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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지난달에 예초기를 샀습니다. 잔디를 깎기 위해서입니다. 집 주변에 심어놓은 잔디가 넓지도 않은데 낫으로 깎자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립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일주일이 걸려도 다 깎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서툰 탓입니다.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힘들지만 그럭저럭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초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것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낫으로 깎는 것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쉽고 빨리 일이 끝났습니다. 그분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며 예초기를 사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로 작동되는 신형 예초기를 산 것입니다. 저는 기계치(機械痴)라고 할 정도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는데 서투릅니다. 어쩌다 기계를 다루게 되면 꼭 무슨 ..

참살이의꿈 2005.09.27

도립리 반룡송

올라오는 길에 이천을 지나다가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반룡송을 찾아갔다. 넓은 벌판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크기가 예상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지난 번에 본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웅장함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역시 이름값을 하는나무였다. 이 나무를 찾아오는 길에 지나가는 촌로에게 위치를 물으니 방향을 가르켜 주면서 "그 나무 볼 만 할거요."라고한 말이 역시 빈말이 아니었다. 땅에서 큰 줄기가 올라가면서 옆으로 퍼져 있는데 뱀이 똬리를 틀듯 꼬여있는 모습이 무척 특이하다. 그래서'뱀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반룡송(蟠龍松)이란 이름은 이 소나무가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선지 줄기의 ..

천년의나무 2005.09.26

어느 저녁의 단상

어제는 저녁 하늘을 보러 한 사람과 같이 산에 올랐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멈추고 아침에는 맑은 가을 하늘이 나타났는데, 오후가 되면서 다시 구름이 덮이며 기대했던 노을은 보여주지 않는다. 짧은 시간 연한 붉은 기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진다. 잠시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한 사람과 만나며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젊었을 때는 육체적 미에 눈이 쏠리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정신적인 내면의 아름다움 쪽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육체적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상실이면서 슬프고 아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면에서 바라본다면 나이듦은 도리어 내적 새로움과 원숙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의 노쇠에..

사진속일상 2005.09.24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 김종해

사라져 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 김종해 이 시를 읽으면 죽음도 노을처럼 아름다워진다. 안녕히라고 두 손 흔들며 나도 노을 타고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소멸과 쓸쓸함 뒤에는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도 짧아서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저녁 노을을 보러 앞산에 올라봐야겠다.

시읽는기쁨 2005.09.23

땅의 옹호

'땅의 옹호'는 몇 해 전에 '녹색평론'에 실렸던 김종철님이 쓴 글입니다. 모니터로 이 글의 일부분을 본 옆의 동료가 글쓴이가 과격한 환경주의자인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는 환경낙관론자에서부터 환경비관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마침 최근에 '환경 위기의 진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환경낙관론자가 쓴 것어어서 색달랐습니다. 그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의 소리는 쉼없이 듣고 있지만, 지구 환경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자주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환경비관론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문명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환경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참살이의꿈 2005.09.22

코스모스(2)

오늘 같은 날은 가을 햇살 화사한 코스모스 꽃길을 걷고 싶다. 눈을 감으면 내 초등학교 시절 마을 앞 신작로에 활짝 핀 그 꽃길이 보인다. 거기에는 우리들 키보다 더 컸던 코스모스가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눈 시리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 사이에서 내보고 싶은 사람이 눈웃음 지으며 나올 것만 같다. 꽃길은 멀리 있는 읍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꽃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장난치며 걷다 보면 벌써 집이 보였다. 학교에 오가는 길은 그렇게 꽃길이었다. 코스모스는 한참 동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스모스(cosmos)에 '질서 있는 우주'라는 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이 꽃이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조형미로 따진다면 더 완벽한 꽃들도 많은데 말이다. 하나의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잠재의..

꽃들의향기 2005.09.21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대화’는 말 그대로 대화 형식을 빌린 리영희 선생님의 인생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봄,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서 선생님의 강연회가 열렸을 때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은 것은 한참이 지나 최근이 되어서였다. 7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빨려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무지몽매했던 과거의 내 부끄러운 현실의식과 역사의식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또 진실대로 살기를 염원하는 한..

읽고본느낌 2005.09.20

물방울 삼형제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끓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른 집도 사는게 다 똑 같더라." 그리고는 옆집의 누구는 형수와 틀어졌고, 또 누구네 집은 형제간의 불화가 아직껏 계속돼 서로 남보듯 한다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셨다. 그러나 '다른 집도'에서 '도'를 강조하시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내 마음도 슬퍼졌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온다던 막내를 잊지 못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어려운 자식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리라. 추석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반짝 나온 햇빛에 고향집 토란 잎 위 물방울 세 개가 보석처럼 빛났다.

사진속일상 2005.09.19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종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 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지난 여름 피서철에도 해수욕장의 무질서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요." 말이 바른 말이지 어느 짐승이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뒤를 지저분..

시읽는기쁨 2005.09.16

해바라기

집 앞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해바라기는 북미 원산의 한해살이풀인데 집과 들에 피어서 우리나라 초가을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빨간 고추를 말리는 마당 둘레의 돌담을 따라 피어있는 노란색 해바라기나,곡식이 익어가는 밭둑을 따라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풍경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핀다 하여 향일화(向日花)라고 했다. 어릴 때는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으나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핀다면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꽃이 서쪽이나 북쪽을 향하고 있기도 하고, 해를 바라보기는 커녕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해바라기 / 해님 따라 / 동동 / 하늘 한 바퀴 / 파아란 / 강물 위에 / 물수레 되어 / 빙빙 /온종일 / 돌고만 있다' 아무리 동요의..

꽃들의향기 200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