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82

괴물 부모의 탄생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꺼려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작은 사고만 나도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아이에게 독방을 달라고 요구하는 극성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학부모의 항의와 민원으로 고통을 받던 교사가 자살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나치게 제 자식만 챙기면서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병증을 겪고 있는 일본과 홍콩 사례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가 생겨난 원인과 내재한 심리,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담임이 말하는 괴물 부모의 악행을 보면 기가 차는 사례가 많다. 소풍을 갔다왔는데 제 딸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다시 소풍을 가라고 요구한다든지, 담임의 액세서리나 아이폰을 본 아..

읽고본느낌 2024.04.19

서울대 10개 만들기

"한국은 교육지옥이다." 이런 명제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생각하는 학생 비율이 우리나라는 80%에 달하는데, 중국은 41%, 미국은 40%, 일본은 13%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럽 학교와의 비교는 아예 되지 않는다. 한국만큼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한국 교육은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그렇다면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물음이 따른다. 사회학자인 김종영 선생이 쓴 는 여기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선생은 이런 교육지옥의 원인이 대학 서열 체제로 인한 병목 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SKY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여기에는 정부관료와 사교육 세력,..

읽고본느낌 2023.10.03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 김예슬

우리 대학은 입학시험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퍼스도 없다. 입학시험은 없지만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없지만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과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 캠퍼스는 없지만 온 국토와 지구마을과 삶의 현장이 우리의 캠퍼스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딛고 계절의 길을 거닐며 야생자연을 탐험한다.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

시읽는기쁨 2023.07.31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

읽고본느낌 2023.07.30

다음 소희

소희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2학기가 되어 어느 통신회사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간다. 어린 학생이 감내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근무 환경이 꿈 많은 소녀를 절망하게 만든다. 회사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면서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발버둥을 쳐서 좋은 실적을 올리지만 그나마 실습 학생에게는 보상을 해 주지 않아 마찰이 생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한 소희는 결국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음 소희'는 6년 전에 전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의 현장 실습은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죽음이 잊을 만하면 일어나곤 한다.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현장 실습 나간 학생으로부터 작업 환경이 ..

읽고본느낌 2023.07.24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B 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교실 붕괴 등의 용어가 등장하며 현장이 시끄러울 때였다. 학생들 통제가 안 되고 수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대놓고 교사에게 달려드는 아이도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자발적인 교사회의가 열렸다. 현실을 폭로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뾰족한 답이 나올 수 없었다. 두어 시간의 난상토론이 끝나고 고작 내린 결론이 교사끼리의 정보 공유나 벌점제 등 사소한 것이었다. 다들 교사들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지며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20년 전 일이었다. 며칠 전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경력 2년차..

길위의단상 2023.07.23

위기의 한국 교육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인의 딸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학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교실 붕괴라는 말은 내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쓰였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차마 교육이란 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선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 수업 중에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제어할 수단이 없다. 요사이는 벌을 준다고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놓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의 다리를 아프게 하고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내 아이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의 행태는 보도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단체여행을 가는 아이 뒤를 따라와 제 아이의 잠..

길위의단상 2023.06.20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지난 주말에 손주가 다녀갔다. 손주가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고 용돈까지 만 원을 주더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구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1등주의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화석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삶에서..

시읽는기쁨 2023.03.20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올해 수능인 생명과학(2)의 한 문제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수험생들에게는 생명과학 점수가 빠진 성적표가 발부되었다. 며칠 전에는 외국 과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터무니없이 어렵고 푸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수능은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일부 영어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미국 사람도 못 푼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다. 수능이 오로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아서 출제한다. 아마 이번의 생명과학 문제도 그런 유형에 들어갈 것이다. 수능 문제는 실생활은 차치하고 대학 공부를 할 자질 측정으로부터도 동떨어져 있다. 고등학생들은 오직 대학에 들어가..

길위의단상 2021.12.13

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이런 서울대가 부끄럽다 / 송현숙 논설위원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사망 열흘 만이었다. 가족..

