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4]

샌. 2008. 3. 30. 08:17

옛사람들은 지혜가 지극한 데가 있었다.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처음부터 사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지극하고 극진하여 더 보탤 수가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너와 나'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다음은 경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시비가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비가 밝아짐으로써 도가 훼손되었고

도가 훼손됨으로써

사랑(유묵의 仁義와 兼愛)이 생긴 것이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

惡乎至

有以爲未始有物者

至矣盡矣 不可以可矣

其次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

其次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

是非之彰也 道之所以훼?也

道之所以?

愛之所以成

 

- 齊物論 7

 

우리들 대개는 시비와 분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슬퍼한다. 앞에 나왔던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의 세계다. 분열과 애증(愛憎),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는 세계다. 그러나 사람이 성숙해지면 -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이 뜨이면 - 사물이나 현상 너머의 차원을 볼 수 있게 된다. 장자는 그런 변화의 단계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사물이나 현상이다르고 구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로간에 차별하거나 시비를 하지 않는 경지다. 황희 정승의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일화도 이쯤 해당될지 모르겠다. 이 정도만 되어도 무척 성숙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두 번째는, 사물에 경계를 두지 않는 경지다. 사물이나 현상이 존재하지만 애당초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한 몸이고 본질로 같다. 이런 인식은 근원적으로 종교심과 닿아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세 번째는, 지극하여 더 보탤 수가 없는 경지라고 했다. 사물은 사물이면서 사물이 아니다. 도와 하나 되고 어우러진 경지다. 나로서는 이런 단계를 상상하기도 어렵다.'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그 의미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저 뜬 구름 잡는 얘기다.

 

이 뒤에 계속되는 글에서 장자는 거문고의 명인인 소문(昭文)과 북의 명인 사광(師曠), 달변가 혜자(惠子)를 예로 들며 세상적 성공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다. 그들이 이름을 남기고 이룬 업적이란 것들이 도의 입장에서 보면 넓은 바다에 티끌 하나 보탠 것도 못 된다. 그보다는 바다 자체와 하나 되는 길을 찾으라는 것이 장자의 권고다. 인위로 다듬으려 하지 않고, 자연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밝음[明]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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