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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나물

수도 없이 자주 만나게 되는 꽃도 있지만, 어떤 꽃은 한 번 본 뒤로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꽃이 귀하거나 아니면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때문이겠지만 이 요강나물이 그러하다. 약 10년 전 광덕산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뒤로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때 찍은 이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면 꽃을 본 기억조차 사라졌을지 모른다. 요강나물은 색깔이 특이하다. 검은 색의 꽃은 이놈이 유일할 것 같다. 물론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진한 갈색에 가깝지만 그래도 거의 검게 보인다. 다들 화려한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데 요강나물은 왜 이런 어두운 색깔을 택했는지 궁금해진다. 이름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먹는 나물에 하필 요강이라는말을 갖다 붙이다니. 그런데 이 요강나물은 유독성 식물로 식용으로 하기에..

꽃들의향기 2005.10.29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난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

시읽는기쁨 2005.10.28

세월이 빠르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니 시간은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흘러간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다. 우리들 인생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 어제의 나인데 벌써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인생의 나이도 가을이 되면 시간축의 기울기가 훨씬 가팔라진다. 한 해를 지나는 것이 한 달처럼 짧게 느껴진다.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어린 시절 뛰어놀던 봄꿈이 아직 깨지도 않았는데 뜰 앞의 오동잎이 이미 가을소리를 전하는구나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끝 구절이 입술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봄날 뜰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벌써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쓸쓸함이 지금의 내 심정..

길위의단상 2005.10.27

우리들의 호들갑

중국산 납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약국의 구충제가 다 동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또 한 바탕 소동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어류건 가축이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위험 수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로보는 세상에서 갈수록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 인간의 몸으로 출입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이런 것들이 오염된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을 얻더라도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늘 이런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흥분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진지하게 대..

참살이의꿈 2005.10.26

고마리(2)

가을이 되면 고향의 개울가와 들에는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났다. 고마리는 물을 좋아하는지 특히 물가에서 많이 자랐다. 동네에서 나오는 물이 흐르는 도랑은 이 고마리로 뒤덮였다. 얼마나 번식력이 좋았으면 '이젠 고만 자라거라'는 의미에서 고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풀을 잡초 취급하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흔하디 흔한 고마리가 가을이 되면 작은 꽃을 피운다. 한 송이에 많은 꽃송이가 다닥 다닥 달려있다. 꽃 색깔은 흰 색도 있고, 연한 분홍색도 있다. 군락으로 자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작은 점들로 뒤덮인 꽃밭을 이룬다. 흰색 고마리 군락을 멀리서 보면 마치 메밀밭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고마리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꽃은 마치 보석을 깎아놓은 듯 맑고도 깔..

꽃들의향기 2005.10.25

아버지 / 윤재철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 아버지 / 윤재철 작년 가을,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병원을 오가며 암 치료를 받으시다가 생의 마지막 날들은 집에서 보내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의 방, 당신의 침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켜본 모두들 평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

시읽는기쁨 2005.10.24

검단산과 용마산을 종주하다

검단산과 용마산을 종주하다. 창우동-호국사-검단산-용마산-거문다리(10/22, 10:30-15:30) 하남에 있는 검단산(黔丹山, 657m)과 용마산(龍馬山, 596m)은 서로 이웃해 있는 산이다. 천천히 걸어서 1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두 산 사이의 능선길이 팔당호를 옆에 끼고 있어 아주 좋다. 나무들 때문에 전망이 열려 있지는 않으나 가끔씩나타나는 아랫 마을의 풍경이 시원하다. 검단산은 그 이름으로 봐서 백제 시대의 검단선사(黔丹禪師)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런 유적이라도 나온다면 대단한 발견이 될 것 같다. 특히 검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남한강과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팔당댐으로 인해 거대한 호수로 변해 있다. 강을 따..

사진속일상 2005.10.23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왜 환경을 파괴할까? 최근에 읽은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라는 한 생물학자에 의해 명명된 ‘공동 소유의 비극’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원시인들이 매머드를 거의 멸종시키게 되었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바보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는 ‘아니야, 나는 새끼를 밴 매머드는 죽이지 않겠어. 임신한 짐승을 해치는 것은 나쁜 일이야.’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어미 매머드를 발견한 다른 원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살려준 매머드를 다른 원시인이 잡아 포식하는 마당에, 배를 곯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어느 한쪽의 자제가 다른 ..

참살이의꿈 2005.10.21

[펌] 세 이야기

구속 수사 이후 (도종환) 그 해 유월, 여름 햇살처럼 여론도 따갑게 끓어오르던 날 나는 교무실에서 성적표를 쓰고 있다가 다섯 명의 건장한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 구속되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마룻장 날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고, 변이 직접 내려다보이는 변기통 위에 앉아 하루 세 번 식기를 닦았으며, 사회적 이름을 빼앗긴 채 가슴에는 수인번호 376번이 달려 있었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거미줄에 날개를 묶인 곤충처럼 포승줄로 결박당하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결박당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반말로 이름을 부르고 내 시집 제목을 거론하며 비웃어대고 내가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특정집단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부칠 때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길위의단상 2005.10.20

삼각산에 오르다

어제는 삼각산에 올랐다. 구기동-대남문-대동문-위문-우이산장-도선사-우이동, 10:00-16:00.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서로 이웃하며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예부터 이 이름이 널리 쓰였으나 일제 시대 이후로 주로 북한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원래 이름인 삼각산으로 부르자고 산림청에서 정부지명위원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삼각산은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다. 연간 500만 명이 찾는다고 하니까 휴일이면 사람들로 포화 상태가 된다. 어제는 평일인데도 일부 구간에서는 잠시 기다려야 서로 교행을 할 수 있었다. 대남문에서 위문까지는 산성을 따라가며 걸었다. 길은 산성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데 비슷한 고도라 힘들지 않으면서도 산길을 걷..

사진속일상 200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