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아픈 금붕어

샌. 2009. 12. 3. 09:53


K샘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과학을 보여준다고 액체질소 실험을 했다. 부드러운 물체를 액체질소(영화 197도) 속에 넣으면 급속 냉동되어 금속 같은 성질로 변한다. 예를 들어 꽃을 액체질소에 넣었다 뺀 후 땅에 떨어뜨리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또 새우깡을 넣었다가 먹으면 기화되는 질소 기체가 하얀 연기로 변해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실험 대상 중에 금붕어도 있었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액체질소 속에 넣으면 한 순간에 꽁꽁 얼어버린다. 이 금붕어를 따스한 물에 녹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나 헤엄을 친다. 냉동인간의 원리를 연상할 수 있는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험이 미숙했는지 다섯 마리 금붕어 중에서 네 마리가 그 다음 날에 죽어 버렸다. 살아난 한 마리도 심한 동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피부에는 넓은 상처자국이 있다. 금붕어를 볼 때마다 K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무척 마음이 아프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금붕어 실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은 역시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이었다. 금붕어가 불쌍하다고 찾아와서는 어항 곁을 떠나지 못한다.


오래 전,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어쩌다 생물을 가르치게 되어 개구리 해부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마취를 시키긴 했지만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살아있는 개구리에 칼을 대는 것을 꺼려했다. 수업이라 마지못해 하기는 했지만 어떤 학생은 개구리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 같았으면 아무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었지만 그런 수업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그 뒤에는 교과서에서 개구리나 닭을 이용하는 실험은 없어졌다. 또 옛날에 방학 때면 숙제로 나왔던 곤충채집이나 식물채집도 이젠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물 수업의 목표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깨우치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본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인간을 위한 이용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금붕어 얘기가 나오니 고등학교 때 독일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분이 첫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는 본인의 취미가 금붕어 죽이기라고 해서 우리들을 바짝 얼게 만들었다. 집에서 금붕어를 기르는데 심심하면 금붕어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른 손바닥으로 내리쳐 압사시키는 것이 취미라고 하니 무서워하지 않을 아이들이 없었다. 또 하나 독특했던 점은 질문을 해서 모르면 그 줄의 맨 앞에 있는 아이가 대표로 맞아야했다. 말씀인즉 때리러가기도 귀찮다는 것이었다. 키가 작아 앞줄에 앉아있던 나는 수시로 머리에 떨어지는 막대기 세례를 받아야했다. 하여튼 독일어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아는 대답도 입술이 얼어서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참 특이한 선생님들도 많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금붕어가 조교의 지극한 보살핌 아래 3주째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금붕어는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이제 조금씩 반응을 보이면서 움직이기도 한다. 얘들은 병원도 없으니 다치면 그저 자연치유의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모른다. 육상의 다른 동물들도 몸이 다치면 활동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저절로 낫기를 기다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조금만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 생명체 본연의 자연치유력을 훼손시키는 짓이다. 지나치게 약이나 병원에 의존하는 것도 현대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픈 금붕어를 보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과 금붕어의 생명이 같다고 주장하진 못하겠지만 생명으로서의 보편적 존엄성은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른 생명, 더 넓게는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한다. 솔직히 미물이라고 부르며 하찮게 여긴 경우가 많았다. “아픈 물고기를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 듣고 치료해 주는 거죠.” 어느 수의사의 이런 마음을 닮고 싶다. 작고 약한 것에 대한 내 무딘 감성이 이 금붕어를 통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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