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제주도 여행(2)

샌. 2006. 2. 15. 18:03

6. 자구내포구


이번에 묵은 곳 중에서 제일 정겨웠던 장소가 자구내포구였다.

자구내포구는 제주도 고산에 있는 작은 어촌인데 뒤에는 당산봉이 감싸고 있고, 앞에는 차귀도가 떠있어 아늑하고 조용한 포구이다. 바닷가의 번잡함이나 어수선함이 없는 마치 산 속에 들어온 듯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또 해안을 따라 산책로도 잘 나 있고, 인근에는 수월봉이 있어 바다 쪽 전망도 무척 좋다.

 


 

이른 아침 당산봉에 올랐다. 앞에 보이는 작은 마을이 자구내포구이고, 바다에 떠있는 섬이 차귀도이다. 현재 저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섬 뒤로 지는 석양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




저녁에 해안길을 산책하다가 바닷가에서 쉬고 있는 갈매기들을 만났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고 여유롭게 앉아 있다. 그 모습이 고마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다시 제주도를 찾는다면 이곳은 꼭 들리고 싶다.

그리고 운이 좋아 차귀도 뒤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7. 들


제주도의 들은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미나리, 유채, 마늘 같은 초록의 잎들이 지금이 겨울임을 잊게 한다. 넓은 밭에서는 감자 수확도 한창이다. 차를 세우고 밭에서 감자를 주워 숙소에서 맛있게 삶아 먹기도 했다.




서광다원의 차밭.


전체 면적이 16만 평이나 된다는 이 차밭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고 한다. 넓은 들과 구릉을 따라 차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드넓은 초록 벌판은 바다가 아니면서도 이렇게 사람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와서 전시장에 들리고 먼발치에서 구경한 후 대개 돌아가지만, 우리는 차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많이 걸었다.




고산 들녘.


무엇을 심었는지 밭마다 색깔이 다른 것이 예쁜 모자이크를 보는 것 같다. 밭 사이로 난 길도 재미있게 보였다.

고산 지방은 바람으로 유명한 것 같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고산기상대 관측치가 나오는데 다른 곳보다 늘 풍속이 세다. 그래선지 이곳에는 해안가에 풍력발전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8. 형제섬 일출


이번 여행에서는 멋진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보고 싶었는데 하늘은 단 하루만 그런 행운을 허락해 주었다.

사계리 앞 바다에 떠있는 형제섬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사진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외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아침, 드디어 기다리던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곳저곳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그러나 너무 맑은 날씨가 도리어 탈이 되어 강한 햇살에 바다가 죽어 버렸다. 적당히 얇은 구름이 가려주었더라면 붉은 태양과 함께 더 좋은 사진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러니 좋은 사진 한 장 얻기 위해 사진가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애쓰는지를 알 것 같았다.


9. 마라도


우리나라 최남단의 땅, 마라도를 드디어 이번에 가보게 되었다.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그리고 섬에서 1시간 30분의 자유시간을 주는데 그 동안에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타고 간 배는 좌우 롤링이 얼마나 심한지 마치 유원지의 놀이기구를 탄 것 같다. 어떨 때는 배가 바다로 빠져버릴 듯 기울기도 한다. 갑판에 나갔다가는 무서워서 객실로 들어와 얌전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는 멀리서 보면 마치 항공모함이 떠있는 모양이고, 섬은 전부 풀밭으로만 되어 있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 해도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선착장에서 내려 해안가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유명한 마라도 자장면을 사먹기도 하고 최남단비 앞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가운데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주로 가게나 민박집들로 되어 있다. 이미 이곳은 관광지대로 변해 버렸다.




섬에서 눈에 띈 것이 교회와 절과 성당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동네 주민도 얼마 되지 않는데 세 종교 모두 거창한 건물들을 세워 놓았다. 한국의 최남단 땅에까지 자신들의 교세가 뻗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섬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사진은 가톨릭 성당인데 주위는 황폐화되어 있고 입구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건물이 왜 꼭 여기에 필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0. 식물들


이번에 보고 싶었던 것이 한라산 자락의 복수초 군락지였는데 온통 눈으로 덮여있어 전혀 꽃이 필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때가 이른 모양이다.

그러나 양지 바른 곳에서는 벌써 제비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야생 수선화도 대정 들에서 볼 수 있었다.




추사 적거지의 화단에 핀 수선화.


꽃의 기운에 눈과 마음이 환해졌다.




월령리 선인장 자생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선인장 자생지이다. 약 200년 전 남쪽에서 떠밀려온 선인장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채선인장 또는 손바닥선인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길 양편으로 선인장 밭이 엄청나게 넓게 펼쳐져 있다. 선인장에는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다. 이 열매가 백년초라는데 변비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신비한 기운이 가득한 비자림.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비자나무 자생지라고 한다.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라고 있다는데 이 숲에 들면 뭔가 신령한 기운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 둘은 들어갈 때는 서로 떨어져 갔다가, 나올 때는 같이 손을 잡고 나왔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서로 화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이 나무들에 비하면 아옹다옹하는 우리들의 인생사는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이 숲의 가운데는 제주도의 최고령 나무라는 수령 800여년의 비자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한 바퀴 돌며 우리들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비자림로의 삼나무 길


전날 밤에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창문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몇 번인가 잠이 깨었다. 그날 아침은 삼나무 길에 안개가 자욱했다.




성읍민속마을의 느티나무와 팽나무.


둘 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목들이다. 길가 양쪽에 말없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지다.

