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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일지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

참살이의꿈 2005.08.04

300mm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전주에는 300mm 가까이 되는 비가 내렸다. 밤 내내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 때문에 여러 번 잠을 깨었다. 무슨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도 들고, 괜히 천둥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새벽이 되니 어디선가 계속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웃 주택가에서 침수가 시작되어 대피하라는 경고 사이렌 소리였다. 아침에 나가보니 골목은 온통 물로 가득했다. 자동차는 반 이상 물에 잠겨있고, 골목으로는 보트가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것도 물이 많이 빠진 게저 정도라니 새벽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짐작이 된다. 저 골목 오른쪽에 처가쪽 큰집이 있는데 방으로 물이 들어와 지금 식구들이 옥상에 대피해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볼수가 없다. 이곳은 저지대라 늘 ..

사진속일상 2005.08.03

기심(機心)

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참살이의꿈 2005.08.01

도로 위의 청개구리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앞 유리창에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네 다리를 유리에 바짝 붙이고 납작 엎드려 있는 모양이 너무 애처로웠다. 순간 이놈을 어떻게 살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늦춰서 빨리 갓길로 가야 되는데 고속도로상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수도 없고 어떡 할까 망설이는 동안에 개구리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도로에 떨어져 뒤에 오는 차들 바퀴에 깔려버렸을 상상을 하니 마음이 무척 아팠다. 빨리 결단을 못내리고 우물쭈물하다가 한 생명을 애꿎게 죽여버린 것 같아 아직껏 자책이 된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가 어떻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나타난 것일까? 추측컨대 터에서 시원한 그늘을 찾느라 차 밑으로 들어왔..

길위의단상 2005.08.01

잠들고 싶지 않은 밤

잠들고 싶지 않은 여름밤이 있습니다. 불을 끄고 거실에 누우면 밤의 적막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오는 고요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방에 누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창문으로 작은 별 하나 반짝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끝에서 수십만 광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동자를 간지리는 빛의 신비에 전율하게 되는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불꽃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천군만마의 발자국 소리로 소나기가 몰려옵니다. 비릿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지나갑니다. 와르르작작 통쾌한 여름밤이 그렇습니다. 존재의 충일함으로 행복한 여름밤입니다. 하는 일도없이, 별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

참살이의꿈 2005.07.26

여름밤 /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 여름밤 / 이준관 도시에서는 결코 여름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 달아오른 시멘트의 열기가 밤 늦게까지 사람을 괴..

시읽는기쁨 2005.07.23

노랑어리연꽃

노랑어리연꽃은 연꽃 중에서도 귀엽고 화사한 편에 속한다. 보통 연꽃이라고 하면 잎도 꽃도 큼지막하고, 색깔도 흰색이나 붉은색이 많은데 노랑어리연꽃은 작고 샛노란 색이 특이하다. 귀엽게 보이지만 어떤 때는 요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노랑어리연꽃이 연못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으면 사방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같은 모양이지만 흰색 꽃은 어리연꽃이라 부르고, 노란색은 노랑어리연꽃이라 부른다. 최근에 본 노랑어리연꽃으로는 봉선사(奉先寺)에 피어있는 것이 최고였다. 이번 주말에 연꽃 축제가 열린다는데 미리 가 본 봉선사 앞 연못에는 백련, 수련, 노랑어리연꽃이 잘 어울려 피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가 노랑어리연꽃이었다. 수련, 주변 수초들과 어울려 피어있는 광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 감동을 사진으로 옮길..

꽃들의향기 2005.07.20

서울숲

지난 달에 문을 연 ‘서울숲’에 다녀오다. 개장을 일찍 했는지 아직도 나무를 심고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뒷정리로 어수선하다. 편의시설도 많이 부족하고 고만고만한 나무들도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그래도 도심의 이만큼 넓은 땅에다 숲을 만들려고 한 발상이 고맙기만 하다. 청계천의 시멘트를 뜯어내고 물을 흐르게 한다든지, 용산과 뚝섬에 대규모의 숲 공원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은 개발 일변도인 흐름에서 자연성을 회복하려는 신선한 정책으로 보여 환영할 만 하다. 한 바퀴 둘러본 ‘서울숲’은 인공물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나무를 많이 심어 자연공원을 만들려고 한 노력이 돋보여 특히 좋았다. 도시민들은 이제 오락 시설물들 보다는 신선한 공기와 초록의 숲을 원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새 소리..

사진속일상 2005.07.19

기대하지 마

당신, 사람에 대해서 너무 기대하지 마!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매너가 없어?” “그 사람에게 실망했어.” 이런 말이 자주 나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당신이 품고 있었던 기대와 환상 때문이야.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데 말이야.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이라는 대상만 빌려왔을 뿐 사실은 당신 자신에 대해 화를 내는 거야. 그러니 사람에 대해 불평하는 책임은 당신에게도 있어. 어떤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사람은 각자 자신의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거야. 그러니 이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의 세계가 있는 셈이지. 그 세계는 서로 겹치며 얽혀있지.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진실이고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자신의 세계 안에 안주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거지. 내 세계와 다른 세계가..

길위의단상 2005.07.19

휴대폰을 갖게 되다

휴대폰을 갖게 되다. 그동안 휴대폰 없이 지내왔는데 사실 큰 불편은 없었다. 휴대폰 없는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문명에 대한 또는 세상의 흐름에 대한 어떤 반감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좀 떨어져 살고 싶은 욕구도 한 몫을 했다. 그것은 일정 부분 친구들과의 교제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도 기본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휴대폰을 거부하는 작은 반항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직원 명부가 나왔는데 백여 명의 직원 중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래도 몇 명이나마 있었는데 이젠 휴대폰이 없는 경우는 거의 천연기념물 감이 되어 버렸다. 굳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내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

사진속일상 200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