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씨가 쓴 진보 비판서다. 문재인 정권 때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묶었다고 한다. 진중권 씨는 한때 진보 논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극우 논객'(?)으로 돌변해서 당황했었었고 지금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한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다.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인지 논리적인 짜임새는 좀 엉성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상황을 다룬 내용도 상당 부분 나온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과 진보 진영의 비판이 중심이다. 진중권 씨가 집중적으로 까는 것은 진보가 집권하면서 등장한 팬덤 정치다. 팬덤(fandom)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은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하기에 정치에서는 진영 논리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정치에 팬덤이 등장한 것은 노무현 시대 때의 노사모지만,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서 더욱 심화되고 편향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 겉으로는 진보를 내세우지만 실제는 부패한 기득권층이 된 뻔뻔함, 낡은 운동권 하위 문화에 사로잡힌 민주주의가 없는 당 운영, 통합도 소통도 없는 편 가르기, 내로남불 등을 지적한다. 다 뼈 아픈 비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패배했기 때문에 이런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진보의 몰락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라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중권 씨가 어떤 계기로 우파 논객이라는 이름까지 듣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에는 일부 단초가 나온다. 문재인 정권에서 여러 차례의 뜨악한 경험이 누적되어 결국은 반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결정적 계기는 신년 기자회견을 할 때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라고 한 발언이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갈라치기 정치 행태를 보여서 절망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한다. 그 뒤로 이어진 문재인 정권의 '광기'에 맞서 싸우기로 한 모양이다. 그의 주장에 일부는 동의하지만 상당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같은 잣대로 윤석열 정권을 겨누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지만 얼마나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조국은 진보의 아킬레스건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진중권 씨는 오로지 한 방향에서만 사태를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중권 씨가 말하는 팬덤 정치의 해악은 조속히 극복해야 한다. 야나 여나 마찬가지다. 진영/부족 정치의 폐해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팬덤은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라는 사고방식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무엇보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여든 야든 정권만 잡으면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다. 요사이 윤석열 정권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문재인 정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정치인들에게는 저와 제 집단의 이익만 있지 국민은 안중에 없다. 욕심에 눈이 멀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정치판에서 냉철한 이성이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정치인이나 대중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을 심판하는 투표 역시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팬덤과 편가르기 정치를 낳고 독선으로 이어진다. 독선이야말로 몰락의 단초라고 생각한다. 이는 진보만 아니라 보수도 마찬가지이고, 윤석열 정권 역시 권력에 취한 탓인지 이상 징후가 여러 군데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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