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 30

다정소감

책 제목인 '다정소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다정소감(多情小感)이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 내용도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을 이런 단어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책 말미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다정소감(多情所感)이다. 내 엉뚱한 추측에 실소를 했다. 은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이다. 글에서는 글을 쓴 사람이 보인다. 지은이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도 해 본다. 김혼비 작가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다이내믹한 분 같다. 정과 동을 겸비한, 그래서 만나면 무척 재미있을 분으로 느껴졌다. 풋풋한 햇사과를 먹는 것..

읽고본느낌 2022.09.30

혼자라서 / 이운진

썩 나쁜 일은 아닐 거야 구름의 지도를 그리고 꽃이 피는 속도를 알았으니까 정확히 몇 시에 대추나무가 가장 곧게 서는지도 알게 됐으니까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 내 꿈은 왜 자꾸 무너지는지 생각하다가 뒤늦은 질투에 부끄러워지는 일 봄볕 같은 감정들을 혼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알겠어 - 혼자라서 / 이운진 인생이란 '혼자'와 '함께'의 균형/조화를 맞추는 일이 아닐까. 오청원 9단이 '바둑은 조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인생에도 마찬가지이지 싶다(마침 어제 우리나라의 오유진 9단이 오청원배 세계 바둑대회에서 중국의 왕청신을 꺾고 우승을 했다). 조화가 양적인 중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와 '함께'의 비율을 5:5로 지킨다고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타고난 성향..

시읽는기쁨 2022.09.29

신구대식물원 꽃무릇

꽃무릇을 보러 신구대학교 식물원을 찾았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사진처럼 대부분의 꽃무릇이 탈색되어 볼 품이 없었다. 이곳 꽃무릇을 보자면 15일 이전에 와야 할 것 같다. 위로 올라가니 그나마 거실 넓이만 한 비탈에 일부가 남아 있었다. 끝물이었지만 일부는 꽃봉오리가 맺힌 것도 있었다. 보물찾기를 하듯 싱싱한 놈을 고르면서 중얼거렸다. 너희들만이라도 남아 있어 줘서 고마워~ 성남에 있는 신구대학교 식물원은 처음 가 봤는데 아기자기하면서 아담했다. 현장 학습을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 꽃무릇은 나무와 오솔길을 따라 피어 있어 규모는 작아도 정감 있는 분위기에 젖을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는 때를 잘 맞추어 찾아와 봐야겠다.

꽃들의향기 2022.09.28

하늘정원 코스모스

코스모스를 보러 영종도 하늘정원에 갔다. 하늘정원 코스모스 꽃밭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라인 아래에 있다. 코스모스와 비행기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고 싶었다. 하늘정원은 올 초에 한 번 찾았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는 꽃이 없어 황량했는데 이번에는 넓은 벌판이 온통 코스모스로 뒤덮였다. 출렁이는 코스모스의 바다 같다. 시골길에서 하늘거리는 소담한 코스모스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런 맛 또한 괜찮다. 코스모스 꽃밭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풍경을 찍고 싶었으나 제대로 되지 못했다. 우선 비행기가 예상보다 뜸했다. 전에는 꼬리를 물고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이쪽보다는 제 2터미널 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많았다. 또, 포인트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꽃들의향기 2022.09.27

마르코복음[57]

일행이 새벽에 지나가다 보니 저주받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있었다.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보십시오.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을 믿으시오. 진실히 말하거니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던져져라' 하면서도 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말하는 대로 되리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거니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모두 받는다고 믿으시오. 그러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려고 서 있을 때 누구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거든 그를 용서하시오. 그래야 하늘에 계신 그대들의 아버지께서도 그대들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 마르코 11,20-26 예루살렘 성전과 병치되어 나오는 무화과나무 비유가 무..

삶의나침반 2022.09.26

200일 & 50일

200일은 TV를 멀리 하고 있는 날짜다. 올 3월 9일에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바라지 않던 후보가 당선되었다. 표차는 0.7%였다. 앞으로 5년 동안 TV 화면으로 그를 봐야 하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TV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0일이 지났다. 단, 스포츠 중계는 예외다. PBA 당구대회가 열리면 어쩔 수 없이 TV를 켠다. 다음달부터 배구 시즌이 시작된다. 여자배구를 좋아하니 자주 TV 앞에 앉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허용하기로 한다. 왜 그 사람이 싫을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적은 없었다. TV를 안 보겠다는 결심도 처음이었다. 요사이 그 사람이 보여주는 처신을 보면 내 판단이 얼토당토한 것은 아니다. 부인한테서 받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TV를 보지 않으니..