참살이의꿈 2021.07.25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 제목에 나오는 '좋은 국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봤을 때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국가'는 '선진국' '강국' '선도 국가'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나는 '좋은 국가'를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에 바탕을 둔 나라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구촌에서 찾는다면 부탄이 제일 비슷하지 않을까.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라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말았다. 는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스톡홀름 싱크 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연혁 선생이 쓴 책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던 여러 나라 -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 독..

읽고본느낌 2021.07.23

스카이 캐슬

'스카이 캐슬'이 방영되던 2년 전에 친구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룬 내용이라면서 꼭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때는 TV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커서 코웃음 치며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이 드라마를 보고 몰아보기를 했다. 예상외로 흡인력이 강하고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한때 이 드라마의 무대가 된 강남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 학교에 간지 이태째 되던 해에 어쩌다 담임을 맡았다가 정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강남 학부모와 아이들의 생태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내가 있을 때 그 학교에서 암에 걸린 교사가 여럿 나왔고, 친한 동료는 몇 달 ..

읽고본느낌 2020.12.19

상처 입은 천사

핀란드 화가인 휴고 게르하르트 심베리(H. G. Simberg, 1873~1917)가 그린 '상처 입은 천사(Wounded Angel)'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20년 전쯤 현직에 있을 때 전교조에서 펴낸 소책자에서였다. 당시는 청소년 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다. 이 그림은 우리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지금도 무척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림의 분위기는 어둡고 황량하다. 땅에는 나무 한 그루와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을 뿐 황무지와 비슷하다. 먼 산이나 호수도 회색이다. 무엇에 다쳤는지 상처 입은 천사가 들것에 실려 간다. 천사의 눈은 가려져 있다. 천사를 나르는 둘 중 뒤에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

길위의단상 2020.11.07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

교육 현장에 있을 때 자괴감이 컸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을 안 맡거나 보충수업을 거부하는 등 나는 고작 소극적 저항만 할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아이들을 신나게 가르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제도권 교육에 실망한 일부 학부모는 대안학교를 택하기도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실상을 외면한다.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현실을 수용하고 체념한다. 잘못된 길이란 걸 알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사실은 비극이다. 세계에는 우리와 다른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많다. 유럽의 교육 제도, 그중에서도 독일의 교육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 1위의 지옥 나라가 ..

길위의단상 2020.10.28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현장 실습생으로 CJ에서 일하던 특성화고등학교 김동준 학생은 회식 자리에서 선임자한테 뺨을 맞았고, 며칠 후 회사 기숙사 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폭행이었지만 그 전에 과도한 업무와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가 있었다. 2014년 봄에 일어난 일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에 들어간 김 군은 현장 실습을 나가서는 전혀 엉뚱한 일을 배정받았다.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진천 육가공공장에 배치된 것이다. 학교에만 있다가 갑자기 현장에 나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모든 실업계고등학생이 겪는 문제지만 사회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은 은유 작가가 김 군의 주변 사람을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김 군 가족..

읽고본느낌 2020.06.14

말 많은 수능

올 수능도 뒷말이 많다. 고작 몇백 명 대상의 학교 시험에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빗거리가 생기는데 한꺼번에 60만 명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은 오죽하겠는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뒷말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국어 영역 31번이다. 한 페이지에 걸쳐 긴 지문이 나오고 그에 딸린 문제가 여섯이다. 그중에 31번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우선 지문이 이렇게 길다. 근세에 등장한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 31번이 나온다. 이 문제를 보니 만유인력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만유인력은 두 질량의 ..

길위의단상 2018.11.21

논어[294]

선생님 말씀하시다. "교육하면 차별은 없다." 子曰 有敎無類 - 衛靈公 32 전에 근무했던 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有敎無類'라 적힌 액자가 제일 먼저 맞았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공자님이 학생을 들일 때 신분이나 빈부의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보통교육은 유(類)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공자 시대보다는 확실히 진일보했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현 체제의 교육은 차별을 심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사이는 물론이고, 배운 사람 또한 줄 세우기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부와 권력의 세습에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약육강식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지나 않는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공..

