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가을걷이가 끝나다

샌. 2005. 10. 16. 20:03

고추, 피망, 꽈리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근대, 목화, 상추, 케일, 콩, 강낭콩, 서리태, 큰콩, 완두콩, 오이, 호박, 감자, 자주감자, 고구마, 옥수수, 머위, 취, 배추, 무우, 열무, 들깨, 더덕, 쑥갓, 가지, 파, 쪽파, 딸기....


이것들은 올해 텃밭에 심었던 작물들입니다. 그 종류가 서른 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농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종류로는 많이 심었습니다. 뭘 심어 놓고는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누가 묻길래 모든 것을 다 심어놓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이나 이름을 대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말하는 작물은 전부 제 밭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들을 가꾸느라고 아내와 저는 주말이면 여기에 붙잡혀서 지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너무 일만 한다고, 사서 고생이라고 하는 핀잔 아닌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가을걷이가 이번에 고구마를 캐는 것으로 다 끝났습니다. 올해 심은 것 중에서 고구마 키우기는 실패한 편에 속합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낸 고구마 모종을 심었는데 살아난 것은 열 개 중 한 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다시 모종을 사다가 심었는데 역시 셋 중 하나 정도로만 살아남았습니다. 아무래도 심는 방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구마 수확은 기대하지를 않았습니다.

 

띄엄띄엄한 덩굴을 걷어내니 생긴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고구마들이 그래도 호미에 걸려 나왔습니다. 심어만 놓고는 쳐다보지를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이렇게 열매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수확물을 전부 모으니 작은 박스로 네 개가 나왔습니다.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작물을 기르는 것이 한 번 심어놓으면 그냥 설렁설렁 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잡초로 뒤덮이고 병충해가 덤비고 엉망이 됩니다. 모기와는 친구가 되어야 하고, 아내는 풀독이 여러 번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보기 싫지만 않도록 하자고 했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에도 사실 올 한 해는 벅찼습니다.올해는 가장 바쁜 한해였습니다.

 

힘이 많이 들었지만 반면에 그만큼 재미도 컸던 한 해였고, 또 전에 비하면 안정기에 접어든 한 해였습니다. 이제 시골 생활의 경험도 많이 깊어졌습니다. 내년에는 이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과 머리로만 사는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흙을 만지는 육체노동의 경험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삶의 바탕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늘 새롭게 일깨워 줍니다.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기본 바탕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정체되거나 편안만을 추구하지 않는 늘 새로워지는 도전적인 삶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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