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부부싸움을 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강도 또한 약해진다. 세월의 강물이 모난 부분을 깎아내어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또 나이가 들수록 생활이나 생각이 단순해지는 탓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여러 면에서 성격이나 생각 차이로 다투게 된다. 어쩌면 그런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우리 같은 경우는 부모님 관계로 제일 많이 티격태격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서는 자식 때문에 자주 다투게 되었다. 두 입장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고 대개 어느 한 쪽이 포기하는 입장이 되어야 사태가 해결된다. 교육 문제에서는 나는 내 방식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요사이는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 때문에 가끔 고성이 나올 때가 있다.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지만 결국은 서로의 생각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해도 쉽다. 원래 그런 사람이거니 해 버리면 서로 노여움을 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아내는 음료수 같은 걸 들고와서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말한다. 화해의 제스쳐는 대개 아내가 먼저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이번에 다툰 것은 일 주일 정도의 긴 냉전 기간이 필요했다. 변명이 화를 돋우고 공격거리가 되면서 본심과 다르게 말싸움이 일어났다. 지금 되돌아보면 터에서의 피곤했던 몸이 짜증이 되어 생긴 것이다.다툼의 말미에 서로 말을 하지 않기로공언했는데, 그 약속을 서로가오기로 지켜온 셈이었다. '밥 줘' '밥 먹어'외에는 서로 입을 닫았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것은 부부가 서로 말을 하지 않고도 한 지붕 밑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저 동거남, 동거녀 수준의 부부생활도 가정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말수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부부싸움의 긍정적인 효과란 서로를 조금은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를 계기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게 된다면 부부싸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더욱 맑고 깨끗하듯이 부부싸움은 마음 속 찌꺼기들을 청소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원수로 갈라설 정도의 심각한 경우는 빼고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아내의 한 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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