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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나리

애기나리는 보통 야산의 기슭에서 군락을 이루고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애기나리가 자라는 곳은 나무 그늘에 가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곳이다. 다른 식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땅, 일견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애기나리는 자란다. 그것이 강인하게 보이기 보다는 좋은 땅은 이웃에게 넘겨주고 스스로 낮은 곳을 선택한 겸손으로 보인다. 애기나리는 수수한 꽃이다. 꽃의 모양이나 색깔이 두드러진 점이 없이 그저 평범하다. 그리고 애기나리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늘 고개를 숙이고 있다. 꽃은 잎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사람들은 둥굴레로 착각하기도 한다. 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애기나리는 불평 없이 자신의 꽃을 피우고 살아간다.인..

꽃들의향기 2006.05.25

길의 노래 / 이기철

내 마지막으로 들 집이 비옷나무 우거진 기슭이 아니면 또 어디겠는가 연지새 짝지어 하늘 날다가 깃털 하나 떨어뜨린 곳 어욱새 속새 덮인 흙산 아니고 또 어디겠는가 마음은 늘 욕심 많은 몸을 꾸짖어도 몸은 제 길들여온 욕심 한 가닥도 놓지 않고 붙든다 도시 사람들 두릅나무 베어내고 그곳에 채색된 丹靑 올려서 다람쥐 들쥐들 제 짧은 잠, 추운 꿈 꿀 穴居마저 줄어든다 먼 곳으로 갈수록 햇빛도 더 멀리 따라와 내 여린 어깨를 토닥이는 걸 보면 내 어제 분필과 칠판 앞에서만 열렬했던 말들이 가시 되어 일어선다 산골 처녀야, 눈 시린 十字繡 그만두고 여치 메뚜기 날개 접은 들판 콩밭 누렁잎 보아라 길 끝에 무지가 차라리 편안인 산들이 누워 있고 산 끝에 예지도 거추장스러운 피라미들에게 맡겨버린 물이 마음 풀고 흐..

시읽는기쁨 2006.05.24

TAO[32]

타오의 세계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 세계에 굳이 이름 붙이라면 '영원한 에너지가 샘솟는 세계'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 마음에 굳이 이름 붙이라면 '나뉨 없는 하나 된 마음' 만약 리더가 '나뉨 없는 하나 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가 침묵해도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그를 따르겠지요. 땅과 하나 된 하늘은 촉촉이 단비를 뿌려 주겠지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뿌려 주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름 없는 타오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으로 세계를 나누기 시작했답니다. 모든 것을 쪼개고 또 쪼개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지요. 하나가 둘이 되니까 한마음이 두 마음이 되고, 두 마음은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기 시작했지요. 두 마음은 두근두근 언제나 불안하네요. 잠깐만요, 한마음으로 돌..

삶의나침반 2006.05.23

비 오는 날의 막걸리

비 오는 날은 괜히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괜히 신경이 예민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일도 생긴다. 오늘도 몇 가지 충돌이 있었다.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도 거세다. 마음은 어디론가 붕 떠서 날아간다. 이런 날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만나 커피도 좋고 막걸리도 좋고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말 없이앉아있고 싶다. 아무 말이 없어도 아무 부담감이 없는 그런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다. 아내와 마주 앉았다. 밖에는 빗소리가 들리고, 옛 팝송을 틀어놓고, 막걸리에 호박 부침개를 앞에 놓았으니 모든 게 갖추어졌다. 어디선가 조사한 것을 보니까 남자들이 배우자로서 제일 원하는 것이 친구 같은 아내라고 한다. 공감한다. 젊었을 때는 애인 같은 아내를..