삶의나침반 2018.06.20

논어[286]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진종일 먹지도 않고 온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해 보아도 별것 없었다. 공부하는 것만 못하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無益 不如學也 - 衛靈公 24 학(學)의 중요함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사(思)를 폄훼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학과 사는 나란히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과 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 제일 적확한 듯 싶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운다고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쫓아다녀도 제 생각으로 깊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배우지 않고 제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편협해지고..

삶의나침반 2018.04.26

위로받고 싶은 날들

다른 이의 살아온 궤적 흥미롭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산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고, 내가 걸어온 길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인생의 길이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 가 보지 못한 길이 더 멋있게 보인다. 은 조재호 선생의 자전소설이다. 교직에서 명퇴를 하고 난 뒤 본인의 일생을 정리한 글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같은 교직에 있었던 분이라 더 관심이 갔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의 범생이였던 나와는 딴판이었다. 파란만장의 불꽃 같은 삶이 책 속에 있었다. 선생은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멋대로 살았을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했을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실에는 소위 노는 아이들이 서너 명은 있었다. 그..

읽고본느낌 2017.12.13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이다. 교직에 있었을 때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교실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수업 시작 종소리가 저승사자의 호출 소리로 들릴 때가 많았다. 만족한 수업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수업 붕괴나 학교 폭력은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학교가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 교사다. 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실태를 실사례 중심으로 고발하고 있다. 내가 교직을 힘들어했던 이유는 학교에서 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입시 시스템의 한 부속품일 뿐이었다. 선생으로서 열심히 한다는 게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건지 뻔히 보였다. 바쁘게 일하고 열심히 노력할수록 역설적으로 반교육적인 행태로 연결되었다..

읽고본느낌 2017.12.08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자책이 많이 된다. 선생으로서의 내 행적이 너무 후회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사랑과 열정의 부족이다. 30년 넘게 선생 시늉을 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껴안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선생의 조건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을 전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교단에 설 때 아이들과의 사이에 늘 벽을 느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고 경력이 쌓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교육의 '교'자도 모른 채 선생 흉내를 낸 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되자면 우선 ..

읽고본느낌 2016.08.17

애쓴 사랑

이런 삶을 만나면 부끄럽다. 나는 한 번도 치열하게 살아보지 못했다. 황시백 선생은 세상과 불화하면서 먼 꿈을 꾼 사람이다.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올곧게 나아갔다. 선생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교육 민주화 운동에 온몸을 불살랐다. 이런 분들이 나중에는 몸이 상해 일찍 세상을 뜨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선생도 그랬다. 선생은 교사였고, 농사꾼이었고, 목수였다. 몸을 낮춰 세상을 사랑했다. 이 책에는 교육보다 농사짓는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선생은 도시를 떠나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사잇골 농촌 공동체를 꿈꿨다. 집안이 가난했던 선생은 젊었을 때 고생을 심하게 했다. 피를 팔아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지낼 때도 아픈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었나 보다. 교직을 떠나서 농사를 택한 것..

읽고본느낌 2016.05.19

뒷산에서

뒷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서 B 아파트로 내려가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우선 산에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는 있어도 자기들끼리 산에 놀러 오는 경우는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다. 요사이 아이들은 학원 다니랴 과외 하랴 어른보다 더 바쁘다. 설령 시간이 난다 해도 산으로 놀러 보낼 부모는 없다. 세상이 그만큼 험해졌다는 뜻이다. 우리가 클 때는 마을 뒷산은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는 던져놓고 어지간히 쏘다녔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지만 그때는 어디라도 뛰어다닐 수 있었다. 산에서는 주로 전쟁놀이를 했다. 오늘 산에서 만난 두 아이도 각각 시커면 장난감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이 그 나이 ..

