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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 이희중

심야에 일차선을 달리지 않겠습니다 남은 날들을 믿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할 일은, 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건강한 내일을 위한다는 핑계로는 담배와 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헤어질 때는 항상 다시 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겠습니다 아무에게나 속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심야의 초대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신도시에서는 술친구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여자의 몸을 사랑하고 싱싱한 욕망을 숭상하겠습니다 건강한 편견을 갖겠습니다 아니꼬운 놈들에게 개새끼, 라고 바로 지금 말하겠습니다 완전과 완성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늙어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살아 있음을 대견해하겠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견디기를 더 연습하겠습니다 울지 않겠습니다 - 오늘의 노래 / 이희중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의 나의 기쁨..

시읽는기쁨 2006.05.09

눈부신 봄날

출근한 아침의 화제는 단연 어제의 날씨였다. 한 사람은 자신이 서울에 산 이래 어제가 가장 화창한 봄날이었다면서 감탄을 하는데 그 말이 전연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서울에서 개성 송악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해의 배들이 선명히 보였으니 말이다. 오늘 날씨도 어제에 못지않게 맑고 화창하다. 구기동에 나간 길에 삼각산 구기동 계곡을 찾다. 봄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탓이다. 구두를 신어서 멀리 올라가지는 못하고 입구 부근 계곡에 잠시 앉았다 오다. 다행히 계곡물은 강원도 산에 버금가게 맑고 깨끗하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만 걸어들어가면 이런 풍요로운 자연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신록의 화사함에 눈을 씻고, 명랑한 계곡 물소리에 귀를 씻는다. 이럴 때 마음은 저절로 부자가 된다. ..

사진속일상 2006.05.08

TAO[29]

'나'를 경영하거나 '나라'를 경영하거나 매한가지랍니다. 하늘이 내려준 몫을 내 마음대로 흔들면 실패하기 쉽지요. 나라님 마음대로 흔들면 망하기 쉽지요. 지나치게 이기려고만 한다면 질 것이고, 지나치게 얻으려고만 한다면 잃을 거예요. 그것이 타오의 진실이랍니다. 앞장서는 사람도 있지만 뒤따르는 사람도 있지요. 호호 입김 불어 차가운 손 데워 줄 수도 있지만 호호 입김 불어 뜨거운 국물 식혀 줄 수도 있지요. 악착같이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지요. 위에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지만 아래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지요. 그러니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지나침을 경계한답니다. 특히 인간의 오만한 교만과 끝없는 탐욕을.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

삶의나침반 2006.05.08

연초록 향연

일 년 중에 이런 날을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어제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 후 오늘은 말 그대로 청명한 날씨가 나타났다. 오월의 신록이 햇빛 가운데 눈부시게 빛났다. 눈이 부시다는 표현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터에 다녀오는 길에 이 신록의 잔치를 구경하느라 몇 번이나 차를 세워야 했다. 한 해 중에서 신록의이 색깔은 단 며칠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신록예찬에서 찬탄한 색깔이 바로 이것이리라. 오늘은 눈을 어디에 두어도 오월의 푸른 하늘과 연초록 숲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 속이었다. 터에는 고구마 100 포기와 고추, 가지, 오이등을 심었다. 고구마 모종을 다른 작물처럼 똑 바로 세워서 심었다가 이웃분의 지적으로 다시 심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마디가 충분히 땅에 묻히도록 옆으로 뉘어서 꽂아야 고..

사진속일상 2006.05.07

이름 없는 양치기

TV를 볼 때면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들이 있다.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 눈길을 끌려는 광고, 지나치게 소비 지향적이고 사치를 부추기는 광고, 승자와 1 등을 찬양하며 경쟁을 당연한 세상의 논리인 양 호도하는 광고들이 그러하다. 요사이 TV에 나오는 광고 중에 칭기즈칸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세상을 호령했던 칭기즈칸도 열정이 없었다면 한낱 이름 없는 양치기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칭기즈칸과 이름 없는 양치기를 비교하며 양 몇 마리를 몰고 가는 양치기가 초라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에게 열정이 없다면 저렇게 초라한 양치기 신세로 된다는 메시지가 그 광고를 보다보면 은연중 들게 된다. 처음 이 광고를 보면서 무척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없는 양치기의 삶을 칭기즈칸과 비교하며..

길위의단상 2006.05.06

TAO[28]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자는 물론 여자도 그 내면에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함께 지니고 있답니다. 자신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킨다면 당신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넘치는 힘을 지닌 이 세상 가장 행복한 갓난아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당신에게는 새하얀 마음도 있지만 시까만 마음도 있어요. 당신에게는 겸손도 있지만 허영도 있어요. 하지만 새하얀 마음과 새까만 마음이 함께하는 삶, 바로 그런 삶이 세상의 본보기랍니다. 세상의 온갖 명예와 사치를 알면서도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되어 영원히 흐르는 강물과 이어지겠지요. 다듬기 전의 통나무와 같은 소박함을 잃지 않겠지요. 나무는 쪼개어 다듬으면 수많은 ..

삶의나침반 2006.05.05

남산제비꽃

남산제비꽃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이름에는 남산이 붙어 있지만 제비꽃 중에서는 그런대로 흔한 편이다. 이 꽃의 특징은 잎이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잎의 모양이 비슷한단풍잎제비꽃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전문가도 헷갈린다고 하니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산기슭에서 만나는 것은 대충 남산제비꽃으로 이름 붙여준다. 꽃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도 인간의 분류일 뿐이다. 관심을 가지고 가만히 봐주는 것 - 아마도 꽃은 그걸 원할지 모른다. 아니, 그냥 내버려 달라고, 더 이상 인간의 필요에 따라 나를 쳐댜보지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꽃들의향기 2006.05.04

아침가리골

직장의 등산회동료들과 함께 아침가리골을 다녀왔다.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아침가리골은 한자로 조경동(朝耕洞)으로 표기되는데, 구룡덕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20 km를 흘러 진동리에 이른다. 아침가리골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곡을 따라난 길도 중간 중간에 끊어져 있어 여러 번 계곡물을 건너며 올라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는 계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계곡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망가지는 과정을자주 보게 된다. 사람들이 찾으면 숙박시설과 유흥시설이 생기고 개발 바람이 부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그렇게 되면 오염이 뒤따르고 맑은 자연을 찾는 의의가 없어진다. 아침가리골에도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선다는 얘..

사진속일상 2006.05.03

오월의 유혹 / 김종호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 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 풍겨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길들여 감미롭게 핀 황홀한 오월 - 오월의 유혹 / 김종호 60 년대 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 시가 실려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고등학교 2 학년 교과서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교과서에는 지금 보아도 명문에 해당되는 좋은 글들이 여럿 실려 있었는데 그 글을 낭랑한 목소리로 해설해 주시는 국어 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키가 자그만하시고 나이가 드셨지만 동안이셨다. 목소리가 무척 맑고 고왔던 기억이 난다. 국어 ..

시읽는기쁨 2006.05.01

TAO[27]

타오는 대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 속삭임을 따르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답니다. 남의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그는 계산기 없이도 큰 셈을 할 줄 안답니다. 열쇠 없이도 더 큰 힘을 빌려 여닫을 수 있답니다. 마치 끈으로 꽁꽁 동여매지 않아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부모와 자식간 같이, 일부러 묶지 않아도 영원히 이어진답니다.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있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합니다. 그는 사람을 가려서 좋아하거나 물건을 가려서 취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타오의 자연을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는 '착한 사람'은 '못된 사람'의 본보기요, '못된 사람'은 '착한 사람'의 거울이라는 타오의..

삶의나침반 200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