참살이의꿈 2022.09.25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가을 코스모스를 보면 아련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미루나무가 도열한 신작로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집에서 학교로 오가는 길이 둘 있었지만, 가을이면 아이들 발걸음은 저절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신작로로 들어섰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가 먼지를 날려도 상관없었다. 코스모스 꽃을 따서 책보를 장식하기도 하고, 동무 옷에 압착시켜 무늬를 새기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꽃을 날리면 코스모스는 헬리콥터 날개 마냥 돌면서 강물에 떨어졌다. 강물 따라 흘러 내려간 코스모스는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동네 산자락에 코스모스 길이 있다. 좁은 오솔길 양편으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질서 있게 가꾼 도시 공원의 코스모스와는 다른 분위기로 자연..

꽃들의향기 2022.09.24

모든 요일의 여행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 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만난 것만으로도 책을 든 본전은 뽑은 셈이다. 나에겐 '여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면서, 사람마다 여행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지은이가 모든 여행의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지만 우리는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다. 은 카피라이터인 김민철 작가가 쓴 여행기다. 유명 관광지나 풍물을 소개하는 대신 여행지와 나와의 내면적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기록이다. 낯선 뒷골목, 우연히 만난 사람, 의외의 풍경이 주는 기쁨 등이 정감 있는 사진과 ..

읽고본느낌 2022.09.23

성지(34) - 남한산성 순교성지

성지 49. 남한산성 순교성지 남한산성은 신해박해(1791년) 이후 약 300명에 이르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장소다. 성지 부근에 처형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시신은 동문 옆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버려졌다. 워낙 시신이 많이 쌓여 수구문을 사람들은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렀다고 한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한덕운 토마스(1752~1802)를 비롯하여 36명이다. 새 성당은 2015년에 신축했다. 지금은 '토마스 홀'로 사용하는 곳이 예전 성당이었다. 오래전에 이곳에서 마루에 앉아 미사를 드리던 기억이 새로웠다. 성당 옆 성모 마리아. 숲 속 산책로. 십자가의 길과 연결되어 있다. 야외 미사터에 있는 예수 고난상. 성지 안은 초가을의 정취가 가득했다. 십자가와 구름. 순교자 명단이 ..

사진속일상 2022.09.22

기대 없음의 행복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대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다중(多衆)보다는 고독이라고 되새김질하는 자체가 이미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DNA에는 무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원시시대에는 야생 상태에서 혼자 떨어져 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홀로 있으면 스트레스가 작동하도록 하는 명령어에 불이 켜지는 것은 당연했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할 때 기본적으로 기쁨을 느낀다. 야생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도 인간은 소속감을 통해 안전과 위안을 ..

참살이의꿈 2022.09.21

목현천에 나가다

몸 상태가 80% 정도 올라왔다. 아직 허리를 굽히거나 돌릴 때 통증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세월은 빨리 흐르지만, 늙은 몸의 회복은 더디다. 목현천에 나갔다. 목현천은 지난달 큰물이 났을 때 범람하면서 많은 피해가 났던 곳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지금은 쌓인 토사를 제거하는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이배재를 지나 성남으로 가는 새 도로가 건설중이다. 넓은 무궁화 꽃밭도 새로 만들어져 있다. 어쩌면 묘목을 기르는 곳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이쪽으로 나오니 여러가지가 달라졌다. 집에서 목현천을 오가자면 산자락에 난 길을 지나야 한다. 가을이 짙어지면 단풍이 아름다운, 짧지만 운치 있는 길이다..

사진속일상 2022.09.20

아기 업기 / 이후분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자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는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 아기 업기 / 이후분 우리가 어렸을 적 시골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상례였다. 농사철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아이들의 작은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 꼴을 베거나, 뒷산에서 땔감을 하거나, 또는 송아지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풀을 뜯어먹게 하는 일은 남자아이들의 몫이었다. 그중에서 송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제일 인기 있었다. 송아지는 제가 알아서 풀을 뜯고, 그동안에 우리는 실컷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한참 뒤에야 송아지가 없어진 걸 알았다. 온 동네가 난리가 났고, 저녁 느지막..

