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653

패자의 눈물

월드컵이 시작되고 우리나라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축구 열풍이 다시 온 나라를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승리를 기원하고 축하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4 년 전 우리나라가 4 강까지 올라간 월드컵 때는 나는 우리나라 경기를 한 게임도 보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미쳐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중계를 애써 외면했었다. 그 시간에는 다행히 서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구석에서 술을 마시거나 야외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삐딱한 그런 분위기를 즐겼다. 중계가 있던 어느 날의 저녁 시간이 기억난다. 지하철을 탔는데 승객은 서너 사람밖에..

길위의단상 2006.06.16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시읽는기쁨 2006.06.15

TAO[36]

타오는 움직입니다. 아주 신비롭게 움직이지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신비로움 속에서 이 세상 돌아가는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답니다. 날뛰는 것은 더 날뛰게 하세요. 그럼 기어갈 테니. 강한 권력에는 더 강한 힘을 쥐어 주세요. 그럼 약해질 테니. 퍼지고 있는 것은 더 퍼지게 놓아두세요. 그럼 수그러들 테니. 그러니 만약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많이 주어야 하지요.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녹인다는 진리, 약함이 강함을 누른다는 진리, 그것은 모두 타오의 신비로운 움직임 때문이지요. 아름답지만 눈부시지 않은 부드러움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물고기가 깊은 연못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눈부시도록 서슬 퍼런 칼날은 칼집을 떠나면 금새 무디어진답니다. 그러니 제발 눈부신 칼은 제자리에 넣어 두세요. 아름답지..

삶의나침반 2006.06.15

꿀풀

꽃들은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눈에 잘 띄도록 장식하고 향기를 뿜는다. 그런 유혹물들 중의 하나가 달콤한 꿀이다. 꽃은 결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그 아름다움이 주는 혜택의 최대 수혜자는 인간이라는생각이 든다. 아직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꽃이름에 '꿀' 자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꿀풀이 선택한무기는 꽃보다는 달콤함인 것 같다. 남쪽 함양 지방에서는 쌀농사 대신에 이 꿀풀을 심어 꿀을 채취해서 고소득을 올린다는 얘기를 들었다.하고초꿀이라고 하는데 하고초(夏枯草)는 꿀풀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 여름이면 말라버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것 같다. 아래 사진은 며칠 전 함양에 다녀온 동료가 찍은 꿀풀이다. 이렇게 논에다 꿀풀을 많이 심어서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꿀풀의 보라색 꽃은..

꽃들의향기 2006.06.14

아담을 기다리며

‘하버드의 수재 학생부부인 마사와 존 베크가 본의 아니게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생활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 되었다. 머리 좋고 야심적인 젊은 엘리트로서 학문적, 사회적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거의 미치광이처럼 맹렬하게 학업 경쟁에 몰두하고 있던 이 박사학위 후보자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임신 수개월 후 산과 검사 결과 뱃속의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버드의 교수, 학생,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들에게 장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신중절을 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베크 부부는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 자신 내부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읽고본느낌 2006.06.13

우후죽순

사무실 앞에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는데 지난 겨울을 지나며잎이 누렇게 되면서 말라 죽었다. 작년 12 월의 추위 탓인 듯 한데 이렇게 대나무가 피해를 본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죽은 대나무를 잘라내었더니 곧 죽순이 나왔다. 하루만에도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죽순은 내 눈에는 경이로웠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상 조건 탓이겠지만 크면서 주위에서 대나무를 보지 못했다. 고향 집 뒤에 있던 조릿대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니 죽순이 자라는 것을 계속해서 관찰해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뒤로 대나무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달이 지난 어느 날 앞 화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죽순이 어느덧 초록색 잎은 단 대나무로 변해 그 키가 무려 2 층 창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대나..

사진속일상 2006.06.12

우리 텃밭

올해 텃밭 크기는 작년의 반으로 줄였습니다.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일이 반으로 수월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려가면 해야 할 일이 언제나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어떨 때는 귀찮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며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작물을 거두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일 하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엔가 몰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고 봅니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집니다. 다른 노동과는 또 다릅니다. 땅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의 네 줄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두 주일 간격으로 ..

참살이의꿈 2006.06.11

희망의 언어 - 碩果不食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공개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의 주제가 '희망의 언어 -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습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고 저는 인터넷으로 중계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석과불식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주역 64 괘 중제일 절망적인 괘가 박괘(剝卦)인데 그 박괘를 설명하는 말이 석과불식인가 봅니다. 해석하면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 또는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라는 뜻이랍니다.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박괘에 비유될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선생님은 보는 듯 합니다.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물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재편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버리면 안되는데, 그 상징적인 구절이 바로 석과불식입니다. 그 ..

참살이의꿈 2006.06.09

비 와서 흔들리는 날

저기압이 다가오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해진다. 스스로를 어떻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아 버린다.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이러저리 방황한다.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헝클어져 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이것은 나만의 독특한 현상인 것 같다. 예전에는덜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 아내는 다시 사춘기로 돌아가느냐며 착각하지 말라고 놀리지만 결코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이런 날은 종일 헤드폰을 끼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다. 돌아보니 옛날에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하던 때, 비 오는 날이면 퇴근길에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가고는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왔다. 그때는 차창에 쏟아지는 ..

사진속일상 2006.06.08

노랑제비꽃

노랑제비꽃을 보면 왠지 탈속의 품위가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산의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해발 500 m 이상 되는 곳에서만 볼 수 있었다. 높은 산의 능선, 양지 바른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평지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꽃의 노란색은 모두 밝고 눈부시지만, 이 노랑제비꽃의 노란색은 독특하게 진하고 선명하다. 누구라도 그 생생한 색깔에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다가 노랑제비꽃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초록색 잎을 배경으로 샛노랗게 피어있는 꽃을 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해진다. 또한 산 속에 숨어사는 고결한 은둔자를 만난 듯 옆에 앉아 한 말씀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노랑제비꽃은 제비꽃 중..

꽃들의향기 200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