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그리움 / 이용악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하얀 설원을 기차가 달리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백무선'(白茂線)이라는 이국적인 철길 이름에다 함박눈 속을 느릿느릿 달리는 화물차의 영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시인의 그리움은 간절하긴 하지만 구차하진 않다. 비록 한밤중에 잠이 깨어 잠 못 들지만 고향에 내리는 함박눈을 연상하는 그 그리움은 낭만적이고 따스하다.어떤 분이 백석과 이용악의 시를 가리켜 북방의 '통 큰 서정'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도시에 눈이 내리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처음에만 잠시 환호할 뿐 그 뒤부터는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쏟아지는 함박눈이 말 그대로 '복된 눈'이 되는 땅,그곳이 그리워진다. 함경도 어느 산골에는 그런 땅이 아직 남아있을까. 한 키가 넘도록눈이 전설처럼 쌓이고, 하얀 눈 속에 며칠씩 축복처럼 갇히는 그런 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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