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먹고 살 만큼의 돈

샌. 2008. 5. 22. 14:02

부동산 쪽으로 재테크를 잘 해 부자가 된 친구에게 얼마큼 돈을 벌었느냐고 물었더니 먹고 살 만큼 모았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먹고 살 만큼’이란 얼마만한 돈일까? 예전에는 흔히 먹고 살 만큼의 돈만 벌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도 그런 말을 쓰긴 하지만 양이나 질에서 옛날의 어감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이 쓰는 ‘먹고 살 만큼’이라는 말에는 거의 한계가 없어 보인다. 10억을 가져도, 100억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시대가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돈밖에 확실한 것이 없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내 생활비는 얼마쯤이면 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세상에 부대끼는 노릇 그만두고 산 속에 숨어들어가서 살 때를 가정하고 예상해 본 것이다. 그때 한 달 생활비는 30만 원 안쪽으로 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라면 문명이나 사람들과의 인연을 거의 끊어야 가능한 생활이다. 계획대로 시골에서의 은둔생활을 실천한다면 나에게 먹고 살 만큼의 돈이란 그 정도면 될 것 같다.


도시에 산다면 그런 돈으로 한 달을 지내기에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고, 경조사에 다니고, 취미 생활을 하자면 한 달에 백만 원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가끔씩 해외여행도 하자면 상당한 목돈도 있어야 할 것이다.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도시적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외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화려한 노년을 그리며 젊음을 투자해서 돈을 모으느라 고군분투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비현실적인 생각 속에 살고 있다. 세상적인 취미나 도시적인 문화생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노후 준비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친구들이 충고하는 대로 늙어서 후회할 짓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재테크에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도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연금이다. 연금이야말로 장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내 마음이 부자인 이유다. 나처럼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은 공무원이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요즈음 들어 부쩍 든다.


은퇴를 한 뒤에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다. 돈과 소비생활은 최소한도로 줄이며 인간 욕망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다. 그동안 도시에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범했던 잘못을, 자연과 생명에 진 빚을 일부나마 갚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전원생활이 아니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문명의 단맛을 거부하는 삶이다. 그런 나에게 먹고 살 만큼의 돈이란 큰 의미가 없다. 도리어 나는 지금 너무 돈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이 많고 적음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먹고 살 만큼의 돈은 이미 마련되었다고,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의 돈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큰 부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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