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 24

서시 /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 서시 / 이정록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하나의 몸만 성하면 다행이다, 행복하다, 라고 안도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뒷산의 나무까지 보듬을 줄 아는 이 갸륵한 심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시선을 확장해 보면 안다. 나의 안락은 타자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내 몸의 성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살필 때 나는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시읽는기쁨 2022.08.31

고독의 매뉴얼

이 책의 절반 정도는 카페에서 읽었다. 카페에서 책 읽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카페에서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은 생활 소음이 일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조용하지 않으면 몰두할 수 없다. 늘 조용한 데서 책을 보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며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 소리까지 들리는 마당에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은 정신분석학자인 백상현 선생이 쓴 책이다. 부제가 '라깡, 바디우, 일상의 윤리학'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모두가 삶의 허망함에 관하여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잊기 위해 가족을, 연인을, 동지를, 술과 텔레비전을, 때로는 애꿎은 신을 욕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모든..

읽고본느낌 2022.08.30

70줄에 들어서면

공식적으로는 65세부터 노인이 된다. 내 경우에는 경노카드를 발급받을 때 벌써 노인이 되었나, 라는 씁쓰레한 심정이 앞섰다. 65세는 몸이나 마음이나 노인이라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 그러나 70줄에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이 앞에 '6'자가 붙는 것과 '7'자가 붙는 것은 천양지차다. 우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아무리 고령사회라지만 일흔이라는 나이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신체나 정신도 전과 확연히 다르다. 나이 70은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되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능동적인 생활 주체가 수동적인 약자로 변하는 시기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70줄에 들어서면 질병을 앓을 확률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이 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사망할 때까지 고령자의 약 10% 정도만 심신이..

참살이의꿈 2022.08.29

가을이 성큼 다가오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기온이 떨어져서 아침저녁에는 쌀쌀하기까지 하다. 밤에 잘 때는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한다. 여름 이불은 거두어 세탁기에 넣었다. 계절의 변화가 거인의 발걸음처럼 한순간에 닥치니 깜짝 놀란다. 가을 하늘이 좋아서 집을 나섰다. 경안천을 걸으면서 온통 하늘에 마음을 뺏겼다. 뒤돌아 본 남쪽 하늘에는 비취색 구름이 떴다. 파란 하늘에 비단 조각처럼 걸린 비취운(翡翠雲)이었다. 경안천 건너편으로 건너갈 돌다리가 지난 폭우로 유실되었다. 할 수 없이 온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왜가리, 백로, 오리가 사이좋게 이웃하며 쉬고 있다. 이런 날의 햇살은 보약과 같다. 얼굴을 간지리는 햇살을 담뿍 받아들였다. 무거운 몸이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면서 가을을 맞으러 나간 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2.08.28

마르코복음[54]

일행이 예루살렘 부근 올리브 산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가까이 다다르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이르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시오. 마을에 들어서자 곧 아무도 아직 타지 않은 새끼나귀가 매여 있는 것이 보일 터이니 풀어서 끌고 오시오. 혹시 누가 '왜 이런 짓을 합니까?' 하거든,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곧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시오." 그들이 가서 보니 과연 새끼나귀가 한길 쪽 바깥문 곁에 매여 있어서 그것을 푸는데 거기 있던 이 가운데 몇이 "새끼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을 가는 거요?" 하였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하니 그들은 내버려 두었다. 제자들이 새끼나귀를 예수께 끌고와서 그 등에 겉옷을 벗어 얹었다. 예수께서 올라타시자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고, 더러는 들에서 잎 많..

삶의나침반 2022.08.27

설봉공원에서 놀다

이천에 볼 일이 있는 아내와 동행했다가 - 운전기사 역할로 - 남는 시간에 설봉공원에서 혼자 놀았다. 다른 때 같으면 공원의 호수 둘레를 걷든지 설봉산에 오르든지 했을 텐데 이번에는 동선이 적은 쪽을 택했다. 어제 서울에 나갔다가 너무 늦게 들어와서 몸이 피곤해서였다. 설봉공원 안쪽에 들어갔더니 '이천 시립 월전미술관'이 있었다.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 화백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그림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미술관 뒤에는 월전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았다. 1996년의 작품 '야매(夜梅)'다. 달 밝은 밤에 핀 백매(白梅)를 그렸다. 淸影淸影 月明人靜夜深 맑은 그림자여 맑은 그림자여, 달 밝고 인적 없는 야심한 밤 1994년 작 '매..

