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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2)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모든 꽃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보면 보이는대로 예쁘게 잘 찍히는 꽃이 있고,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지 못하는 꽃도 있다. 꽃의 색깔이나 모양, 키 등에 따라서 그런 차이가 생기는데, 나 같은 경우는 흰색이나 강한 원색의 색깔인 경우와 함께 키가 작은 꽃을 찍기가 어렵다. 얼레지는 소위 사진발이 잘 받는 꽃이다. 연분홍색 색깔하며 멋들어진 자태가 아주 빼어난 모델이다. 얼레지를 볼 때마다 받는 인상은 그 요염함과 당당함이다. 꽃잎을 활짝 뒤로 젖히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은 세상의 그 무엇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태도다. 접사를 위해 꽃의 가운데 부분에 렌즈를 가져가면 화려한 색깔과 무늬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그 황홀한 자태에..

꽃들의향기 2006.04.29

앉아서 유목하기

‘유목(遊牧)’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처를 정하지 않고 물과 목초를 따라 소, 양, 말 등의 가축을 몰고 다니며 하는 목축이라 나와 있고, ‘유목민(遊牧民)’이란 유목을 하면서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목민은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서 항상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정착민과 대비됩니다. 요즈음 유목(nomad)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어떤 책 표지에는 ‘우리는 유목하는 행복 게릴라 부부’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유목이라는 말이 무척 낭만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정착민과 유목민의 구분이 뚜렷했으나 정착민에 의해 현대문명이 건설된 후 유목민의 존재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실제 사막이나 고산지대 등에 남아있는 유목민의 ..

참살이의꿈 2006.04.28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의 불가사의

인간의 신비한 정신 현상 중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종교적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이 아닐까 싶다. 종교의 창시자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들이 경험한 종교적 신비체험이 늘 따라다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돈오(頓悟)라고 부르는 깨달음의 순간도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종교적 체험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힌두교의 요가 수행자들에게서는 이런 체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오랜 침묵이나 기도, 또는 은둔과 고행을 통한 감각의 제어에서 그런 체험은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찾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신비체험에서는 주로 빛과 소리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런 종교적 신비체험의 특징은 체험 후에 완전..

참살이의꿈 2006.04.27

미국제비꽃

전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제비꽃은 400 종 가까이되고,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만도 42 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제비꽃을 종류별로 구분하기는 참 어렵다. 꽃의 모양이 거의 같고 색깔로도 구별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구별 기준이잎인데 이것도그게 그것 같고 해서 쉽지가 않다. 앞으로 이 지상에 살아있는 날 동안 제비꽃 20 종 정도는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들이나 나나 같은 지구별의 손님들, 관심을 가지고 봐 준다면 그들도 좋아할 것만 같다. 이 미국제비꽃은 전주 덕진성당 화단에 피어 있었다. 미국제비꽃은 이름 그대로 해방 후 미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아마 관상초로 들어왔을 텐데 지금도 이렇게 화단에서 만날 수가 있다. 꽃에 비하여 잎이 유달리 크고 풍성하며,흰색 바탕..

꽃들의향기 2006.04.26

TAO[26]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대지를 따릅니다. 대지를 따른다는 것은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뿌리, 뿌리는 꽃잎의 화려한 재잘거림을 묵묵히 지켜볼 따르입니다.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먼 여행을 가서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를 봐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남 앞에 서는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뿌리의 중심을 잃고 남들과 같이 가벼워진다면 당신의 자리가 흔들흔들하겠지요. 왜냐하면 참된 힘power은 묵묵히 지켜보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 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노자가 우선하는 가치는 말[末]이 아니라 본[本]이다. 잎이 아니라 뿌리다. 유가(儒家)의 인[仁], 의..

삶의나침반 2006.04.26

독거(獨居) / 이원규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미안하지만 남들 바삐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 할 때 대나무 평상 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작설차를 마시고 남들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 없이 심심한 시를 쓴다 그래도 굳이 할 일이 있다면 가끔 굶거나 조금 외로워하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 그저 노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 스스로 위로하고 치하하며 섬진강 산 그림자 위로 다시 물수제비를 날린다 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 - 독거(獨居) / 이원규 나는 자본이 돌리..

시읽는기쁨 2006.04.25

20 : 15

출근할 때 지하철 역 앞에서 무료 신문을 나누어 준다. 지하철을 타는 20여 분의 시간에 읽기에 적당하여 주로 뉴스를 다루는 신문을 들고 가 지하철 안에서 읽는다. 며칠 전에는 영국 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영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남자들은 평균 20 분에 한 번씩 섹스를 떠올리고, 여자들은 15 분에 한 번꼴로 자신의 몸매와 사이즈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빈도가 너무 잦지 않은가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 조사는 우리가 얼마나 생물적인 본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들 머리 속이 쓰레기로 가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드는 것이다. 남자의 성적 욕구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하면 많이 퍼뜨리려는 유전자의 명령에 다름 아..

길위의단상 2006.04.24

TAO[25]

타오가 있었답니다. 하늘과 땅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상상해 보세요.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는 혼돈(chaos)의 세계를. 그곳은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에 휩싸여 모든 것이 서로 뒤섞이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답니다. 모든 공간을 넘나들며 모든 존재를 잉태하고 있답니다. 마치 대자연의 '어머니'처럼. 그 원초적인 혼돈의 세계를 뭐라고 부르냐고 묻는다면 타오라고 말할래요. 그 타오의 특징을 묻는다면 크다고 말할래요. 크니까 멀리까지 흘러가고 멀리까지 흘러가니까 다시 되돌아오지요. 위대한 타오를 가슴에 품은 하늘은 위대합니다. 위대한 하늘을 가슴에 품은 땅은 위대합니다. 위대한 땅에 사는 인간, 인간 또한 위대한 타오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위대하겠지요. 위대한 인간을 땅을 본보기로 살아가며 위대한 땅은 하늘을..

삶의나침반 2006.04.24

꽃씨를 뿌리다

올해는 텃밭의 크기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골과 골 사이도 넓게 해서심는 작물의 양도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일 계획입니다.골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도 이제는 숙달되어 혼자 해도모양이 멋지게 나옵니다. 작년에 밭으로 썼던 곳의 일부는 꽃밭으로 바꾸고 꽃씨를 심었습니다. 봉숭아, 채송화 등 꽃가게에서 사온 꽃씨가 열 종류 가까이 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씨앗의 생김새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꽃의 모습에는 익숙하지만 씨앗은 오랜만에 서로 비교하며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놈들이 제대로만 꽃을 피워준다면 예전 시골집 마당의 화단처럼 고전적인 화단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꽃잔디 씨를 많이 보내 주어서 둘레에 뿌렸습니다. 아무래도 봄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땅에서 초록 기운이 돋아나고, 나..

참살이의꿈 2006.04.23

처녀치마(2)

처녀치마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간다. 이리 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는데배경을 정리하기 위해 주로 밑에서 위로 렌즈를 향하고 쳐다보니 꽃에게 괜스레 민망해진다. 이름대로라면 처녀 치마 속을 마구 들여다보는 꼴이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로 처녀 치마 속을 이렇게 들여다 보았다면 따귀라도 맞았을 것이다. 아니 성폭행으로 고소를 당하고 창살에 갇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처녀는 생판 모르는 남자가 자기 치마 속을 들여다 보는데도 생긋 웃으며 다소곳이 앉아 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그러니 꽃을 본다는 것은 식물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내놓고 감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꽃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섹스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는 것은 인..

꽃들의향기 2006.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