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제주도 여행(1)

샌. 2006. 2. 15. 13:34

올해는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5박6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보면 25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담겨있다. 간단한 말로 나타내기 어려운 복합적인 의미가 25 속에는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새파랗게 젊었던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싸우며 함께 지낸 세월이 25년이었다. 함께 기뻐하고 꿈에 부풀었던 날들도 많았고,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던 날들 또한 무수히 많았다. 그런 세월들이 쌓여서 오늘에 이르렀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어찌 보면 결혼 생활 25년은 자식의 성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미 훌쩍 자라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세월이 주는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우리 부부 인생의 한 분기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매달리고 집착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쏟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곁을 떠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젠 훨씬 자유로워졌고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동안의 삶의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약간의 혼란기이긴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시기인 것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내의 지적대로 서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점이다. 제주도의 풍광에 빠져서 욕심을 부린 탓에 서로 간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여유를 갖지 못했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짜증을 부리고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사실 제주도를 선택한 것은 푹 쉬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바삐 돌아다니느라 여느 여행과 비슷해져 버렸다. 당시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아쉽다.


그 말은 그만큼 제주도의 매력에 빠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에 왔던 제주도는 관광버스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렌터카만 빌려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유명 관광지는 일부러 피했다. 대신에 우리가 보고 싶은 곳을 충분히 찾아다녔고, 대부분의 장소가 기대 이상으로 만족을 주었다. 아내나 나나 늘 감탄사를 달고 있어야 했다.


찍었던 사진을 중심으로 이번 여행을 대략 정리해 본다.

당시는 경이와 감동이었지만 뒤에 보니 사진은 현장감의 십 분의 일도 전해주질 않는다. 그래도 이번 아름다운 제주 여행은 이 사진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1. 하늘


비행기를 보면 늘 가슴이 설렌다. 낯선 땅으로 떠난다는 것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사는 일이 싱거워질 때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일상에서의 탈출은 마치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맞듯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준다. 우리 주위의 사물들을 다시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행기는 육중한 몸을 올려서 하늘을 난다. 날씨는 맑고, 하늘에서 본 우리의 겨울 산하는 아기자기하게 아름답다. 산과 들 사이에 사람의 마을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다. 이만한 고도에서도 길 위를 달리는 차가 보일 정도로 시야가 선명하다.


2. 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제주도 바다 색깔이었다.

바닷가를 지나다가 이 색깔 때문에 걸음을 멈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까? 옥, 비취, 에메랄드 등 이름만 아는 보석을 떠올려 봐도 이 색깔을 묘사할 수는 없다.

색깔은 해안에서의 거리에 따라서도 다르고, 시간에 따라서도 금방 변한다. 어떤 때는 검푸른 바다 위에 청록색 빛의 띠가 춤을 추기도 한다.




동쪽 해안도로의 세화리 부근 작은 어촌 앞 바다.


차를 세우고 바다에 섰다. 사진으로만 보던 남국의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뭐라 부를 수 없는 바다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바다가 이렇게 곱고 깨끗할 수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특히 제주도의 바다 색깔은 검은색 현무암 바위,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모래사장과 어우러져 더욱 돋보였다.



3. 한라산


한라산은 제주도의 얼굴이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은 시야에 들어온다. 한라산은 제주도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이다.




사계리 해안가에서 아침에 본 한라산.




성산포 도로변에서 바라본 한라산.


흐렸던 날이 개고 흰 눈을 머리에 인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피어있는 유채꽃이 봄을 재촉하고 있다.

이 유채꽃밭에는 아줌마 한 사람이 지키고 앉아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천 원씩 받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아줌마에게 혼나기도 했다.


한라산을 보니 산에 오르고 싶어졌지만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돼 포기했다. 약 10년 전에 가족과 함께 겨울 한라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백록담까지 갔지만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눈보라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밑에서는 괜찮았던 날씨가 올라갈수록 험해지고 바람도 세차졌다. 그래도 그때의 제주도 여행 하면 힘들었던 한라산 등산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올 봄 철쭉이 필 때는 꼭 다시 한라산 등산을 하리라 다짐을 한다.


4. 용눈이오름


이제 제주도 하면 오름의 섬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에는 오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오름에 가까이 가서 올라보니 오름이야말로 제주도를 대표하는 풍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주도에는 약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여러 군데의 오름을 찾아서 올랐다. 그 중에서도 용눈이오름, 새별오름, 절울이오름, 정물오름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까 직장 동료가 꼭 용눈이오름에는 가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또 하나에 다랑쉬오름이 있었는데 거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용눈이오름은 한라산 동편에 있는 복합형 오름이다. 멀리서 볼 때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있는 형상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생긴 모양이 부드럽고 멋져서 사진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김영갑 갤러리에도 이 오름 사진이 많았다.


이 오름의 해발고도는 247m인데 실제로는 약 10여 분 정도면 꼭대기에 이를 수 있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남동쪽 방향의 조망이 시원하다.

올라간 때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가만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밑에서는 바람도 없이 조용했는데 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기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몸이 날려갈까 봐 정상에 있을 수가 없었다. 용이 힘차게 하늘을 날고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용눈이오름에서는 바람, 새별오름에서는 불, 정물오름에서는 비를 만났는데 묘하게도 바람, 불, 물이 오름 이름이 뜻하는 것과 일치해서 재미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제주도를 가게 될 때면 제일 먼저 찾아갈 곳이 오름들이 될 것 같다.


5. 들불축제


정월 대보름을 맞아서 마침 들불축제가 새별오름에서 열렸다.

들불축제는 이번이 10회째라는데 가축 방목을 위해 해묵을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재하기 위해 예부터 내려오던 풍습을 현대적으로 관광 상품화한 축제라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불구경이 최고라는 말도 있는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추위와 혼잡함에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불구경만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오름 전체가 붉은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다. 세찬 바람이 불어서인지 오름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있는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다. 긴 준비와 기다림이 아쉬울 정도였다. 또 하나는 엄청난 연기가 앞을 가로막아서 불을 보는데 무척 방해가 되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중간에 카메라 셔터가 잠겨버려 뒤에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들불 이상으로 뒷 마무리의의 불꽃놀이 또한 장관이었다.


불이 꺼지고 돌아가는 길은 최악의 북새통이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좁은 출구로 빠져나가느라 서로 뒤엉켜버려 차 안에서 한 시간 이상 꼼짝하지 못했다. 몸은 녹초가 되어서 밤 10시가 지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둘은 다음날까지도 헤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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