시읽는기쁨 2022.09.19

조선의 뒷골목 풍경

우리는 왕조나 위인 중심으로 역사를 배운다.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라면, 정사(正史)란 역사 스토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긴 시간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간 수많은 평민, 상놈들의 땀내 나는 사연은 통째로 잊혀 있다. 왕이나 양반, 위인들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삶을 드러내는 작업도 역사가의 책무라고 본다. 은 일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재현한 사람 냄새 나는 생활의 역사서다. 지은이인 강명관 선생은 한문을 전공한 교수로 옛 서적에 나오는 장삼이사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백성을 살린 이름 없는 민중의, 군도와 땡추, 유흥가를 지배한 무뢰배들, 조선의 오렌지족,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금주령과 술집, 가부장 체제에 반기를 든 여인 등..

읽고본느낌 2022.09.18

마르코복음[56]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시어, 성전에서 팔고 사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여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고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 나르는 일도 금하셨다. 그리고 가르치셨다. "성서에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씌어 있지 않소? 그런데 당신네는 '강도 소굴'로 만들어 버렸소." 대제관들과 율사들이 듣고는 그분을 없애 버릴 방도를 찾았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했으니, 군중이 모두 그분 가르침에 매우 경탄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자 일행은 성 밖으로 떠나갔다. - 마르코 11,15-19 예수살렘 성전의 예수는 갈릴래아의 예수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전투 모드로 바뀐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아예 '강도 소굴'이라고 비난한다. ..

삶의나침반 2022.09.17

러빙 어덜츠

넷플릭스에 혹시나 볼 만한 게 있는지 들어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많은 경우 실망을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제목이 '러빙 어덜츠(Loving Adults)'인데 번역하면 '사랑스런/사랑하는 어른들' 쯤 될까, 그러나 내용은 제목과 반대로 끔찍한 살인을 소재로 한 치정물이다. 영화는 미제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진행과 두 부녀의 대화가 교차하며 스토리는 전개된다. 사랑이라는 외피를 쓴 애착과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두세 차례 반전도 나온다. 청순해 보이는 아내 레오노라가 뒤로 갈수록 섬뜩한 여자로 변한다. 불륜을 저지른 어리바..

읽고본느낌 2022.09.16

조심스레 산책하다

허리가 결린 지 일주일째다. 차도가 아주 느리다. 어제는 밖으로 나가 마을 주변을 조심스레 산책했다. 올해 후반부는 너무 어렵게 시작된다. 8월에는 코로나로 두 주일, 9월 지금에는 허리 통증으로 한 주일 넘게 힘들어하고 있다. 연례행사로 잊지 않고 날 찾아오는 병이 셋 있다. 감기, 허리 결림, 어지럼증이다. 셋의 공통점은 예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번 허리 결림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전 아침에 일어났더니 허리가 뻐근하며 몸을 제대로 굴신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꿈을 꾸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심하게 뒤척이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었다. 얼마 전의 꿈에서는 상대와 싸우다가 실제로 발차기를 하는 바람에 침대에 부딪힌 소리에 놀라 아내가 달려오는 소동이 있었다. 감기..

사진속일상 2022.09.15

제임스 웹이 찍은 수레바퀴은하

우주의 풍경 앞에서는 가슴이 뛴다. 요사이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조차 잊은 처지지만, 우주망원경이 보내오는 사진이 있어 허전함을 달래준다. 작년에 하늘로 올려진 제임스 웹은 허블보다 더 선명한 이미지를 선물하고 있다. 얼마 전에 제임스 웹이 찍은 수레바퀴은하가 공개되었다. 아름다운 은하나 성운이 많지만 수레바퀴은하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원 이름은 'ESO 350-40'인데 생긴 모양에서 통상 '수레바퀴은하(Cartwheel Galaxy)'라 불린다. 수레바퀴은하는 우리은하에서 5억 광년 떨어져 있고, 지름은 15만 광년이다. 원래는 나선은하였는데 다른 은하와 충돌하면서 생긴 충격파가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고리 모양을 만들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호수에 돌이 떨어질 때 생기는 파문과 비슷하다. 충..

