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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가 있다. 하나는 갑곶돈대 안에 있고, 또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79호로 지정된 이 사기리 탱자나무이다. 마리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 함허동천에 조금 못 미처 도로 옆에 이 나무가 있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데, 강화도 기후는 연평균기온 11도, 강우량 1000 mm 정도로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비교적 따뜻한 날씨여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같이 간 동료의 얘기로는 약 400 년 전 봉림대군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날카롭고 단단한 탱자나무 가시는 귀신도 물리친다고 하니 적병들 쯤이야 쉽사리 막아줄 수 있으리라는 믿..

천년의나무 2005.10.18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 채호기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넌다 베지 않은 키 큰 옥수수나무가 서 있고 누렁 빛 들판에는 풍성한 예감이 있다 먼데 산이 선명하다 형은 펌프 옆에서 양말을 빨고 하, 참 이 가을엔 햇빛의 뼛속까지 보이는구나 -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 채호기 사무실 앞 가을 햇살 따스한 곳에서 동료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뭘 하고 있느냐며 짐짓 물으니 광합성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 대답이 일품이다. 가을은 이 햇살과 하늘만으로도 더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햇살은 투명하고, 하늘은 맑고, 대기는 청명하다. 이런 날은 인공 조명의 사무실을 벗어나 맑은 햇살 아래서 식물성 광합성이라도 하고 싶다. 모든 동물성 욕망은 잠재우고 저 맑고 투명한 햇살로 내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싶다. 표현 하나 때문에 특별..

시읽는기쁨 2005.10.17

가을걷이가 끝나다

고추, 피망, 꽈리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근대, 목화, 상추, 케일, 콩, 강낭콩, 서리태, 큰콩, 완두콩, 오이, 호박, 감자, 자주감자, 고구마, 옥수수, 머위, 취, 배추, 무우, 열무, 들깨, 더덕, 쑥갓, 가지, 파, 쪽파, 딸기.... 이것들은 올해 텃밭에 심었던 작물들입니다. 그 종류가 서른 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농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종류로는 많이 심었습니다. 뭘 심어 놓고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누가 묻길래 모든 것을 다 심어놓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이나 이름을 대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말하는 작물은 전부 제 밭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들을 가꾸느라고 아내와 저는 주말이면 여기에 붙잡혀서 지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너무 일만 ..

참살이의꿈 2005.10.16

한국인의 가치관

어제 중앙일보에는 한국인의 가치관을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특히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탈물질주의적 가치관 중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조사하고 다른 나라의 결과와 비교한 것이다. 여기서 물질주의란 나라의 정책을 부국강병에 둬야 한다는 경제 우선주의적 태도를 말하고, 탈물질주의란 경제보다는 인간적 가치, 환경 등 탈인습적이며 문화주의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태도이다. 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37%가 물질주의자로, 6%가 탈물질주의자로, 나머지 57%가 혼합주의자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이 결과는 비교 대상이 된 국가 중 중국 다음으로 물질주의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거의 3 배 정도의 비율로 물질주의자들이 많았다. 스웨덴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속한 사람이 6%밖에..

길위의단상 2005.10.15

남한산성의 가을꽃

명성산으로 억새 산행을 가는 동료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남한산성 길을 걷다. 가을산은 한 달쯤 계절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산길에는 벌써 낙엽이 땅을 덮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금속이 닿은 것처럼 서늘하다. 산 위에서 고추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을 사 마신다. 가을 산길은 역시 혼자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전에 남한산성 밑에서 살 때는 거의 매주 한 번씩 이 산을 찾았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산의 구석 구석 모든 길이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만에 찾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더욱 쓸쓸해진다. 여기는 현호색 군락이었고, 저기는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있었었지. 또 산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리고오면 처음에는 투덜대다가 나중에는 얼굴이 밝아지곤 했었다. ..

꽃들의향기 2005.10.14

행촌리 느티나무

이 나무는 종덕리 왕버들과 이웃한 마을에 있다.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행촌리이지만 마을 사람은 동령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무로 찾아가는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에도 동령리 느티나무라고 적혀 있다. 이 느티나무는 크기가 다른 것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울퉁불퉁한 나무 줄기가 굵고 우람하다. 마치 힘 좋은 황소를 보는 것 같다. 옆에 우사(牛舍)가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목이 느티나무인데 그 생김새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오랜 삶의 연륜에서 풍기는 무게가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 정도까지 생존하자면 수 많은 난관을 헤쳐나왔을 것이다. 나무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천연기념물 제 280 호 전북 김제시 봉남면..

천년의나무 2005.10.13

다시 보는 청계천

내가 청계천을 처음 본 것은 복개 공사를 하고 있던 60 년대 후반이었다. 그 당시 청계천 위쪽은 복개가 되었고 하류 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당시 청계천 풍경은 수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오물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탁한 물이 흐르는 양 편으로는 검은 색의 판자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도대체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어 어떤 날은 그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나왔던 기억도 난다. 천변이 보이는 보도 옆과 다리 난간에는 큰 가림막을 해 놓아 그 부끄러운 풍경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 이후로 청계천은 어두운 지하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로부터 40 년 가까이 지나서 복개 구조물을 뜯어낸 청계천 복원 사업 덕분에 다시 청계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사진속일상 2005.10.12

계란 한 판 / 고영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친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계란 한판 / 고영민 장일순 선생님의 일화에 이런 게 있다. 선생님의 글씨도 탈속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데..

시읽는기쁨 2005.10.11

식인(食人)의 교육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것을 가져라” 요즘 뜨고 있다는 광고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비행기 안에서 젊은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한 젊은이가 나오는 무슨 카드 광고인데 내가 가진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자들의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풍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부추기는 것 같아 TV로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영 떨떠름하다. 전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거북스러움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똑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천양지차가 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나 지향하는 방향,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고, 잘 나가는 사회의 역동성의 한 측면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길위의단상 2005.10.10

네팔에서 살고 싶다

해외에서의 노후생활을 주제로 한 기사가 지난달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정년퇴직한 연금생활자들이 가서 살만한 태국, 필리핀 등 몇나라가 소개되었는데 대개 비슷했지만 그 중에서도 네팔에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생각을 바꾸면 적은 돈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팔, 티베트, 부탄 등의 지역은 평상시에도 관심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은 제가 해외여행을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산맥을 끼고 있는 원시의 대자연과 함께 아직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얼마간은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부탄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알게도 되었습니다..

참살이의꿈 200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