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39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 나희덕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 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 나희덕 세상 돌아가는 내막을 알면 환멸을 느끼게 될 거라고 했다. 점심 식사자리에서 앞의 동료는 그래도 진실을 알고 행동하고 싶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도저히 마를 것 같지 않은 고드름..

시읽는기쁨 2008.09.19

값싼 희망보다는 절망이 낫다

값싼 희망보다는 차라리 절망이 낫다. 왜냐하면 절망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다시 솟아날 구멍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싼 희망은 절망적 현실을 절망으로 인식하기는 커녕 희망으로 착각하고 그 속에 안주한다. 거짓 희망에서 위안을 구하고, 비극적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것이 희망이 절망보다 무서운 이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절망하는 것이다. 온 땅을 파헤치고 온 강을 파내어 시멘트로 바르고 대운하를 만들어국토를 온통 만신창이로 만들어야 한다. 농촌을 없애고 식량자급률을 0 %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혼자서 만 명, 십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엘리트를 키워내는 천재학교만 집중육성해야 한다. 그래서 밑바닥까지 내려간 다음에라야, 절망의 심연에 이르른 뒤에라야, 정신을 차리고 새로 출..

길위의단상 2008.03.29

Let it be

K형! 요사이는 비틀즈의 'Let it be'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한번 헤드폰을 쓰면 연속으로 수십 번씩이라도 마냥 듣습니다. 높은 벽이 나를 에워싸서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할 때면 이렇게 며칠씩 이 노래에 빠집니다. 'Let it be'는 '그대로 두어요' 또는 '순리에 맡겨요' 등으로 번역되어 있지요. 그러나 그 말로는 노래를 통해 전해지는 의미가 잘 살아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형도 이 노래를 좋아하지요? 형이라면 무어라고 옮기시겠어요? 저는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을 수가 없네요. 'Let it be'라는 짧은 문장 속에는 기다림, 희망, 하늘에 대한 긍정 같은 메세지가 느껴집니다. 그걸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K형! 지난 번에 형의 낙담한 얼굴을 보고 많이 마음이..

길위의단상 2006.12.06

다시 떠나는 날 / 도종환

깊은 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처럼 험한 기슭에 꽃 피우길 무서워하지 않는 꽃처럼 길 떠나면 산맥 앞에서도 날개짓 멈추지 않는 새들처럼 그대 절망케 한 것들을 두려워하지만은 않기로 꼼짝 않는 저 절벽에 강한 웃음 하나 던져 두기로 산맥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기로 - 다시 떠나는 날 / 도종환 열정과 여유를 함께 생각한다. 조급한 열정은 쉬이 끓고 쉬이 식지만, 여유를 머금은 열정은 고난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높은 산맥을 만나도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어둠이 짙을 수록 별빛은 더욱 반짝인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실패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쓰러뜨린다. 이젠 날 절망케 ..

시읽는기쁨 2006.11.13

내가 바라는 세상

나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자랑하기보다는 좀 못 살더라도 계층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 정신적으로 풍요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이(利)를 쫓기보다는 의(義)를 먼저 구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 년째 그칠 줄 모르는 부동산 광풍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모두가 돈 앞에서는 천박하고 저열해지는 것 같다.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마찬가지다. 국민대부분이 투기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일말의 수치심이나 양심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의식주는생활의 기본일진대 이것은 인간으로서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이다. 제발 다른 사람의 몫을 뺏아 자..

길위의단상 2005.06.18

희망

얼마 전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았다.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용에 흠뻑 빠질 정도로 감명 깊게 보았다. 탈출에 성공한 후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환호하는 모습도 멋졌지만, 앤디가 방송실 문을 잠가놓고틀어준 음악이 교도소 감방에, 작업장에, 운동장에 울려퍼질 때 죄수들이 넋을 잃고 그 소리를 따라 위로 시선을 모으던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런데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희망`이었다. 무고한 앤디가 20년 옥살이를 견디게 된 것도, 또 가석방된 레드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도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난한 이 현실에서 인간을 살리는 것은 빵도 쾌락도 아닌 바로 희망임을 영화는 말해준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는다면 인간의 삶은 흑백의 우중충한..

읽고본느낌 2004.01.13

한 문이 닫기면 다른 문이 열린다

터에만 다녀오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안 갈 수도 없고, 가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들과 마주쳐야한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상황들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한 때는 새 생활에 대한 꿈으로 부풀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계륵(鷄肋) 신세가 되어 있다. 밀고 나가기도, 발을 빼기에도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럴 때는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내 의지를 떠난 상황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말 것! 그리고자꾸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오늘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거기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여 주인공, 쥬리 앤드류스. 수녀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녀는 원장 수녀님에 의해 밖으로 퇴출(?) 당한다. 가방을 ..

참살이의꿈 2003.10.27

후회없는 선택이 어디 있으랴

후회 없는 선택이 어디 있으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고통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하늘도 때때로 눈물을 흘리나니 바다도 자주 아프게 흔들리나니 외로운 사람이 어디 혼자 뿐이랴 사람들의 슬픈 가슴을 보아라 그래도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아라 사람아 묵묵히 너의 길을 가라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나니 무릎 펴고 다시 일어나 너의 길을 가라

참살이의꿈 2003.09.20

가을 유감

가을이다. 시름 가득한 세상 가운데로 가을이 오고 있다. 몇 달간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가 농부들의 애를 태우더니 명절날 찾아온 `매미`의 날개짓으로 남부 지방은 쑥대밭이 되었다. Exodus Korea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살아가는게 폭폭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건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악질적인 투기와 싸움박질, 있는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있다. 누구는 소주 한 잔 마시기도 힘든데, 누구는 천만원짜리 양주잔을 홀짝인다. 이 정권에 걸었던 작은 희망마저 이젠 접어야할까 보다. 어제 저녁에 TV로 백기완님의 노나메기 강의를 들었다. `노나메기`란 같이 일하..

사진속일상 200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