길위의단상 2022.09.14

부탄, 행복의 비밀

"첫눈이 오면 학교나 일터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아이가 만 두 살이 될 때까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줄여준다. 전 국토의 70%를 숲으로 보전한다. 고을마다 며칠씩 전통 축제가 열린다." 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부탄은 면적이 39,000㎢(한반도의 1/3), 인구가 80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인 아시아의 가난한 소국이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유명하다. 부탄은 국가 운영의 첫째 지표가 경제 성장이 아닌 행복이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

읽고본느낌 2022.09.13

추석 만월 / 송진권

애탕글탕 홀아비 손으로 키워낸 외동딸이 배가 불러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네 각다귀 놈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한 뒤 한 이태 소식 끊긴 여식 더러는 부산에서 더러는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걸 보았다는 소문만 듣고 속이 터져 어찌어찌 물어 찾아갔건만 코빼기도 볼 수 없던 딸년 생각에 막소주 나발이나 불던 즈음일 것이다 호박잎 그늘 자박자박 디디며 어린것을 포대기에 업고 그 뒤에 사위란 놈은 백화수복 들고 느물느물 들어오는 것 같은 것이다 흐느끼며 큰절이나 올리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홀아비 살림살이만 같아 방바닥에 소주병만 구르고 퀴퀴하구나 만월이여 그 딸내미같이 세간을 한번 쓰윽 닦아다오 부엌에서 눈물 흘리며 조기를 굽고 저녁상을 볼 그 딸내미같이 - 추석 만월 / 송진권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심..

시읽는기쁨 2022.09.12

두 가지를 경계한다

늙어지면서 두 가지를 경계한다. 하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가는 것이다. 노화는 몸과 마음의 모든 기능이 퇴화하는 과정이다. 하늘로부터 받고 누린 것을 하나하나 돌려줘야 한다. 상실이 순리라고 할지라도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가슴이 뛰는가. 어린 손주의 해맑은 웃음, 왕성한 호기심,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동시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케 한다. 워즈워스는 무지개를 보며 노래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마찬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무지개'는 자연에 대한 감성과 경이감일 것이다. 어린..

참살이의꿈 2022.09.11

9월의 장미

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에 꽃의 여왕인 장미가 핀다. 그런데 요사이 장미는 사시사철 언제나 볼 수 있다. 원예종으로 개발된 장미 품종이 25,0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추위에도 견디는 장미가 만들어졌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9월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만난 장미다. 활짝 핀 꽃과 함께 많은 꽃망울이 맺혀 있다. 가을에 보는 장미는 여전히 색다르고 이질적이다. '장미=봄'이라는 등식이 뇌리에 박힌 까닭이다. 언젠가는 동네의 한 집 울타리에 겨울에 핀 장미가 있어서 한참 들여다 보기도 했다. 이젠 더 이상 꽃이 계절의 전령사가 아닌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2.09.10

공원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다

뒷산 동쪽 구역에 공원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넓이가 35만㎡나 되는 큰 공원이다. 그동안 시민의 휴식처가 없었는데 이제 제대로 된 공원이 생기는 셈이다. 공사 현장에 가 보니 산허리를 지나는 통행로가 나 있고, 시설이 들어설 부지 조성도 하고 있다. 자연 보존과 개발은 늘 딜레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만들자면 일정 부분 자연 훼손은 피할 길이 없다. 이 공원을 만드는 데도 수천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갈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지가 70%가 넘어서 새로 개발하는 곳은 대부분 산림 파괴를 수반한다. 나 역시 공원이 들어서는 것은 반기지만, 맨흙이 드러난 공사 현장을 보는 마음은 심란하다. 산 능선의 등산로도 사라졌다. 자주 쉬던 벤치가 전에 길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산 가운데로 진입하는 터..

사진속일상 2022.09.09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시인이 올해 교직에서 명퇴를 하고 '이발소'를 개업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웬 이발소? "라고 의아해했는데 '이야기발명연구소'의 줄임말이란다. 그리고 명..

시읽는기쁨 2022.09.08

마르코복음[55]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를 떠나올 때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달린 것을 멀리서 보시고, 혹시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다가가셨는데,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무를 향해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영영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는 일이 없으리라."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 마르코 11,12-14 성경을 읽을 때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주로 구약에 많지만 신약에도 몇 군데 있는데 이 장면이 그렇다. 처음 성경을 접했을 때나 지금이나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우선 아무 죄 없는 나무를 저주하는 예수의 이미지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시장하시다지만 무화과 열매가 없다..

