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26

남자의 탄생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남자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유소년기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인성 형성 과정이 펼쳐진다. 부제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다. 요사이 젊은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통적 한국 남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똑같이 닮으면서 그 과정이 반복된다.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더해져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된다. 지은이는 한국 남자의 특징을 '동굴 속 황제'라 부른다.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과 하의 위계질서로 구분된 공간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어머니의 배타적인 사랑..

읽고본느낌 2015.11.11

우리가 남이가

우리 민족은 정이 많다고 한다. 따스한 인정은 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유산이다. 내 어릴 때만 보아도 집에 찾아온 객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식사할 때라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곡식 한 줌이라도 꼭 주어서 보냈다. 가난했지만 나누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물이 들면서 이런 공동체 의식은 폐쇄적으로 변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주고받기로 바뀌었다. 울타리 밖은 남이며 경쟁 대상으로 배척된다. 패거리 문화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끼리끼리 똘똘 뭉치고 집단의 목표에 개인은 매몰된다. 이런 집단은 가족을 내세우는 게 특징이다. "우리가 남이가"도 같은 부류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해 옆 반의 급훈이 '우리는..

참살이의꿈 2015.03.09

10월 23일

어제 10월 23일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큰일의 결말 두 개가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났다. 묘하게도 시간까지 겹치면서 더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일 모두 연초에 시작하여 똑같은 십 개월을 필요로 하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끝을 맺었다. 우연이라면 참 묘한 우연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행히 둘 다 결과가 좋았다. 하나는 축하할 일이건만 다른 쪽이 걸려 밝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야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동안의 드러내지 못한 고뇌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특히 아내가 더했다. 불면증이 심해져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한 해를 돌아보며 파란만장했다는 말을 쓰는데 그동안은 실감할 수 없었다. 그만큼 편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안 그렇다...

길위의단상 2014.10.24

논어[102]

선생님이 집에 계실 때는 고분고분하시고, 부드러우셨다.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 述而 4 공자의 면모를 다시 보게 된다. 밖에서는 엄격하고 위엄있게 행동했더라도, 집에 들어와서는 자상하고 안색이 활짝 피셨다는 얘기다. 보통 남자라면 반대가 아닐까? 나를 돌아보더라도 부끄럽다. 가정은 화평(和平)의 기운으로 밝아야 한다. "집에 계실 때에는 고분고분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남녀를 불문하고 꼭 새겨둘 행동이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이런 데서 드러난다.

삶의나침반 2014.09.14

부모 된 죄

짐승과 달리 인간 부모는 평생을 자식 지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시키고 내보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자식 나이 스물을 넘기면 어엿한 성인이 되었건만 부모 덕 보지 않고 독립하려는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뼈 빠지게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집 장만해 주고, 손주 봐주고, 허리가 꼬부랑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다가 재수 없으면 자식 사업 자금 대주느라 노후 자산까지 말아먹기도 한다. 드물지 않게 보는 경우다. 자식은 결혼시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시작이다. 이는 시대적 상황 외에 부모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자식을 그렇게 키워 왔으니 말이다. 손주 봐주고 자식 보살피는 일에서 노년의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특별하게 그런 사..

길위의단상 2014.07.07

행복한 부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행복한 가정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결혼 3년차라는데 요즘에 이런 젊은이들도 있구나, 무척 경이로웠다. 참 건실한 선남선녀라고 생각하기에 내용을 소개한다. 행복한 부부의 7가지 비밀 1. 부부끼리 존댓말을 쓴다. 우리 부부는 존댓말을 쓴다. 연애 때부터 서로 존댓말을 써왔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고, 서로 말다툼을 하더라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화가 났을 때는 반말을 종종 하기도 하는데, 만약 평소에 반말을 했더라면 싸울 때는 더 험한 말이 오고가지 않았을까? - 나도 아내와 존댓말을 쓰고 싶은데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몇 번 노력해 보았지만 이젠 포기 단계, 이 젊은 부부가 정말..

참살이의꿈 2014.07.0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6년간 기른 자식이 병원의 잘못으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는 그런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대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료타네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며 행복하다. 아버지는 엘리트 회사원이고, 6살 케이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다. 그러나 친자를 데려오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류세이는 전혀 다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탓으로 자유분방하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료타는 아버지 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는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기억난다.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정의 아이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들이 바라는 ..

읽고본느낌 2014.01.24

행복한 가정을 위한 교황의 권고

지난 연말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연설하며 특별히 가정의 행복을 강조했다. 교황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은 다음 세 말을 자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첫째, "부탁합니다." 이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감사합니다." 이 말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준다. 셋째, "죄송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다.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고백이다. 이 세 마디 말은 건강한 가정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자주 하고 들을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반면에 군림하고, 배려할 줄 모르고, 상대 탓만 한다면 병든 가정이다. 나 자신도 반성 되는 바가 많다. 가족에게 '부탁, 감사, 죄송'..

