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10

사라진 아이들

작년 여름에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마존 정글 지대에 경비행기가 추락했다. 배행기에는 세 명의 성인과 네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는 데 2주가 걸렸는데 파손된 비행기에는 아이들의 어머니를 비롯해 세 명의 성인 사체가 있었다.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열세 살(여), 아홉 살(남), 네 살(남), 한 살(여)짜리 남매들이었다. 콜롬비아 군과 원주민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조직되어 아이들의 생존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에 나섰다. 40일간의 수색 끝에 생존해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추락 지점에서 직선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이들은 맹수, 독사, 독충이 우글거리는 열대밀림에서 40일을 견디어 냈다. 한 살짜리 막내도 살아 있었는데, 수색대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

참살이의꿈 2024.11.23

그날, 바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과학적 분석이 돋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월호 침몰은 왼쪽 앵커 때문에 일어났다. 무슨 이유에선지 출항한 뒤부터 왼쪽 앵커가 아래로 늘어졌고, 수심이 얕은 곳을 지날 때 앵커가 땅과 충돌하며 항로가 변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차례 일어나며 누적되다가 사고 지점에서 결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만든 사고 조사팀은 사고 시간과 항로 기록 데이터가 수정되고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은폐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는 가짜다. 실제 항로는 남서 방향, 병풍도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곳은 수심이 얕아 앵커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굳이 이 사실을 감추려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

읽고본느낌 2018.06.17

오늘만 산다

최근에 지인이 당한 비통한 사고 소식을 연이어 들었다. 전화 통화에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초등학생인 손녀가 죽었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를 시멘트벽에 부딪쳐 뇌진탕이 일어났다고 한다. 수술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울먹인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는 며칠째 실신하며 응급실에 실려 간다고 한다. 화목하고 믿음이 좋은 집안으로 알려졌는데 불의의 사고를 맞고 말았다. 아빠는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정신을 못 찾고 있단다. 손녀를 잃은 본인의 심정도 오죽할 것인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 두문불출하고 있단다. 너무 안타까워서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또 한 친구의 조카도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의 아들인데 내..

참살이의꿈 2018.03.29

화인 / 도종환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

시읽는기쁨 2016.04.16

세월호를 기록하다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선령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더라면 청해진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다면 화물 적재 기준에 따라 화물을 실었다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에게 발언권이 있었다면 운항 관리자가 규정대로 출항을 통제했더라면 평형수가 좀 더 채워지고 화물이 단단히 고박되었다면 조타수가 대각도 조타를 하지 않았다면 배가 쓰러진 뒤 선원들이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비상시 선내 방송 매뉴얼이 갖춰져 있었다면 진도VTS가 퇴선 결정의 책임을 세월호에 맡길 게 아니라 직접 지시했더라면 구조 세력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뒤돌아보면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다. 300명이 넘는 생때같은 목숨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읽고본느낌 2015.05.20

세월호

4월 16일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고 분노에 떨게 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하나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는 등 국가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중요한 건 잘못된 국가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인데 곁다리로만 변죽을 울리고 정작 핵심은 회피하고 있다. 엉뚱한 한 사람을 잡는다고 헛발질만 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교묘하게 따돌린 꼴이 되었다. 이젠 세월호 피로증까지 언급하니 세상 변화에 대한 기대는 물 건너갔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참배하며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냄비 근성이라고 우리 국..

참살이의꿈 2014.09.18

의심하라

"가만히 있으라!" 배는 계속 기울어가는데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만 방송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그 말을 믿었고, 결국 삼백 명이 넘는 생때같은 생명이 수장되었다. 안타깝고 통분한 일이다. 갑판으로 대피하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이런 억울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으니 모두가 탈출하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앞장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렇지만 내가 인솔교사로 거기에 있었더라도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선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할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험보다..

참살이의꿈 2014.05.20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그러면 풀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발이 간지러운 풀들이 반짝반짝 발바닥 들어올리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아픔처럼 꽃나무들 봉지 튀우는 소리 들릴 것입니다 햇살이 금가루로 쏟아질 때 열 마지기 논들에 흙이 물 빠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어디선가 또옥똑 물방울 듣는 소리 새들이 언 부리 나뭇가지에 비비는 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사는 게 무어냐고 묻는 사람 있거든 슬픔과 기쁨으로 하루를 짜는 일이라고 그러나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지레 슬퍼하지 말라고 산들이 저고리 동정 같은 꽃문 열 듯 동그란 웃음 하늘에 띄우며 봄 아침엔 화알짝 창문을 여세요 -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잔인하고 우울한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온 나라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어둡..

시읽는기쁨 2014.05.10

자전거도 조심합시다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요사이는 장비가 좋아져서 그런지 자전거 스피드도 상당하다. 건강이 우선이겠지만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타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기분이 좋겠지만 그만큼 위험도 커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 자전거 사고를 옆에서 보았다. 길을 건너던 사람과 달리던 자전거의 충돌이었다. 둘 다 상대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앞으로 날아갔고, 걷던 사람은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혔다. 머리에서 나온 붉은 피가 아스팔트 위로 번져나갔다. 그 사람은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너무 무서워 나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헬멧을 써서충격이 덜했는지 얼굴에 피를 흘..

길위의단상 201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