사진속일상 2022.08.26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은행원 리카가 연하남 애인과 불장난을 하면서 고객 돈을 횡령하는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되는 줄거리인데, 돈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행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리카 외에도 여러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돈에 휘둘리는 군상들이다. 지리하고 우울한 삶을 소비로 만족하려 하지만 돈은 잠깐의 단맛을 줄 뿐 내면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기승전'돈'일 수밖에 없는, 무자비한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이 슬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 예외적으로 근검절약하면서 살아가는 유코도 마찬가지다. 돈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돈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그럴수록 돈의 위력 앞에서 무너진다. 돈을 마구 써대도 아껴도 돈에서 벗어나지..

읽고본느낌 2022.08.25

한 장의 사진(34)

'洛山寺記念 / 67. 7. 23' 올해가 2022년이니 55년 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낙산해수욕장의 의상대 앞이다. 앞줄 맨 왼쪽의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나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면사무소 직원들과 이장분들이 피서 여행을 동해안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나를 동행시켰다. 나는 그때 중3이었고 막 여름방학에 들어간 참이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지만 머리를 식힐 겸 바닷바람을 쐬고 오자고 아버지가 권했고, 나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실소가 일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떻게 어른들 가는 여행에 낄 생각을 했을까. 동료들 여행에 자식을 데리고 간 아버지도 그렇지만 졸래졸래 따라간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중3이면 가족끼리 여행을 하..

길위의단상 2022.08.24

습지생태공원에서 서하보를 왕복하다

경안천에 나갈 생각이 든 건 가마우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하보 부근에 수백 마리의 가마우지 떼가 몰려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로 많은 가마우지들이 날고 있었다. 이왕 경안천에 나간 길에 걷기를 겸해서 습지생태공원에 주차를 하고 서하보까지 걸어서 갔다. 약 3km 정도 되는 거리다. 서하보는 이름 그대로 광주시 서하리에 있는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보다. 보 옆에 사람이 건너는 다리는 높지 않아서 물에 쉽게 잠긴다. 서하보에는 지난 홍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서하리(西霞里)는 '서쪽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다. 가마우지 떼를 보려던 꿈은 꽝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린 모양이다. 대신 천 가운데서 쉬고 있는 왜가리와 백로를..

사진속일상 2022.08.23

불멸의 표절 / 정끝별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거리는 저 장다리꽃을 표절할래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할래 앙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아직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바닥에서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 그래, 본 적 없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들을 표절할래 진동하는 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 허공에 정지한 별의 생을 떠받치고 선 저 꽃 한 송이가 감당했던 모종의 대역사와 어둠과 빛의 고비에서 나를 눈뜨게 하는 당신의 새벽 노래를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표절할래 풀리지 않는, 지구라는 슬픔의 매듭을 베껴 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될래 다다다 나무에 구멍을 내듯 자판기를 두드리며 백지(白紙)의 ..

시읽는기쁨 2022.08.22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지은이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로 일하다가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직장을 잃었다. 수입이 끊어진 가운데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돈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삶의 우아함을 결정한다는 확신을 갖고 쓴 책이 이다. 이제 풍요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는 지은이의 말은 불안한 국제 정세나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보면 동감이 된다. 전과 같은 고성장의 호황기는 다시 올 것 같지 않고 절약이 불가피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과거와 같은 성장과 자원 낭비가 계속되면 지구가 여러 개여도 부족할 것이다.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

읽고본느낌 2022.08.21

코로나 격리의 지루함을 달래준 두 영상

어떤 사람은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간 시간 여유가 없어 못 본 영화와 드라마를 실컷 봤다고 한다. 증상이 경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머리가 띵 하고 의욕이 없으니 정신 집중이 필요한 독서나 영화 감상 따위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에 유튜브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봤다. 'Just for Laughs Gags'라는 캐나다 TV 프로그램인데 길거리에서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서 놀라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내용이다. 캐나다식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길이가 3분 정도로 짧고 스피디하게 전개되어 보는 데 지루할 틈이 없다. 마지막에 몰래카메라를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이 특히 재미있다.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캐나다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점도 ..