사진속일상 2016.02.21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국민교육헌장이 나온 게 1968년 12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1968년은 북한에 의한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최고로 긴장 상태였던 해였다. 그리고 박정희 장기 집권의 시작이었던 삼선 개헌의 전해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개인의 자유나 행복보다 국가 발전을 우선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중간에 나오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공익', '질서', '능률', '애국', '애족'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권리보다는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기본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이라고 ..

참살이의꿈 2016.01.29

국정

'국정(國定)'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서 정한다는 뜻이다. 일단, 나라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유신 때도 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독재를 미화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서 가르쳤다. 이름만 국가를 내걸었을 뿐 실은 권력자의 입맛에 불과하였다. 역사상 수많은 민중의 희생이 국가 폭력 아래 자행되었다. 국가를 우상화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가는 역사 가치관의 기준을 정할 자격이 없다.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역사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재의 검정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검정 기준을 강화한다든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 일본이 하는 방법이다. 일본은 비난하면서 더 나쁜 짓을 지금 정부는 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국정 체제로 가는 건 선친..

길위의단상 2015.11.07

식물의 인문학

지은이인 박중환 씨의 경력을 보면 50세까지 언론계에서 일하다 늦게야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IMF로 직장을 잃은 게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식물을 공부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은 그런 지은이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다. 책은 꽃, 잎, 열매, 뿌리의 네 단원으로 되어 있다. 물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고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계절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스트레스 개화 이론'이다. 고사 위기에 있는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걸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식물이 지구의 산소 공..

읽고본느낌 2015.10.21

잠실동 사람들

서울 강남 엄마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을 다룬 정아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재건축된 잠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상류층 주부들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초등학생 학부모로 오직 일류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을 닦달한다.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아이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자아 반성이 없는 엄마의 탐욕 아래 아이들은 병들어간다. 부유한 잠실동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몸을 팔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 서영, 가짜 경력을 내세워 과외 교사를 하는 김승필, 학습지 교사나 가사 도우미들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소설에는 악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각자의 생활 양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상이 문제다..

읽고본느낌 2015.06.11

논어[137]

선생님 말씀하시다. "시로 정서를 일깨우고, 예로 행동을 바로잡고,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하라."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 泰伯 6 지(知), 정(情), 의(意)가 잘 조화되어야 교양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공자가 말한 시(詩), 악(樂), 예(禮)도 넓게 보면 같은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공자는 인간 교육에서 시와 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을 편찬한 목적도 시를 통해 사람 마음을 순화시키려 함이었다. 시와 악은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정서가 일깨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공자는 이를 인간 교육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그 시대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하더라도 시와 악이 현대 교육에서는 홀대받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편..

삶의나침반 2015.03.28

생각의 탄생

제목을 봤을 때는 인간 지능의 진화사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 도구'라는 부제가 말하듯 천재를 천재답게 만드는 비법 13가지를 다룬다. 차라리 원제인 'Sparks of Genius'가 이 책 내용에 가깝다. 이라는 제목은 멋지지만 내용은 기대했던 것에는 미달했다. 이렇게 온갖 자료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 지루하고 요점 파악도 잘 안 된다. 정형화된 형식은 책이 말하는 천재성과는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는 창조를 이끄는 13가지 생각 도구를 이렇게 정리한다. 1. 관찰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2. 형상화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의 ..

읽고본느낌 2015.02.14

논어[112]

선생님이 늘 이야기하던 것은 시와 역사와 예법이었으니, 이것이 모두 늘 이야기하던 것들이다.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 - 述而 14 늘 이야기했다는 건 중요하니까 강조했다는 뜻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교육할 때 무엇에 중점을 뒀는지 알 수 있다. 시[詩]와 역사[書]와 예법[禮]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정(情), 지(知), 의(意), 세 측면에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시는 인간 우뇌의 영역이다. 공자는 시와 노래를 통해 인간을 감동시키고 정화하려 한 것 같다. 시인 백거이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으로 시만 한 것이 없다[感人心者 莫先乎詩]. 공자가 을 편찬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시의 교육적 기능에 대해서 현대에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꼭 국어 시간에만 배우..

삶의나침반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