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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참살이의꿈 2005.09.03

우리들의 대통령 / 임보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 말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 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내기도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

시읽는기쁨 2005.09.02

풍경(1)

인적 그쳐 한적한 바다에 가고 싶다. 키 큰 바다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파도 소리 더욱 쓸쓸한 텅 빈 바닷가에 서고 싶다. 사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호탕한 웃음과 화려한 몸짓으로 치장해보지만 세상 일은 여전히 힘겹고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은 무겁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한데 작은 조각배 한 척 흔들거리며 집 찾아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돌아갈 안식의 항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피곤한 내 영혼이 쉴 한 평 따스한 자리가 거기엔 있을까? 거기선 내 고운 사람이 고운 옷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운 마음도, 쓸쓸해진 마음도, 좌절도, 낙담도 저 바다는 다 품어줄 것 같다. 아픔이 아픔으로 위로 받듯, 외로움은 더 큰 외로움으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저 쓸쓸한 바다에 가고 싶다.

사진속일상 2005.09.01

무릇

이른 아침 오솔길에 무릇이 곱게 피어났다. 먼 산은 안개에 잠겨있는데 아침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있는 무릇은 마치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 같다. 키가 늘씬한 청순한 소녀의 웃음은 맑고 깨끗하다. 무릇은 긴 꽃대를 따라 분홍색 작은 꽃들이 달리는 여러해살이 풀로, 늦여름이면 우리 산하 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녹색의 풀들과 어울린 색깔이 무척 곱다. 봄에 나오는 무릇 잎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무릇일까? 세상살이가 고달플지라도 무릇 사람이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고운 꽃 한 송이씩 꼭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라는 뜻이 그 이름 속에는 담겨있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05.08.30

별난 급훈들

지난 달이었던가, 서울대 총장이라는 분이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 학생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자유경쟁을 내세우는 대표적 엘리트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마치 날 선 칼처럼 으스스하게 느껴졌었다. 교육이 솎아내는 기능이 있을지언정 그것은 부차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곧잘 교육을 농사에 비유하는데 농작물을 가꿔본 사람이라면 농사짓기란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을 북돋워주며 함께 키워가는 과정임을 안다. 도리어 연약한 쪽에 더 신경을 써서 물 한 모금이라도 더 주며 골고루 자라게 도와주는 것이다.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는 성적지상주의가 활개치는 무한경쟁의 터다. 소위 '좋은 학교'란 유명 대학에 학생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이다...

길위의단상 2005.08.29

배추와 호박

열흘 전에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읍에서 사온 배추 모종 100 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이만큼 예쁘게 자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배추가 잘 자랐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던 도시 사람이 하는 노릇 치고는 그래도 봐줄 만 하다고 하는 뜻임을 압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설프게 심었던 작년에도 그런대로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이웃에서는 약을 쳐도 벌레가 먹는다는데, 우리는 약 한 번 치지 않았으면서 별로 흠집 없는 배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와서 보고 이 집은 물도 안 주고, 약도 안 치는데 어떻게 배추가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들여온산흙에서 키워서 병충해의 침입..

참살이의꿈 2005.08.28

그리운 강 / 도종환

사람들은 늘 바다로 나갈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일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

시읽는기쁨 2005.08.27

달항아리

비 오는 날, 고궁박물관으로 달항아리를 보러 갔다. 지난 15일에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특별전으로 달항아리 9점을 전시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대형의 조선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백자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백 년 정도 되는 기간에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높이가 40cm 이상으로 지름과 높이가 거의 같은 비례를 이루는 큰 항아리로 워낙 크기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짓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 부분을 따로 지어 접붙여 만들었다. 그래서 허리께에 이음 부분이 보이면서 조금씩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달항아리의 매력은 깔끔한 정형이 아니라 어딘가..

읽고본느낌 2005.08.26

접시꽃

벌써 20년이 되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한 시인이 '접시꽃 당신'이라는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내놓아 사람들을 감동시켰었다. 그때에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와 사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인은 재혼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뭔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전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또 최근에 경험한 일이다. 터의 이웃에서 정답게 살아가던 부부가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아내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 온 부부여서 남은 남편의 충격과 슬픔도 컸다. 그런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다. 같이 경운기를 타고 다닌다는 둥, 새 여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예쁘다며 웃는다는 둥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

꽃들의향기 2005.08.25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남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 자기 자신 속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 모두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자유로운 의지인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재물을 거부했다.” 이것은 시몬느 베이유가 고등중학교 시절 철학 시간에 쓴 작문의 한 구절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유대인 의사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총명했으나 늘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시절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녀에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화두처럼 따라다녔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

읽고본느낌 200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