길위의단상 2022.08.20

쌓이면 터진다

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오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상세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지구 내부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터전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지구가 지각, 맨틀, 핵으로 되어 있듯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측 수준이지 거의 무지하다. 인간이 지각의 표면만 겨우 건드렸을 뿐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지구의 내부처럼 신비에 싸여 있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요인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고 암석이 녹는다. 아마 천 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마그마가..

참살이의꿈 2022.08.19

마르코복음[53]

일행은 예리고로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함께 예리고에서 다시 떠나실 때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걸인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말을 듣고 외치기 시작했다. "다윗의 아들 예수님,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 크게 외쳤다. "다윗의 아드님,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멈추어 서서 "그를 부르시오" 하셨다. 사람들이 맹인을 부르며 "힘내시오. 일어나시오. 그분이 부르십니다" 하자 맹인이 겉옷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왔다. 예수께서 맞으며 "무엇을 바랍니까?" 하시니 맹인이 "랍부니,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소서"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시오, 그대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습니다." 그러자 곧 그는 다시 보게 ..

삶의나침반 2022.08.18

물빛버즘(220816)

물빛버즘에게 가장 생명력이 왕성할 때가 여름이다. 초록 잎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은 생명의 환희를 온몸으로 노래하는 몸짓이며 춤이다. 해마다 수족이 잘려 나가는 도시의 가로수와는 다르다. 옆에만 서 있어도 나무의 싱싱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물빛버즘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쯤 될 것이다. 한창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나이다. 이제 황혼녘에 접어든 나는 부러운 눈길로 너를 바라본다. 인생의 각 시절마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어찌 청춘의 찬란함에 비길 수 있으랴. 약동하는 생명이라는 사실만으로 너는 충분히 아름답다. 물빛공원에 나온 날, 폭우로 산 아래 산책로는 폐쇄되었지만 잠시 너를 만난 것으로 충분하였다.

천년의나무 2022.08.17

그냥 둔다 / 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 그냥 둔다 / 이성선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으면서 비움과 내려놓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한다고 비워지고 내려놓게 되지야 않지만 일상이 비틀어지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이다. 늘 가슴 한 켠에 묵직한 뭔가가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누가 집어넣은 것이 아닌 내 스스로 만든 근심덩이다. 잔뜩 움켜쥐고는 힘들어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의미 있음이나 없음으로 가치를 나눌 수 없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할 뿐 내 분별심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내 주관과 아집에 의해서 '있는 그..

시읽는기쁨 2022.08.16

단풍잎부용

어제 동네를 산책하다가 만난 꽃이다. 구글렌즈로 검색해 보니 단풍잎부용이다. 이름을 알고 보니 부용의 느낌이 난다. 다만 꽃잎이 안까지 파져 있는 점이 부용과 다르다. 잎도 마찬가지로 깊게 갈라져 있다. 그래서 단풍잎부용이라 부르는가 보다. 부용(芙蓉)은 원래 연(蓮)의 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 꽃에도 같은 이름을 쓰다 보니 좀 헷갈린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부용은 미국 원산으로 들어온 지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개 부용은 분홍색과 흰색 꽃이 많이 보이는데, 이 단풍잎부용은 진한 홍색이다. 뜨거운 여름의 정열을 담뿍 담고 있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2.08.15

열흘만에 외출하다

코로나로 감방살이를 하다가 열흘만에 탈출하다. 동네 산책을 하며 콧구멍에 바람을 쐬다. 그동안 너무 누워 지내서 허리가 아프고 머리도 띵 하다. 이 무기력증은 코로나 뒤끝이기보다 너무 몸을 안 움직인 결과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책을 읽지도 못하고 블로그에 글을 적지도 못했다.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 과정을 관찰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은 개체적이지만 또한 보편적이다. 위대한 사람의 일기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리라. 죽을 때까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몇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분은 암 투병의 고통 중에서도 글을 올리며 정신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따위에 일상이 망가졌다. 훗날에 대한 자신..

