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11]

샌. 2010. 3. 24. 08:38

해골이 말했다.

"주검에게는 위로는 군주가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으며

사시사철의 수고로운 일도 없이

천지를 따라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비록 왕의 즐거움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오."

장자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염라대왕에게 부탁하여

그대의 몸을 부활시키도록 하여

그대의 골육과 피부를 만들고

보모처자와 마을의 친구들에게 돌려보내 준다면

그대는 그렇게 하겠소?"

해골은 심히 불쾌한 듯 콧대를 찡그리며 말했다.

"내 어찌 왕보다 더한 즐거움을 버리고

인간의 수고로움을 반복하겠소?"

 

촉루曰

死無君於上 無臣於下

亦無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 樂不能過也

莊子不信 曰

吾使司命

復生子形

爲子骨肉肌膚

反子父母妻子 閭里知識

子欲之乎

촉루深빈축알 曰

吾安能棄南面王樂

而復爲人間之勞乎

 

- 至樂 4

 

장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삐쩍 마른 해골을 보았다. 장자는 말채찍으로 두드리며 왜 이런 꼴이 되었냐며 조롱하다가 해골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때 해골이 꿈속에 나타나 죽은 자의 말을 들어보라며 사후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죽은 자의 세계에는 위로는 군주가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으니 자유롭고, 지상의 수고로운 일도 없으니 즐겁기만 하다고 말이다. 장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사람들은 삶에 집착한다. 또 삶에서도 안락에 매달린다. 삶의 안락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몸을 고되게 부린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삶을 속박하는 굴레가 되는 것은 알지 못한다. 두려움이 있는 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는 어렵다. 이별의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다고 말한다. 이승에서의 삶과 안락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장자가 죽음을 좋아하고 삶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삶이 좋다면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은 삶으로서의 세계가 있고, 죽음은 죽음으로서의 세계가 있다.생사일여(生死一如)이며, 삶과 죽음은 존재의 한 양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걱정하지 말아라. 여기서 장자가 사후세계의 즐거움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 없는 미망을 각성토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해골의 즐거움은 장자가 항상 말하는 '무위의 즐거움'에 다르지 않다. 해골은 삶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사람만이 삶의 참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간다. 얼마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도 장자의 무위와비슷한 뜻이라고 생각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장자는 말한다. "내 어찌 왕보다 더한 즐거움을 버리고, 인간의 수고로움을 반복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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