성읍마을 사람들은 옆을 지나가면 미소 짓고 붙잡고 하지만 나무들은 그저 말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 침묵이 반갑고 믿음이 간다.


11. 해안 지형


제주도는 약 200만 년 전의 대규모 화산활동에 의해 지금의 지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현무암과 지층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암석은 단순하겠지만 해안에서는 바닷물의 침식작용에 의한 다양한 지형이 우리들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번에 아주 일부밖에 보지를 못했지만 모두가 절경이라고 부를 만한 멋진 풍경들이었다.




마라도 해식절벽.


전형적인 해식절벽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여기서도 눈길을 끈 것은 바닷물 색깔이었다. 연초록의 맑은 파도가 검은 절벽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내며 부서지는 모습은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송악산 해식절벽

송악산은 제주도의 맨 남쪽에 불끈 솟아올라있는 오름이다. 꼭대기에 서면 남쪽으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다.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송악산을 찾거든 전망대에만 머물지 말고 뒤의 오름에도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깊은 분화구를 가진 날카로운 절울이오름을 만날 수 있다. 세찬 바람에 몸을 버티고 서서 아래를 보면 분화구가 빨아들일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돔베낭골 해식절벽


이곳도 수직으로 발달된 해식절벽이 잘 나타나 있다. 이웃에는 외돌개라는 침식 작용에 의한 바위가 있다. 그리고 이 절벽을 따라 길이 2km 가량의 산책로가 나있어 천천히 산보하며 바다 풍경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바다 색깔 또한 기막히게 예쁘다. 단체로 온 일본인 관광객이 바다를 향해 서서 “끼레이네!”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수월봉 해안지층


제주도에서는 용암이 굳은 현무암 바위덩어리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가끔은 이런 화산재가 쌓인 지충도 볼 수 있다.

수월봉 부근 해안절벽에서는 높이가 10m가 넘는 지층이 드러나 있다. 군데군데에는 화산탄이 박혀 있는데 당시의 화산 활동이 얼마나 격렬하고 활발했는지를 이 두꺼운 지층이 잘 말해준다.


12. 김영갑 갤러리


이 갤러리를 만든 김영갑 님은 제주도의 자연에 매료돼 1985년에 제주도에 정착해서 사진 작업을 해 오신 분이었다. 폐교된 분교를 인수해서 2002년에 이 갤러리를 만들었는데 작년 5월에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소박하고 작은 갤러리에는 님이 사랑한 제주의 풍경이 사진으로 남아서 우리를 감동시킨다.


사진도 좋지만 이 분의 글이 더욱 좋다. 그만큼 인생을 치열하고 진지하게 산 분이셨기 때문일 것이다. 갤러리에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사서 아내에게 선물했다. 책 표지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갤러리 안에도 이 분의 글이 사진과 함께 인용되어 있었다. 그 중의 하나를 옮겨 본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면 외로움과 궁핍함은 감수해야 한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즐기려면 무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즐거운 소일거리가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하루가 상큼하다. 몸만 움직이면 자연 속에 먹을거리는 무진장이다. 굶주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한 돈 걱정은 없다. 문제는 소일거리다. 365일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소일거리만 있으면 된다. 제주도이 속살을 엿보겠다고 동서남북 10년 세월을 떠돌았다. 그러고 나니 제주도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지, 제주 바다는 어느 때에야 감추었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지, 나름대로 최상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숲보다는 나무로, 나무보다는 가지로 호기심이 변해갔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려면 스물네 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스물네 시간 하나에 집중하고, 몰입을 계속하려면 철저하게 외로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최소의 경비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십년 세월을 견뎌낼 수 없다. 십년 세월을 견딘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을 내던져 아낌없이 태워야만이 가능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행착오를 통해 마음의 눈은 떠진다. 진짜는 두 눈이 아닌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심안은 간절히 원한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육신을 내던져 간절히 소망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린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이나, 바람 한 줄기 없는 날에도,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도 똑같은 장소에 간다.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누워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혼자서 바라본다. 그렇게 몰입한 후에야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주만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심안이 없으면 그저 무심히 지나친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친 것들 속에 진짜배기는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마음 편안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심안으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마음이 고요해져선 혼자 지내야 한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젊음은 온갖 유혹에 흔들린다. 생각을 하나로 모르려면 잡념이 없어야 한다. 한 가지에 몰입해 있으면 몸도, 마음도 고단하지 않다. 배고픔도, 추위도, 불편함도, 외로움도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에 취해 있는 동안은 그저 행복할 뿐이다. 몰입해 있는 동안은 고단하고 각박한 삶도, 야단법석인 세상도 잊고 지낸다.‘


13. 기타


이번 5박6일의 여행 경비로 110만 원이 들었다.


항공료 30만

숙박비 30만

렌트비 25만

식사등 25만


국내 여행이었지만 경비 면에서는 해외에 나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처음 제주도를 선택했던 것은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이 싫어서였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유 해외여행을 하기도 힘든 입장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된 선택이었다.


이번에 제주도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아내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여행조차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친 셈일 테니 아직 제주도에는 숨겨진 속살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 기대가 크다. 문제는 제대로 보는 눈이 나에게 있느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경이의 대상이 굳이 제주도뿐이겠는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놀라움과 경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평범해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고 기쁨의 대상으로 변할 수 있다. 마치 관광버스를 타고 둘러본 그저 그런 제주도에서 풀 한 포기, 산자락 하나가 다 고맙고 신기하게 보이게 변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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