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392

너무 많은 것들 / 긴스버그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 연기 너무 많은 종교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 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침묵 - 너무 많은 것들 / 알렌 긴스버그 현대 문명이 번성한 20세기는 동시에 파괴와 자학의 세기이기도 했다. 지..

시읽는기쁨 2005.05.18

건설공화국

대한민국은 건설공화국이다. 과거에는 시장의 별명이 '불도저'인 때도 있었다. 그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파괴한 청계천을 복원 시키느라고 다시 몇 년째 대공사를 벌이고 있다. 도시고 농촌이고 어디를 가나 허물고 파헤치느라 국토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특히 고속철도의 고가 구조물은 아무리 보아도 흉물스럽기만 하다. 특히 새만금 방조제, 지방 공항등 정치나 경제 논리에 의해 시행된 대규모 사업들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본은 멀쩡한 아파트도 헐어 버린다. 말 그대로 '공사를 위한 공사'로 보이는 쓸데없는 짓거리들이 널려져 있다. 오직 고용 창출과 성장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것이다. 자연의 훼손과 생명 파괴는 안중에도 없다. 집 앞에서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몇 ..

사진속일상 2005.05.17

작물 심기를 마치다

어제로 텃밭에 작물 심기를 대락 끝냈습니다. 그동안 한 달여에 걸쳐 심은 작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옥수수 300포기 - 수확 시기를 다르게 하기 위하여 두 주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심음(4/17, 5/1, 5/.15). 빨간 씨앗 옥수수와 강원도 옥수수 두 종류. 감자 100포기 - 강원도에서구해온 감자씨를 심음(4/17).현재 잘 자라고 있음. 콩 160포기 - 강낭콩, 노란콩, 검정콩, 완두콩, 서리태 등 구할 수 있는 콩은 다 심어 봄4/24-5/15).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완두콩에 기대가 큼. 고구마 60포기 - 집에서 낸 고구마 싹을 심었으나(5/1) 절반이 말라 죽음. 이번 주말에 모종을 사서 다시 심을 예정임. 호박 12포기 - 작년에 비해서 수량이 줄어듬. 4/17에 심었는데 이제 떡잎..

참살이의꿈 2005.05.16

한 장의 사진(2)

이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9년 가을, 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가을 운동회는 거창하게 치렀다. 아마 그 때 포크댄스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그 해 운동회 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포크댄스 경연을 했다. 뻣뻣한 남학생들이 포크댄스를 배우느라고 오후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 접해보는 부드러운 리듬과 몸동작을 따라가지 못해 연신 웃음보를 터뜨리던 기억도 난다. 옆에 있는 여학교에서 파트너를 초대하자고 학교 측에 건의를 했지만 결국은 우리들 절반이 여장을 하고 대회를 열었다. 키 작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들이 여자 파트너 역을 맡았다. 나는 친구의 누나 옷을 빌려서 입었는데 진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 사..

길위의단상 2005.05.14

피나물

우리 야생화가 좋아서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밖에만 나가면 처음 보는 꽃들을 몇 개씩 만나곤 했다. 도감을 찾아보며 이름을 확인하고, 예쁜 모습을 눈에 새길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손때 묻은 옛 도감을 펼쳐보니 피나물 설명이 나오는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1996/4/28 청평사', 그 날은 피나물을 처음 만난 날이다. 눈을 감으니 9년 전 그때의 정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맑은 봄날이었다. 아내와 같이 멀리 춘천에 있는 청평사로 나들이를 떠났다. 봄나들이 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양호를 배를 타고 건너서 청평사로 가는 길 옆에서 환하게 피어 있는 이 꽃을 처음 만났다. '와-' 하며 뛰어 가서 도감을 통해 피나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즐겁고..

꽃들의향기 2005.05.12

봄 / 조태일

봄이라는 계절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진한 향기가 나는 방대한 한 권의 책 이 책을 펼쳐보지 않으시렵니까? 잔설이 애처로이 새하얗게 반짝이고 냉잇국 향내 스며도는 그런 이야기들이 송사리떼 희살대는 실개울처럼 흐르기도 한다네요 아니 봄풀, 봄꽃들이 다투어 태어나 한바탕 어울어지는 봄빛 속을 봄바람이 불어대니 처녀애들 치맛자락 들치듯 한 장 한 장 책장이 저절로 넘겨집니다 그럴 때마다 봄향기 풀풀거리네요 봄 내내 집을 비우고 봄나들이 해도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을걸요 평생에 이런 봄 백 번쯤 온답디까? 그러니 봄이라는 책 속에 묻히지 않으시렵니까? 그런 봄기운에 그냥 몸을 맡기지 않으시렵니까? 그냥 봄잠에 취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눈을 감아도 그냥 보이는, 봄이란 책 속에 취하지 않으시렵니까? - 봄 / 조..

시읽는기쁨 2005.05.11

조계사 연등

퇴근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빨강, 분홍, 초록, 노랑, 파랑의 무수한 연등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계사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저 연등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기원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부처님이 왕궁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분이 도달한 구경각(究竟覺)의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교의 사상은 심오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공(空)이라든가 무심(無心), 무소유(無所有)의 지향은 늘 내 가슴을 설레게한다. 비록 지금은 기복적인 경향이 커졌지만, 그러나 깨침에 이르려고 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은..

사진속일상 2005.05.10

느리고 어수룩한

정화조가 고장난 것이 한 달여 전인데 기사분이 그저께야 찾아왔습니다. 수리 요청한지 6주 만에 응답을 한 것입니다.그동안 똑 같은 말이 저와시공자 사이에 오갔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도 사람이 안 나왔어요."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다음 번에는 꼭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한 일이 끝난 것입니다. 저의 집을 지은Y건축회사 사장님은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늘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사업을 하시는 분 같지 않게 느릿느릿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좋다고 소문이 났는데, 단점이라면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화조 수리도 부탁한지 한 달이 지나서야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웃집의 경우는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주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그래도 밉지가 않습니다. 웃는 얼굴..

참살이의꿈 2005.05.09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네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네 하늘을 향해 나는 노래를 불렀네 노래는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네 눈이 제 아무리 예리하고 빠르다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누가 볼 수 있으랴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느티나무에 부러지지 않고 박혀있는 화살을 나는 보았네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을 나는 알았네 -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I br..

시읽는기쁨 2005.05.07

비 오는 날의 공상

봄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에 시작된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 낮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이슬비로 변해서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안개에 잠긴 듯 희뿌옇다. 며칠간 계속되던 더위가 도망을 가 버렸다. 또한 농촌에는 고마운 단비가 될 것이다. 밭에 심은 모종들이 건조한 태양의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긴다. 이런 날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한적한 바닷가에 가고 싶다. 그리고 인적 드문 해안가를 쓸쓸히 걷고 싶다. 옆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말이 없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다. 바닷가 작은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것이다. 넓은 유리창으로는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낙..

길위의단상 200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