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선생이 서강대에서 강의했던 라틴어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선생에 대해서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선생은 2003년에 이태리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회법학 석사 과정을 최우등으로 수료했고, 다음 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었다. 로마 로타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법과 함께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마쳐도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 비율은 5% 정도라고 한다.
<라틴어 수업>은 간단한 라틴어 설명과 함께 라틴어를 사용한 옛 로마제국의 풍습이나 일상을 흥미롭게 소개해 준다. 겸하여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내용의 강의라면 아무리 라틴어가 어렵더라고 인기를 끌 만하다.
유럽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라틴어가 들어있다고 하는데,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학문을 하는 기본자세를 가르치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것 같다. 라틴어를 배우고 나면 다른 언어는 쉽게 마스터할 것처럼 보인다. 라틴어는 성 구분이 명사만 아니라 형용사와 부사에도 있고, 어미변화도 엄청 복잡하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는데 남성 명사, 여성 명사가 있어서 무척 혼동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보니까 라틴어는 독일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예 배워 볼 엄두를 못 내겠다.
글을 읽어보니 선생은 반듯한 모범생 스타일인 것 같다. 천주교 신부님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공부의 신(神)이라는 호칭을 듣는 배경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극기의 의지와 성실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겠다.
<라틴어 수업>은 28개의 강의로 나누어져 있는데 라틴어 경구가 제목으로 달려 있다. 그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Ego sum operarius studens(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선생은 30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한순간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공부는 단발적인 행위로 결과를 낼 수 없고, 마라톤 같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한다.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된다고 선생은 말한다.
"저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싫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과연 어떤 노동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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