참살이의꿈 2014.01.06

미친 나라

어느 중견 회사에 다니는 조카로부터 회사 얘기를 가끔 듣는다. 조카를 보면 우리나라의 회사원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실감한다. 거의 매일 야근이어서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고, 심지어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휴일에도 출근한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본인도 말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회사 동료들도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랬다가는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듣는 범위에서 이 회사 사원들은 거의 현대판 노예에 가깝다. 법에 규정된 근로 조건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특수한 몇몇 회사를 제외하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근무 여건이 비슷할 것이..

참살이의꿈 2012.12.18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자식을 다 출가시키고 둘만 남은 지도 1년이 돼간다. 전보다 삶이 단출하게 변했다. 각자 가정을 꾸려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니 자식에 대한 염려는 많이 줄어들었다. 집이 썰렁하게 느껴지던 단계도 지나고 이젠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산다. 두 노인만 있으니 어떤 날은 종일 절간에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주말에 가끔 찾아온다. 와서 자고 갈 때도 있다. 두 식구에서 네 식구로 불어나면 집안이 소란해진다. 처음에는 활기가 있고 좋지만, 나중에는 부산스러워서 피곤하다. 속마음으로는 인제 그만 돌아갔으면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알아차릴 듯 말 듯하게 눈치만 줄 뿐이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도 남녀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우리 부부의 경우를 보면 특히 그렇다. 아내는 오매불..

길위의단상 2012.10.21

자식의 은혜

"당신은 전생에 자식한테 빚을 엄청나게 졌는가 봐." 종종 아내에게 농으로 하는 말이다. 그만큼 아내는 자식 보살핌이 극진하다. 출가한 두 딸이건만 아직 품 안에 있듯이 이런저런 염려가 가득하다. 반찬 하나라도 더 해 주지 못해 마음 아파한다. 아마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수도 없이 딸 집을 왕래했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집착인데, 아내 말로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건 부모 역할의 반도 못 된단다. 어찌 되었든 못 말리는 모성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자보다 강하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으면 제 살 길은 제가 알아서 가도록 지켜보면 될 텐데 간섭과 보살핌이 그치지 않는다. 시집장가 보내도 마찬가지다. 부부다툼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자식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볼 때 ..

참살이의꿈 2012.07.24

사랑의 지옥 /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짖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닫혀 운다 - 사랑의 지옥 / 유하 어렸을 때 이런 장난 많이 했다. 그때는 호박꽃 속에 갇힌 꿀벌이 재미있었다. 그게 시인의 눈을 거치니 사랑과 결혼의 비유로 되었다. 정말 그럴듯하다. 사랑과 결혼이 뭘까? 불빛으로돌진하는 부나비처럼 남녀는 자신의 짝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는 짝짓고 가정을 만들어 자식을 낳는다. 왜 꼭 그래야 하지? 지상의 피조물로서 유전자의 명령..

시읽는기쁨 2012.03.19

이 시대의 광기

이 며칠 자꾸 생각나서 심란해지는 사건이 있다. 고3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이나 방에 방치해둔 채 함께 지냈다. 그러면서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고 수능 시험도 봤다. 이해되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패륜 범죄다. 그러나 뒷사연을 들어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를 살해하기 전날에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골프채로 12시간 동안 맞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아들도 정상이 아닌 가정이었다. 종기가 곪아 터지듯 결국은 비극적 파국으로 끝났다. 별거 중이었던 이 학생의 아버지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가 7살 때 씻겨주려고 종아리를 걷었는데 매 자국이 보여 놀라 옷을 벗기니 엉덩이가 시퍼렜다."라며 "애 엄마가 매로 다스려야 한다며 홍두깨로도 때리고, 물건을 던져 애 ..

길위의단상 2011.11.27

소용없다

박목월 시인의 부인은 생전에 자식들이 속상하게 할 때마다 부채에 써놓은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부채에는 '소용없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자식들이 말썽을 부릴 때면 부채를 펴서 자식들에게 보이고 스스로에게도 자경(自警)의 의미로 삼았던 것이다. 그분의 아들인 박동규 선생의 회고로는 어머니가 부채를 펴 보이면 조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을 어찌할까? 그러나 무엇이건 지나치면 병이 된다.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다. 아이가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탯줄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내는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병원 약이 아니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자식이 ..

참살이의꿈 2011.11.03

둥근 발작 /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 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기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

시읽는기쁨 2011.09.25

내가 제일 부러운 건

내가 제일 부러운 건 형제간에 우애 있는 집이다. 그런 집을 보면 질투가 날 정도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집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명절이나 잔치 등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싫다. 다른 사람 대하기에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집안의 내력인지 선대 때도 그랬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형제간에 왕래가 없었다. 만나면 친척 사이에 싸우고 큰소리치는 걸 자주 보며 컸다. 친가나 외가 쪽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형제 사이가 남만도 못하다. 이런 집들은 내 탓이오, 보다는 주로 남 탓을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가 어쩌면 혈연관계인지 모른다. 가까..

