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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 / 문정희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 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

시읽는기쁨 2005.08.23

태장리 느티나무

오래 된 동네 어귀에는 정자나무라고 불리는 고목이 있다. 대개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로 되어 있는 이런 나무들은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순흥을 지나다가 이 정자나무를 만났다. 국도 바로 옆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m에 달하는데 주민들의 휴식처이면서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동제(洞祭)를 지낸다고 한다. 그 말대로 나무 아래에는 돌로 만든 제단이 놓여 있다. 그런데 지금 한여름의 오후 시간, 동네며 나무는 온통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고목에 매미 소리 들리고,..

천년의나무 2005.08.22

비 온 뒤 풍경

며칠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서울 하늘을 무겁게 짓누르던 탁한 공기층이 사라지고 밝고맑은 새 하늘이 열렸다. 남한산성에 오르니 눈 가는데까지 시야가 트였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모두 겹겹이 드러났다.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이런 희귀한 전망에 감탄을 한다. 어떤 사람은 강화도 마니산,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산 위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며 멋진 노을을 기대해 봤지만 대기가 너무 맑은 탓인지 장관을 연출해 주지는 않는다. 잠깐 불 붓듯 타오르더니 아쉽게도 이내 식어 버린다. 해 진 뒤의 여운이 없어 아쉬웠다. 주위의 사람들은 작은 풍경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자리를 뜨지 않는다. 해가 지고 하늘의 조명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땅에서 꽃불이 피어났다. 멀..

사진속일상 2005.08.21

8월 장마

올 여름은 8월인데도 유난히 비가잦다. 장마였던 7월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아 이젠 7, 8월을 장마기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8월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이 주로 계속되었는데 몇 년 전부터인가는 그런 특징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주에는 거의 한 주일 내내 흐리고 비만 내렸다. 겨울의 3한4온 현상이 흐릿해져 버린 것과 비숫한 경향이 아닌가 싶다. 통계적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감각적으로 느끼는 기후는 확실히 옛날과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모습도 세상을 닮아선지 영 종잡을 수가 없다. 그걸 게릴라성 집중호우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하늘마저화가 잔뜩 나있는지 여기저기 물벼락을 쏟아붓기 일쑤다. 가끔씩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사이는 비가 내렸다 하면 늘 그렇다. 며칠..

길위의단상 2005.08.20

여름 하늘

여름은 하늘도 원색이다. 파란 배경에 흰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풍경은 대표적인 여름 하늘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름 하늘은 변덕쟁이다. 맑던 하늘이 어느 순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우르르쾅쾅 소나기가 지나간다. 그리고는 어느새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밤이면 번개들이 장난치는 불꽃놀이도 감상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두 시간 가까이 부드럽게, 어떨 때는 무섭게 효과음을 섞어가며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뒤이어 한 줄기 비가 쏟아지고 나면 밤하늘의 별들은 더욱 총총하다. 이런 것들은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선물들이다. 하얀 솜사탕 뭉게구름 사이로 서치라이트 마냥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 마음도 하늘을 닮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사진속일상 2005.08.19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

어처구니 /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 끝이 후끈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 어처구니 / 이덕규 재미있는 시다. 돋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신선하고 특이하다. 보통은 새싹에서 갓난아기와 같..

시읽는기쁨 2005.08.06

일의 의미

조기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십중팔구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려가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 계획인가요?” 그러나 아직껏 묻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할 일이 없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냥 텃밭이나 가꾸며 지내겠다는 말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치여 못 살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누구나 일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집착은 그 이상으로 강해 보입니다. 꼭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일이 없으면 삶 자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

참살이의꿈 2005.08.06

연꽃

고창에서 해리로 가다 보면 길옆에 작은 연못이 있다. 지금 이곳은 연꽃이 만개하고 있어서 무심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하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안쪽에는 정자도 있고, 더 들어가면 산 아래에는 농촌 마을이 있는데 이 연꽃 연못으로 인하여 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뭔가 예술적인 분위기가 난다. 저 마을에는 연꽃의 운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교의 아름다운 설화인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이야기에 나오는 꽃은 아마 연꽃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 꽃만은 맑고 깨끗해서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정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꽃들의향기 2005.08.05

악마의 구름

언젠가 우체국에서 겪은 일이다. 우체국 창구에는 고객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직원에게 이 사탕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래, 먹어도 되는 거야.”하고 직원에 앞서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의아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으니 화가 난 아가씨가 “왜 반말을 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녀 같은 나이인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하고,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반말을 하느냐며 대들었다. 나중에는 서로 반말에 험한 욕까지 나오는 싸움판으로 변해 버렸다. 요사이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가진 사람이나 못 ..

참살이의꿈 200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