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648

균형과 조화

삶에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어떨 때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신비가 서려있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마치 삼류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이고 가볍게 보이기도 한다. 이 중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의 태도는 천양지차가 난다.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함부로 살기가 두려워진다. 삶의 본질에 접근하고 싶고, 그대로 따라 살고 싶어진다. 이런 태도를 삶의 진정성이라고 불러본다. 그러나 삶이란 사람과의 관계인데 어떤 진정성도 보편성을 얻지 못한다면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유아독존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생활이 세상과의 관계를 뜻하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의미성이야말로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는 최대의 적이다. 삶의 진정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

길위의단상 2006.03.23

TAO[8]

타오의 모양새와 가장 닮은 것은 하늘과 땅의 모양새랍니다. 타오의 몸짓과 가장 닮은 것은 물의 몸짓이랍니다.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이 근사한 이유는 물과 같은 몸짓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물은 모든 것을 살리고, 모든 것을 키웁니다. 그래도 그것들과 다투지 않으며 뽐내지도 않는답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물은 곧, 타오의 몸짓이랍니다. 타오와 같이, 물과 같이 사는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그곳, 그곳이 제일이라고 여기지요. 마음은 심연과 같이 심오하고요, 사귀어 나쁜 사람 없다며 사귀는 벗 모두를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 여기지요. 말을 할 때는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언제나 거짓 없는 참말만 한답니다. 타오와 같이 물과 같이 사는 사람은 물의 몸짓처럼 나라를 다스린답니다..

삶의나침반 2006.03.22

대나무 수난의 계절

변산에 다녀온 동료가 그곳 대나무들이 모두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고 보니 이런 현상은 전국적인가 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담양의 대나무 숲도 지금 고사 직전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지난 초겨울에 계속된 혹한과 이어진 폭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 사무실 앞에 오죽(烏竹)이 심어져 있는데 늘 푸르러야 할 대나무 잎이 지금 누렇게 변해가며 죽어가고 있다. 서울 지방에는 지난 겨울이 그렇게 춥지도 않았고, 눈도 많이 온 편이 아닌데 예년과 달리 대나무의 푸른 색이 사라져 버렸다. 남녘 지방처럼 기상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푸르고 곧은 모습은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을 나타내고, 텅 빈 ..

사진속일상 2006.03.21

TAO[7]

하늘은 높고 또 높고 땅은 깊고 또 깊어 하늘 그리고 땅은 그 높이가 그 깊이가 끝이 없네요. 하늘 그리고 땅은 하늘, 제 자신을 위해 땅, 제 자신을 위해 욕심내지 않아요. 그저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살아가니까 더 높고, 더 깊은 거지요. 타오의 문을 두드리는 자도 하늘 그리고 땅의 모습과 같아요. 한 발 앞서 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며 언제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갈 뿐이지요. 다툼에 몸을 두어 무리하지도 않아요. 그러니 오래오래 몸을 지킬 수 있지요. 그래요. '나'를 죽이는 것이 영원히 '나'를 살리는 길이랍니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길은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데에 있다. ..

삶의나침반 2006.03.21

늪 / 오태환

다슬기 다슬다슬 물풀을 갉고 난 뒤 젖몽우리 생겨 젖앓이하듯 하얀 연蓮몽우리 두근두근 돋고 난 뒤 소금쟁이 한 쌍 가갸거겨 가갸거겨 순 초서草書로 물낯을 쓰고 난 뒤 아침날빛도 따라서 반짝반짝 물낯을 쓰고 난 뒤 검정물방개 뒷다리를 저어 화살촉같이 쏘고 난 뒤 그 옆에 짚오리 같은 게아재비가 아재비아재비 하며 부들 틈새에 서리고 난 뒤 물장군도 물자라도 지네들끼리 물비린내 자글자글 산란産卵하고 난 뒤 버들치도 올챙이도 요리조리 아가미 발딱이며 해찰하고 난 뒤 명주실잠자리 대롱대롱 교미交尾하고 난 뒤 해무리 환하게 걸고 해무리처럼 교미交尾하고 난 뒤 기슭어귀 물달개비 물빛 꽃잎들이 떼로 찌끌어지고 난 뒤 나전螺銓같은 풀이슬 한 방울 퐁당! 떨어져 맨하늘이 부르르르 소름끼치고 난 뒤 민숭달팽이 함초롬히 털며..

