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8

경복궁에서 만난 날

전 직장 동료 다섯이 경복궁에서 만났다. 장길산이 산티아고를 40일 동안 걷고 돌아온 핑계로 모인 만남이었다. 퇴직하고 나니 각자 생활에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얼굴을 볼 뿐이다. 산티아고는 거의 포기 상태지만 다녀온 얘기를 듣다 보니 언젠가 나도 그 길에 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에 젖어 보았다. 실행 여부를 떠나 꿈꿀 수 있다는 것만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닌가. 오랜만에 가 본 경복궁에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이 엄청 많아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현상도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동료를 기다리느라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옆에 있는 50대 정도 되는 필리핀 남자가 말을 붙인다. 아내, 딸과 가족여행을 온 사람이다. 10일 간의 일정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

사진속일상 2018.06.22

건청궁이 복원되다

건청궁(乾淸宮)이 복원 공사를 마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아직은 제한적인 인원에게만 공개를 하고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안내원을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낮 시간에 짬을 내어 동료를 따라 구경을 했다. 건청궁은 경복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고종과 명성왕후의 거처였다.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끝날 때인 1873년에 고종은 이 건청궁을 짓고 명성왕후와 함께 기거했다. 건축양식은 일반 양반가옥의 살림집에 비슷하게,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청궁은 1895년에 명성왕후가 시해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7년에는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들여와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다. 일제시대에 들어 이 건청궁은 철거되었고, 총독..

사진속일상 2007.11.03

가을과 고궁

가을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나뭇잎도가을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창문 밖에 있는 나무는 하늘에 가까운 잎부터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을 기운에 이끌려 퇴근하며 동료와 같이 경복궁에 들렀다. 근무지 바로 옆이 경복궁이니 우리에게는 경복궁이 앞마당과 같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쉬이 들어갈 수 있건만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갖기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는데 고궁만한 데도 없다. 아직 초추(初秋)지만 만추(晩秋)로 갈수록 고궁은 진가를 발휘한다. 이미 사라진 옛 왕조의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는 곳, 인간의 욕망과 꿈이 뒤엉켰던 현장에 서면 가을은 더욱 우리 가슴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하루의 의미는 거창한 데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의외로 사소한 데서살그머니 찾아온다.함께 한..

사진속일상 2007.10.11

경회루 버드나무

경복궁 경회루 연못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역시 물과 버드나무는 잘 어울려서 물가를 따라 능수버들이 하늘거리는 풍경은 고궁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이곳은 경복궁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그런데 버드나무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버드나무가한 그루있다.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었는지 이 나무는 옆으로 누워서 줄기가 비비 꼬여있고, 줄기 가운데로는 구멍까지 나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마치 누군가가 분재를 만들 듯 일부러 그렇게 장난을 친 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무 끝에서는 지금 여느 버드나무와 마찬가지로 초록잎이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다. 안스러운 마음 가운데서도 그 불굴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나무 둘레에 철책을 치고 보호하고 있다. 나무 구실을 못하는 쓸모없는 ..

천년의나무 2007.04.25

가을이 아름다운 경복궁 돌담길

경복궁 돌담길은 이맘 때가 제일 아름답다. 가로수의 주종이 은행나무와 버즘나무인데 노란색 단풍은 지금이 한창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하는지 보도에는 낙엽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소를 잘 하는 길일 것이다. 500m 정도 되는 이 돌담길이 내 출퇴근로로 나는 매일 걷는 행복을 만끽한다. 청와대 앞이라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길에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할 때가 흔하다. 그래서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느끼기에 이만큼 호젓한 길도 없을 성 싶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돌담길을 따라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도 좋다. 느릿느릿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매일 이 길을 다니는 나는 경비원들과 낯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

사진속일상 2006.11.10

경복궁 은행나무

경복궁 서쪽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 역할을 하는 이 은행나무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고 눈에 띄는 특징도 없으나 아담한 것이 도리어 더 친근감이 드는 나무이다. 특히 나무 밑에는 줄기를 중심으로 둥글게 벤치가 마련돼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는 아주 좋다. 나도 자주 이 앞을 지나가면서한가할 때는 가끔씩 나무 아래에 앉았다 가곤 한다. 지금 뒤쪽은 경복궁 복원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어선지 조용한 편이다. 가을이 되면서 이 나무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고, 노란 은행잎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발길이 멈추게 된다. 그리고는 나무와 사람들의 어울림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

천년의나무 2005.11.12

경복궁 향원정

퇴근하며 옆의 동료와 경복궁에 들리다. 평일의 늦은 오후여서인지 고궁은 조용하다. 늘 단체 관람객들로 시끌벅적하던 경복궁이 인적이 그치니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문을 닫는 오후 6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고궁은 적막 속에 잠긴다. 경복궁의 뒤에 있는 향원정은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다. 1870년 대에 향원지라는 연못을 파면서 지었다는데 나무로 만든 저 다리가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醉香橋)이다. 이곳은 왕실 전용 휴식공간으로 아마도 가장 은밀한 곳이었을 것이다. 향원정 둘레의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과 수련이 곱게 피어있다. 이 어리연꽃을 구경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연못 둘레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다. 어느 분은 햇빛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연꽃의 색깔을 본다며 몇 시..

사진속일상 2005.05.30

경복궁 돌담길

길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길이 있다. 광화문에서 영추문(迎秋門)을 지나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경복궁의 서편 돌담길은 내가 사랑하는 길이면서 출퇴근로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직장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다닌다. 키 높은 돌담과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도열한 이 길은 청와대 앞이라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호젓해서 좋다. 대개의 경우 사진처럼 길이 텅 비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면, 경복궁 돌담길은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다. 이 길에 들면 시선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달팠던 하루의 일상도 이 길에 서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내면의 존재감이 다시 살아난다. 나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고마운 길이다. 이 길은 걷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가르쳐 준다. 어떤 날은..

사진속일상 200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