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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 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했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

시읽는기쁨 2006.06.27

장마가 그린 그림

지난 주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장마의 시작과 끝도 불명확해져 기상 관계자들을 당황케 한다고 한다. 게릴라성 폭우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어찌 됐든 기상학적으로는 한반도가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기간이 장마철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다만 장마 끝, 햇빛 쨍쨍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밤에 비를 뿌리더니 오늘 낮은 하루 종일 이슬비가 오락가락한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길 위에 고여있는물에떨어지는 빗방울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있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순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했다. 무엇인가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일생에 한 번은 무엇엔가에 온전히 젖어볼 일이다. 내가 너에게 온전히 젖을 수 있다면 내 삭막한 마음에는 너를 그리..

사진속일상 2006.06.26

솔나물

솔나물은 여름꽃이다. 꽃대를 중심으로 자잘한 노란꽃이 총총이 달려있다. 다른 꽃들의 노란색과 달리 솔나물의 노란색은잔잔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산길을 따라노랗게 피어있는 솔나물은 온통 녹색 천지의 세상에서 눈을 환하게 해준다. 솔나물이라는 이름은 잎이 솔잎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꽃대가 가늘고 약해선지 솔나물은 기우뚱 하고휘어져 몸을 눕힌다. 그 모습이 많은 꽃을 달고 싶어 무리를 하다가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과 닮은 듯하여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꽃들의향기 2006.06.26

밤꽃 향기에 젖다

여기는 밤꽃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어디서나 밤나무를 볼 수 있고, 마을의 정자나무도 밤나무입니다. 밤꽃 향기는 산과 들을 채우고는 넘쳐 흘러 마을로 밀려옵니다. 마을은 온통 야릇한 밤꽃 향기의 바다에 잠깁니다. 거실에 가만 누워 있으면 그 눅눅한 향기에 마취가 될 정도입니다. 향기를 무게로 잴 수 있다면 밤꽃 향기는 쇳덩이 마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냄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오전에 밭일을 하러 나갔지만 1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머리가몽롱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며 ..

참살이의꿈 2006.06.25

TAO[37]

타오는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꿔 주지요. 그리고 그 새로움은 저절로 균형을 잡아 가지요. 그러니 굳이 사람들에게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답니다. 마찬가지로 타오와 함께 하는 리더가 타오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아랫사람들에게는 절로 평화가 찾아온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달라붙은 욕망의 덫을 쓸데없이 헤집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덫에서 빠져나와 소박한 삶을 누리게 될 테니까요.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노자는 천성에 대한 낙관주의자이다. "그대로 두어라!" - 이 말은 천도(天道)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가까이는 가정에서 내 자식들에게 하는 간..

삶의나침반 2006.06.23

종교 신념 환자

이 시대의 가장 반종교적인 과학자라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인데, 종교와 종교적 신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기를 강조하는 과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종교인들이면 그의 비판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 교리를 정신 바이러스에 비유하고, 종교인을 잘못된 신념 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있어 종교 활동이란 정신적 사기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미숙한 정신이며, 아직도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리석은 정신이다. 그는 9. 11 테러로 상..

참살이의꿈 2006.06.22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뵌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인생은 고단하고 슬프다. 겉으로는 웃음으로 가리고 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모두 외롭고 아픈 존재들이다.속을 감추려 우리는 양파처럼 수많은 껍질로 내면을 감싸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

시읽는기쁨 2006.06.21

벌노랑이

벌노랑이는 석 장의 노란색 꽃잎으로 되어 있다. 키는 60 cm 정도로 자란다. 꽃의 모양은 무척 귀엽고 앙증맞다. 색깔은 노란색 꽃들이 보통 그렇지만 샛노랗다는 표현대로 눈을 부시게 한다.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갓난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며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벌판의 노란 것들이라는 뜻으로 벌노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아니면 꽃의 생김새가 노란 벌을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노란 별이라는 이름이 변해서 벌노랑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해 본다. 경복궁 서쪽 뜰에는 이 벌노랑이가 가득 피어있다. 인공적으로 파종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피어있는 이 꽃을 보러 일부러 길을 돌아 지나가곤 한다.

꽃들의향기 2006.06.20

뱀은 여전히 두렵다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

참살이의꿈 2006.06.19

풍경(3)

썰물 때 바닷가 갯벌은 생명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조수의 들고남에 따라 생명이 움직인 자국들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갯벌은 화판이 되고, 바다와 뭇 생명들은 신의 손이 되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무엇하러 다니느라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인간은 직선의 길을 만들지만 자연은 곡선을 만든다. 곡선은 부드럽다. 그리고 곡선에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멋진 그림은 누가 그렸지? 어느 유명한 화가가그린 나무도 바다가 그린 이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바다는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이건 누구의 집이지? 흙을 파내서 둥글게 울타리를 쌓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저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따스한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는 늘 파도 소리..

사진속일상 200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