사진속일상 2022.08.14

코로나에 걸리다

코로나에 걸린 누적 확진자가 2천만 명이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더하면 국민의 반 이상이 코로나에 걸린 셈이다. 주변을 봐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 비율이 반이 넘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만남이 되어 가고 있다. 나도 이번에 코로나에 걸렸다.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리며 지냈지만 한 순간의 방심에 무너졌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울에 가서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개차반이 되었다. 온갖 추태를 부리다 집에 들어왔으니 코로나가 가만 뒀을 리 없었다. 다다음날부터 기침이 나면서 증상이 나타났다. 나의 '코로나 일기'다. - 첫째 날(8/6) 오후부터 몸이 나른하고 목이 칼칼하면서 잔기침이 나다. 에어컨 바람 탓인 줄 알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 딸과 손녀들이 찾아왔지만 혹시나..

길위의단상 2022.08.12

고주망태가 되다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나갔다가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왔다. 점심에 중국집에서 배갈을 들이킨 게 화근이었다. 이과두주가 여러 병 놓여 있던 것만 기억날 뿐 그 뒤로는 필름이 끊어졌다. 저녁에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기사분한테 비닐봉지를 얻어 토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떡하면 좋지?" 라면서 친구들이 택시를 잡아 태우던 장면이 어렴풋하다. 술자리 처음 30분 정도만 기억날 뿐 나머지 여덟 시간은 어떻게 보냈는지 안갯속이다. 택시에서 내려서는 바닥에 쓰러졌고 아내가 데리러 나와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옛날 가락이 또 나온다고, 다음날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이젠 체력적으로 술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절제할 의지력도 부족하다. 적당한 한두 ..

사진속일상 2022.08.06

비 내린 경안천

두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연이어 한반도로 접근했으나 일찍 열대저기압으로 변한 탓에 둘 다 잔잔한 태풍이 되었다. 오히려 7월 말과 8월 초의 뜨거운 대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태풍이었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린 뒤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경안천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친척 형님과 점심을 하고 난 후였다. 경안천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둔치까지 물이 잠긴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천변을 따라 아내와 짧은 산책을 했다. 요사이 아내는 손발에 이상이 생겨 길게 걷지를 못한다. 집 거실은 물리치료실이 되었다. 점심에 만난 형님 부부네와도 대화의 대부분이 아픈 얘기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을 넘고 있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차례일 것이다. 이제는 병 자체보다도 병을 어떻게 받..

사진속일상 2022.08.04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 신동호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면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 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통합진보당 후배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새누리당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41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22퍼센트 정..

시읽는기쁨 2022.08.03

마르코복음[52]

다른 열 제자가 듣고서 야고보와 요한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알다시피 민족들을 다스린다는 자들은 그들 위에 왕노릇하고 높은 사람들은 그들을 내리누릅니다. 그러나 그대들 사이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 - 마르코 10,41-45 앞의 장면에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다른 제자들 몰래 예수를 찾아가서 얄미운 짓을 했다.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가 아니라 한 바탕 싸움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성질이 괄괄한 베드로가 가만있었을 것 같지 않다. 예수는 수준 미달..

삶의나침반 2022.08.02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톨스토이는 50세에 회심(回心)의 경험을 하면서 삶이 바뀐다. 거짓되고 타락한 삶을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먼저 진실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인류의 스승'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이때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항상 괴로워하며 시달림을 받았다. 톨스토이는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올바른 삶의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는 석영중 선생이 쓴 톨스토이의 삶과 사상에 관한 책이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 를 중심으로 톨스토이의 생각을 더듬어 본다. 에서 톨스토이를 대변하는 인물은 레빈이다. 레빈은 지주 귀족이었지만 농민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일하면서 삶의 의의를 깨닫는다. 육체의 쾌락에 빠진 안나가 비극적인 죽음..

읽고본느낌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