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불 지피기

샌. 2005. 2. 1. 19:29

오늘이 올 겨울에서 가장 추웠다고 한다. 서울 지방은 -12도까지 떨어졌고, 낮에도 -7도로 무척 추었다. 매일 보이던 길거리의 노점상들도 오늘은 철시했다.

 

모두들 춥다고 하니까 예전에 읽었던 ‘불 지피기’라는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알래스카의 설원을 여행하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온 영하 100도 가까이 되는 혹한과 만난다.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수십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가는 도중에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영하 100도의 추위는 어떤 것일까? 소설에서 주인공이 침을 뱉으면 땅에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얼어버린다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공기마저 얼어붙어 사위가 고요한데 온기를 가진 한 생명체에서 나온 액체가 순간에 얼어버리는 소리를 상상해 보며 몸을 떨었었다. 만약 오줌을 눈다면 오줌 줄기가 그대로 고드름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손과 발이 마비되고 얼굴이 감각을 잃는다. 불을 피우려 하지만 손가락이 굳어져서 성냥불을 켜지도 못한다. 뛰어보아도 별 효과가 없이 이내 쓰러진다.

 

지구상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이 몇 도인지는 모르지만 영하 100도의 상태는 지금 우리의 감각으로는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에 비한다면 영하 10여도 되는 오늘 날씨를 춥다고 하면 너무 호들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감 기온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자꾸만 안락한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현대인이 느끼는 추위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지구 생명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태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그렇다.

 

만약 어느 순간 태양의 불이 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빛이 사라진 암흑의 세계에 이어서 지구는 우주 냉장고 속에 들어간 듯 급속히 차가워질 것이다. 대기는 힘을 잃고 가라앉으며 지표면 부근의 온도는 영하 270도까지 떨어진다. 영하 270도는 현재 우주 공간의 온도이다. 대양도 얼어붙고 지구는 절대 암흑, 절대 정지에 가까운 죽음의 세계로 변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자랑하던 문명은 이미 그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다른 생명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살아남을 생명체가 하나도 없을까? 지금 큰 바다 밑의 판 경계 부분에서는 지하에서 엄청난 양의 열이 화산 분출하듯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엄청난 고압에 빛도 없고 뜨거운, 인간의 입장에서는 지옥과 다름없는 그곳에도 해양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양이 사라졌을 때 최후의 승자는 바로 이 생물체들일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이 생물들은 지열이 존재하는 한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화를 거듭해서 나중에는 지상으로 진출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은 이 생명체는 지구의 주인이 되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 문명을 건설할지도 모른다.

 

춥다고 하니까 이렇게 엉뚱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힘든 계절이지만 그러나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 맛이 난다. 어린 시절 지금에 비하면 빈약한 집과 옷이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이유는 서로의 따스했던 마음의 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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