사진속일상 2006.05.22

개구리 소리

잠에서 깰 때마다 쉼 없이 개구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밤중이 되면 소리가 잦아드는 법인데 아직도 짝을 구하지 못했는지 숫 개구리들의 구애의 노래 소리는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개구리 소리를 노래라고 보든 울음이라고 보든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입일 뿐이겠지요. 개구리는 그저 본능에 따라 울음주머니를 울릴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어떠하든 우렁찬 개구리의 합창 소리는 봄을 대표하는 소리입니다. 저렇게 큰 소리가 결코 시끄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봄의 교향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개구리 소리에 이끌려 논둑길을 논으로 나갔습니다. 모내기를 한 논마다 개구리들로 가득 찼는지 전후좌우 사방에서 들려오는 개구..

참살이의꿈 2006.05.22

슬픈 시대

영국의 찰스 2 세가 버스비 선생의 교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버스비 선생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자를 쓴 채 교실 안을 활보했다. 그러자 찰스 2 세는 모자를 벗어 팔 밑에 끼고서 공손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나중에 찰스 2 세가 문간에서 작별을 고하려고 하자 그때서야 선생은 찰스 2 세에게 정중히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저지른 오늘의 불경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소신의 학교 어린이들이 이 나라에서 소신보다도 위대한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 소신은 결코 이 어린이들을 지도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 일화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되었다. 나라의 임금이 찾아왔는데 선생은 본 체도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임금은 모자를 벗고 뒤를 따랐다는..

길위의단상 2006.05.20

산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는 오래동안 피어있는 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야에서 봄철 내내 자주 만날 수 있다. 자라는 곳도 산 속이나 인적 드문 곳이 아니라 산기슭이나 마을 주변이어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개울가를 따라 산괴불주머니가 노랗게 군락으로 피어있는 풍경은 봄이 보여주는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산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에 속하는데 꽃 모양은 현호색과 닮았다. 그러나 꽃대를 따라 길게 피어난 모습은 다른 꽃들과 달리 특이하다. 꽃의 색깔은 노란색인데 햇볕을 받는 정도에 따라 흰색도 나타난다고 한다. 옛날에 헝겊을 이용해서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던 노리개를 괴불이라고 했다는데, 괴불이라는 이름이 거기서 유래되었다면 이 식물의무엇인가가괴불과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본다. 그러나 꽃의 모양에서는 괴불을..

꽃들의향기 2006.05.20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살다 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 한 잔 나누며 외로운 가슴을 채워 줄 향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 공허함과 허기짐, 사람으로 인하여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이 고플 때가 있다. 고운 사람의 향..

시읽는기쁨 2006.05.19

어떤 청첩장

오늘 아침 우편함에서 B 씨의 편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B 씨와는 거의 30 년 전에 같이 근무했었는데 전근을 가며 헤어진 후로는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근무하는지 가끔 궁금한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 꼭 만나고 싶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근무처를 알아내서 서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B 씨로부터 온 것은 자녀 결혼에 대한 청첩장이었다. 물론 B 씨의 연락이 무척 반가웠지만 한 편으로는 씁쓰레한 기분도 들었다. 나를 기억해 주고 연락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미리 전화 한 통이라고 주었다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냥 달랑 청첩장 한 장만 들어있는 봉투를 보며 솔직히 약간은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짧은 메모라도 남겼어야 ..

길위의단상 2006.05.18

등꽃

이웃에 등나무를 기르는 집이 있다. 좁은 마당에 심어진 등나무가 2 층 베란다 난간을 따라 휘감으며 집을 둘러싸고 있다. 요사이는 등꽃이 활짝 피어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위를 쳐다보게 된다. 연보라빛 등꽃은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또는 애수를 느끼게 한다.등꽃 아래서 맺어진 사랑은 왠지 슬픈 사랑이 될 것 같다. 보랏빛 눈물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이별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보라색에서 외롭고 슬픈 인상,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느낀다고 한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등나무를 길러보고 싶다. 봄에 환하게 피어나는 꽃도 좋지만, 풍성한 잎이 만들어주는 여름그늘이 더욱 좋다. 특히요동치듯 꿈틀거리며 휘감고 올라가는 줄기의 뒤틀림은생명이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이다. 그 등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맛보는 ..

꽃들의향기 200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