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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

동료의 부친 되시는 분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마다시고 5개월여 생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 그분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신 것이다. 아마 수술을 했다면 몇 년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식들이야 수술 하시기를 강권했지만 본인이 극구 반대하셨다고 한다. 암 말기의 고통은 진통제로 완화시키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셨다. 어느 집 어머니가 역시 암에 걸리셨다. 역시 많은 연세 탓에 수술 여부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들이 수술을 시켰고, 어머니는 지금 두 해째 계속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거동도 못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간병 문제로 자식간에 알력이 생겨 지금은 형제간의 의에 금이 가버렸다. 수술을 강력히 희망했던 딸들도 이젠 나 몰라라 하고, 어머니는 본..

길위의단상 2005.12.27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은 자세히 볼 수록 예쁘다. 꽃에 얼굴을 갖다댈 수록 향기는 진해기고, 숨어있는 작은 아름다움도 발견하게 된다. 풀꽃은 멀리서 보아도 예쁘고, 가까이서 보면 더 예쁘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지만, 솔직히 사람은 적당히 떨어져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오랫동안 옆에 있으면 첫 아름다움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어떨 때는 악취가 나기도 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 원인이 있기 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품었던 내 환상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풀꽃은 인간의 환상에 대해서 조차 배반하지는 않는다. 다가갈 수록 향기가 나는 사람, 오래 옆에 있어도 물리지 않고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는 사람 - 야생의 풀꽃..

시읽는기쁨 2005.12.2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전야,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배론 성지에 들러 신부님을 만나 뵙다. 오래 뵙지 못해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건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 그리고 조용한 산 속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원에서 성탄 밤 미사를 드렸다. 봉쇄 수도원이라 작은 성당을 두 부분으로 나눠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울타리로 서로 격리된 채 마주보며 앉고 사제는 가운데서 미사를 집전하는 형식이 특이했다. 수녀님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미사는 조용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결코 대도시의 큰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와 고마움으로 마음이 환했다. 2천년 전,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 스스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날.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주위를 따스..

사진속일상 2005.12.25

슬로 라이프(3)

- 인간 중심의 사고야말로 폭력적이다. 이제까지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자연을 수단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공리주의에 발목 잡혀 있었다. 우리들은 인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인 ‘생명의 민주주의’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비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은 자신의..

읽고본느낌 2005.12.23

짚신나물

짚신나물은 여름이면 길가에서자주 볼 수 있는 풀이다. 길게 뻗어올라 피는 노란 꽃은 귀엽고 소담하다. 이름이 짚신나물인 것은 짚신처럼 흔해서일까, 아니면 길가에서 주로 피어나 짚신에 잘 밟히기 때문일까,그도 아니면 갈고리 달린 씨앗이 짚신에 잘 달라붙기 때문일까 궁금해진다. 내 생각으로는 이 모든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선조들이 이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장금에 보면 이런 대화가 나온다. '궂은 날씨 속에서 음울하게 젖어 있던 나무들이 허물을 벗은 듯 파래졌다. 모처럼 햇빛을 본 꽃들이 진한 향기를 피워대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층층이 핀 짚신나물 노란 꽃이 걸음마다 밟힐 정도로 주면에 흔했다. "흔하디 흔한 것이 짚신나물인데, 용아초(龍..

꽃들의향기 2005.12.22

한강이 얼다

두 주일가까이 계속되는 강추위에 한강이 얼었다. 기상청 발표로는 12월의 한강 결빙은 26년 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올 12월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어떤 사람은 삼한사냉(三寒四冷)이라고 농담을 한다. 잠실대교 부근 한강에 나가보니 기슭을 따라 강폭의 약 사분의 일 정도까지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한강 결빙이라지만 한강이 완전히 언 것은 아니고 어떤 곳은 전혀 얼음을 찾아볼 수 없는 곳도 있다. 한강 결빙은 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사이의 상류 100m 부근에 얼음이 생긴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나타난 한강 결빙일수는 40년대에는 평균 69일, 50년대는 43일, 60년대는 35일, 70년대는 32일, 80년대는 21일, 90년대는 8일로 ..

사진속일상 2005.12.21

슬로 라이프(2)

-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출 총액일 뿐. 현재와 같은 국민경제 계산법으로는 국가의 광물 자원이 고갈되고 산림이 소멸되며, 토양이 유실되고 수질이 오염된다. 또한 야생 생물과 물고기가 멸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이 소멸되더라도 소득 통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하니 소득은 결국 겉보기의 이익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국가의 부는 잃게 되는 것이다. -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본래 지역 공동체에서는 화폐 경제와는 전혀 다른 이론이 기반이 된 경제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대부분은 이미 화폐 경제 안에서 와해되거나 공동화되고 말았다. 지금 세계의 여러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역 통화는 바로 이러한 영역의 재활성화를 꾀한 시도라 ..

읽고본느낌 2005.12.21

박달재 아이들 / 김시천

성배는 흔히 하는 말로 지진아다 성배의 평균 점수는 대개 20점 미만이다 그래도 성배는 제 답안지에 번호 이름을 꼬박꼬박 적어서 내고 0점을 받아도 남의 걸 훔쳐 쓰진 않는다 가끔, 보다 못한 감독선생님이 슬그머니 답을 알려 주어도 성배는 결코 그 답을 받아 쓰는 일이 없다 그냥 틀리고 만다 그런 성배 녀석이 좋다 공부 못한다고 아무도 성배를 나무라지 않는다 애시당초 시험 점수하고 성배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배의 착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우리가 그렇게 기를 쓰며 배워야 할 게 또 무어란 말인가 성배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착하고 정직한 성배의 눈을 볼 때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진정 우리에게 중요..

시읽는기쁨 2005.12.20

슬로 라이프(1)

노인: "훌륭한 젊은이란 게 뭐겠어. 어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일을 하라구, 일을!" 젊은이: "일을 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젊은이: "돈을 벌면 어찌 되나요?" 노인: "부자가 되지!" 젊은이: "부자가 되면 어찌 되는데요?" 노인: "부자가 되면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젊은이: "저는 벌써 놀면서 지내는 걸요!" 쓰지 신이찌가 쓴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읽고 있습니다.위의 예화는 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의 일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이 슬로 라이프를 위한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성찰의 소재로도 적당할 것 같습니다. 본문의 중심 내용을 발췌해서옮겨 봅니다. -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읽고본느낌 2005.12.19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병원에 찾아가지만 그를 진료한 의사도 눈이 멀고,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백색실명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전 도시로 퍼져 나간다. 정부 당국은눈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장님들만으로 살아야 하는 수용소 안은 식량 약탈이나 강간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지옥으로 변한다. 힘 센 깡패 무리까지 생겨나 식량을 미끼로 금품을 착취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눈이 먼 것으로 위장하고들어와서 이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며 눈먼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는데 바깥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변해 있었다. 모든 사람..

읽고본느낌 200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