍경을 가끔씩 만난다. 어떤 날은 인공의구조물들과 어울린 석양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똑 같은 풍경이건만 그때그때의 느낌이란 내 감정의 반영에 다름 아닌 것 같다. 투영된 내 마음을 풍경을 통해 내가 다시 만나는 것이다. 쓸쓸함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든, 일상의 작은 것에도가슴 떨릴 수 있는 예민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무미건조..

사진속일상 2005.11.28

철수

밭의 비닐을 걷어내서 정리하고, 모아두었던 콩대를 불태우고, 추위에 약한 나무 줄기에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보일러와 수도 배관에 있던 물을 모두 빼냈습니다. 이것으로 올 한 해 터에서의 생활이 마감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와 수도관의 물을 빼내는 작업은 콤프레셔를 사용해서 인부 두 명이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것까지 해서26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난 두 해는 내려가 있지 않더라도 보일러을 겨울 내내 가동시키며 동파를 방지했지만 마당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 폄프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온을 해도 두 번 다 얼어터져서 봄에는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물을 모두 빼버린 것입니다. 이번 겨울은 완전히 터에서 철수를 하려..

참살이의꿈 200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