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Imagine

샌. 2006. 7. 28. 16:41

친구야, 역시 우리의 견해차는 좁혀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구나. 우리 젊었을 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순수함은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물었지만, 되돌아보면 그런 꿈이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현실에 잘 적응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변한 것은 자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젊었을 때 의기투합하던 마음 사이로 이제는 큰 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구나. 그 강을 건너간 것은,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건너기 힘든 강물을 만든 것은 바로 내 탓이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회의를 갖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벌써 오래 전 일이 되었다. 그런 변화가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하여튼 내 가치관의 패러다임이 반전하게 되는 계기가 어느 때 시작되었다. 사람은 20대 때 이상주의자였다가 40대를 지나면서 현실주의자가 된다는데 어쩌면 나는 그 반대의 길을 걷는 것 같구나.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 친구를 찾아가 술을 마셔도 언제나 두꺼운 벽만 느낄 뿐이다. 이젠 논쟁도 싫증이 난다. 난망한 일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이제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참된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젊은 시절 함께 공유했던 감정의 희열이 지금은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옛날의 친구들은 자꾸 멀어져 가는구나. 이젠 강의 이편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다려야겠지. 이렇게 인터넷의 공개된 마당에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찾지 못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도리어 세상의 외톨이로 남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현실에 별 무리 없이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따지고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할 것이다.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길은 달라지겠지. 그러니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현실 인식, 역사 인식인 것 같네. 자네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강조했지. 그때 나는 되물었네. 만약 히틀러 치하에서 나치 정권에 협력하며 열심히 살았다면 그건 범죄가 아니겠느냐고. 체제 자체가 부당하다면 거기에 대해 저항을 해야 한다고.

 

자네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현재로서는 가장 나은 체제로 인정했네. 이미 폐기처분된(?) 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식 복지 모델도 부정했네. 인간 세상에서는 경쟁이 성장의 원동력이고, 그것이 인간 본성과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의 교육 시스템 또한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었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보수층의 견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무척 슬프고 아팠다. 그것은 우리들까지 포함될 수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 주류층의 의식에서 뭔가 한 가지가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하고 잠깐 자문해 보았다. 연민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자비심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일까?

 

경쟁 보다는 협동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될 수는 없을까? 경쟁에서 이긴 소수를 위한 나라가 아닌,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까? 가진 자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결심을 할 수는 없을까? 연간 자살자수가 1만 명이 넘고, 성적 때문에 아이들은 지금도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것이 행복한 세상으로 나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손은 경쟁과 욕망의 광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이 답답해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긴 장마철로 하늘은 잔뜩 흐리고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사유재산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과연 당신이 상상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세상을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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