시읽는기쁨 2006.03.20

TAO[6]

타오의 계곡에 사는 신은 그 생명이 다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잉태하는 신비로운 여신입니다. 그분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하늘과 땅, 그 시작에 도달할 수 있답니다. 타오의 계곡에 샘솟는 물은 퍼도 퍼도 다하는 법이 없습니다. 타오의 생명은 죽어도,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답니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생명이 깃드는 곳은 산마루가 아니라 골짜기다. 거기에는 낮게 낮게 흐르는 물이 있고, 나무가 우거지고, 그리고한 해의 첫 꽃도 계곡에서부터 피어난다. 노자는 이 계곡을 여성성의 상징으로 본 것 같다. 그곳이 생명을 품에 안고 기를 수 있는 것은 수동적 수용성과 부드러움 때문이리라. 문명의 위기도 이 여성성을 통해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구원(久遠..

삶의나침반 2006.03.20

천마산에서 너도바람꽃을 보다

너도바람꽃을 만나러 아내와 같이 천마산을 찾다. 이맘 때쯤이면 천마산을 찾아가는 것이 이젠 연례행사로 되었다. 너도바람꽃은 천마산에서 가장 일찍 피는 꽃이다. 대략 3월 초순에서 시작해 하순경까지도 볼 수 있는데, 벌써 몇 해째 가고 있지만 만개하기 전 꽃이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아직 맞추질 못했다. 너무 이르든가 아니면 너무 늦었는데, 이번에도 때가 늦어 꽃잎은 이미 시들고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내년을 기약해 보지만 솔직히 너도바람꽃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한량없이 기쁜 일이다. 일년에 한 번씩 이렇게 같은 장소에서 매번 귀하고 예쁜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작년에도 느낀 일이지만 천마산 입구인 호평동은몇 년사이에 너무나 많이 변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어수선하기 이를 데..

꽃들의향기 2006.03.19

TAO[5]

이름 없는 세계에서 태어난 하늘과 땅은 모든 것을 똑같이 여긴답니다. 특별히 사람만을 예뻐하지 않는답니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살려 주거나 짐승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이지 않고 모든 것을 똑같이 여긴답니다. 하늘과 땅의 몸짓은 거대한 요술 주머니 같습니다. 속은 텅 비었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술사의 마술처럼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마구 마구 생겨납니다. 그러니 당신도 쓸데없는 말로 채우려 하지 말고 침묵으로 비움을 소중히 여기는 건 어떨까요?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탁약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모든 존재는 다 자신이 만물의 척도다.' 그래서 말이 많아지고 다툼이 생긴다. 천지가 불인(不仁)하다는 것은 천지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있..

삶의나침반 2006.03.18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은 1993년에 전북대학교 선병륜 교수님이 변산반도에서 발견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변산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주도로부터 설악산까지 우리나라 전국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자라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개체수도 적어서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보존 가치가 높은 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면 인터넷에는 남녘 제주도에서부터 변산바람꽃을 봤다는 소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꽃은 봄이 오며 가장 먼저 피는 꽃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리따운 변산 처녀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뭇 사진으로만 접하다가 나도 올해는 직접 변산처녀와 해후를 했다. 수리산에도 변산바람꽃이 핀다는 정보를 접하고 무작정 찿았던 수리산에서 정말 우연히 등산로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도 예정했던 코스에서..

꽃들의향기 2006.03.17

숲 /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숲 / 정희성 도시의 나무들은 '더불어 숲'을 이루지 못한다. 아니, 숲을 이루지 못하는 나무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니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메마른 사막의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소리만 낸다.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시읽는기쁨 200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