삶의나침반 2022.09.07

부러진 사다리

불평등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불평등의 거시적 원인이나 경제적 영향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부제가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이다. 인간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빈곤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유량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내 위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다리는 길어지고 중간에 부러지기까지 한 상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희망인 것 같다. 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키스 페인(Keith Payne)이 썼다. 책은 많은 심리 실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

읽고본느낌 2022.09.06

좌파와 우파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치적 이념의 양극화도 덩달아 심각해지는 것 같다. 전에는 진보와 보수로 두리뭉실하게 나누었지만, 그중 상당수가 극단으로 쏠려서 '좌빨'이나 '수꼴'이라는 네이밍이 이젠 자연스럽게 들린다. 동기들 단톡방은 이런 극단적 목소리로 차고 넘친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경계는 모호하다. 예를 들면, 현재 민주당이 진보 정당인가? 나는 국민의힘과 별로 다르지 않은 보수 정당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선거에서 내건 공약을 보면 두 당의 차이가 거의 없다. 민주당이 개혁 보수라면, 국민의힘은 수구 보수다. 둘 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당이다. 진정한 진보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민주당을 어떤 사람은 좌파 정당이라고까지 부른다. 좌파에 진보가 ..

길위의단상 2022.09.05

강변의 나무수국

수국, 산수국, 나무수국은 언제나 헷갈린다. 여름에 수국이 필 때 확인하고 나서 일 년이 지나면 입력한 많은 내용이 딜리트(delete) 된다. 셋의 차이를 다시 검색해봐야 한다. 수국만이 아니다. 구별이 애매한 꽃이라면 해마다 되풀이하는 짓이다. 꽃만 아니라 새도 그렇다. 일전에 강변에 나갔을 때 만난 나무수국이다. 이번에 검색해 보니 정확히는 큰나무수국인 것 같다. 수국 중에서도 꽃이 큼지막하고 탐스럽다. 이맘 때면 제일 자주 만나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2.09.04

뒷산으로 쫓겨나다

이웃집 공사 소음이 심해서 뒷산으로 피난을 가다. 덕분에 오붓하게 초가을의 산길을 걷다. 계절이 변하니 산길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숲에는 늦은 매미들의 세레나데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진다. 한여름의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은 부드러워지면서 전체적으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산길을 따라 연이어 배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다가올 태풍에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 강력한 태풍으로 예고된 태풍 '힘남노'가 6일 오전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한다. 3일 오후 1시 현재 힘남노의 위성사진이다. 대만 동쪽 해상에 있다. 중심기압 940hPa, 최대풍속 48m/s인 매우 강한 태풍이다. 내일은 더 발달하여 중심기압이 920hPa까지 내려간다. 초강력 태풍으로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6일에..

사진속일상 2022.09.03

탄천에 나가다

당구 모임에 가는 길에 탄천에 나갔다. 오후 모임이었지만 아파트 이웃이 공사를 하는 탓에 소음이 커서 일찍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분당 매화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여수천을 따라 내려가 탄천과 합류했다. 여수천 곳곳에는 지난 수해의 상흔이 남아 있다. 걷는 도중에 조깅을 하는 레펜스 선수를 봤다. 분당에 집을 얻어 아내와 함께 생활하며 당구선수 활동을 하는 벨기에 선수다. 매너와 인상이 좋아서 시합에 나오면 응원을 한다. 다시 한번 우승하길 바란다. 청명한 초가을 날씨로 한낮 햇볕은 따가웠다. 한 시간 반 정도 천변을 걷다가 이매역에서 전철을 타고 모임 장소로 갔다. 알코올은 입에 대지 않으면서 술자리에 오래 동석했다. 술 취한 친구들 넋두리를 듣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허나 과거 내 모습이 그러하지 않..

사진속일상 2022.09.02

한강변 따라 드라이브

고향 마을 이웃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쇠약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의 제일 가까운 친구였는데 어머니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전화기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모르겠다. 바람을 쐬면서 우울한 심사를 달랠 겸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집 부근에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도로가 여럿 있다. 오늘은 한강변을 택했다. 달리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잠깐씩 쉬기로 했다. 퇴촌을 지나 342번 지방도를 탄다. 분원리에서 운심리까지 팔당호를 끼고 있는 이 길은 수도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잠시 물안개공원에 들렀다. 전 같으면 공원을 한 바퀴 돌았겠지만 아내가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수청리 나루터도 빼놓을 수..

사진속일상 202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