길위의단상 2011.09.14

가족 / 진은영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 가족 / 진은영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혼자라면 가족으로부터 아무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결혼한 사람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의무와 책임을 동반한다. 죽을 때까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정이 따스한 보금자리만은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말 못하고 견뎌야 하는 아픔이 있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상처는 더 쓰리고 아프다. 유아기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평생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모자식 사이에 또는 형제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가..

시읽는기쁨 2010.11.03

고등어를 금하노라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좋은 책이란 차 한 잔 앞에 두고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같이 웃고, 울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도 그런 책이다. 저자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고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인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당당한 삶, 또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부러웠다. 책에는 부부관계, 자녀관계, 환경문제, 과거청산, 시대의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며 반성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표지에 실린 네 가족의 소개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인지 그려질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

읽고본느낌 2009.12.11

충성

요사이 할 일 없이 집에서 지내면서 출근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러나 모성애라 부를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지나치다 싶은 면도 있다. 숫컷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지극함이다. 직장에 다니는 두 아이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 아내는 밥과 도시락을 차려 놓고 대기한다. 본인이 아무리 아파도 자식들 밥 준비만은 거르지 않는다. 어쩌다 제대로 못 먹고 가게 되면 그렇게 속 상해 할 수가 없다. 또 날씨에 따라 옷 챙기는 것도 신경 쓰고,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미리 눌러준다. 그리고 버스를 잘 탔는지 베란다에 나가 확인까지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두 아이를 그렇게 보내야 새벽 일과가 끝..

길위의단상 2009.02.16

아내가 결혼했다

어렸을때 고향 마을에는 두 부인을 데리고 산 친구 아버지가 있었다. 작은집을 따로 둔 게 아니라 한 집에서 두 여자가 같이 살았는데 두 사람의 사이도 좋았다.전형적인 일부다처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철저한 유교 신봉국가인 조선에서 능력 있는 남자들은 알게 모르게 둘 이상의 여자를 거느리고산 게 사실이다. 일부일처제는 여자들에게만 족쇄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현모양처나열녀에 대한 칭송과 교육은여성은 오로지 가정과 남편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기재들이 아니었을까.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았지만 가끔씩은 회의를 해보게 되는 것 중에 일부일처제가 있다.젊어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이 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사랑하..

읽고본느낌 2008.11.01

어버이날의 단상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는 제왕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지 부모의 언행은 아이의 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부모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폭군이 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의 내적 상처 가운데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작게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에서부터 크게는 원한에 이르기까지 부모와 자식 관계는 사랑이 바탕으로 깔려있으면서도 상처 또한 주고받는 관계다. 도리어 부모이기 때문에 그 상처는 예민하게 느껴지고 심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런 부정적인 면에 대해 의식적으로 숨기려 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왜곡된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한 개인의 성격적 특징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으로 부모로부터 각인된 것이다. 콤플렉스나 심리적 갈..

길위의단상 2008.05.08

하숙생

아내는 가끔 날 보고 하숙생이라고 놀린다. 집에 들어와서는 별로 하는 말도 없이 그저 주는 밥 먹고 방에 들어가 혼자 있다가 소식도 없이 자 버리니 아내 입장에서는 하숙생 한 사람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겠다. 정말 어떤 날은 아내와 한두 마디밖에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방에 여유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거의 각방살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부가 떨어져 자는 것이 이상했는데 지내고 보니 그것이 훨씬 더 편하다. 그건 표현은 안하지만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이 멀어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은 하지만 말만 그럴 뿐 밤이 되면 ‘마이 웨이’를 간다. 각방살이의 핑계를 대자면 잠자는 습관의 차이와 내 코골이 때문이다. 아내는 밤 12시를 넘겨 한두 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반..

길위의단상 2008.03.20

妻城子獄

집안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다. 힌두교에서는나이 오십이 넘으면 임서기(林棲期)라고 해서 처자를 떠나 숲속에서종교적 명상을 하며 산다고 한다. 처자 부양을 벗어난 남자에게 허용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집안의 굴레에 갇혀 마누라 엉덩이나 만지고 아이들 재롱이나 보면서 지내서는 큰 공부나 깨달음은 불가능하다. 석가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다. 그래서승려들이나 성직자들, 수도자들이 독신을 고수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가정과 수도 생활을 동시에 이루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꼭 수도 생활에만 국한시킬 필요없이 살다 보면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을지라도 가족의 반대나 생계에 매여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을남자에게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고, 여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자 입장..

사진속일상 2006.08.21

비 와서 흔들리는 날

저기압이 다가오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해진다. 스스로를 어떻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아 버린다.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이러저리 방황한다.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헝클어져 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이것은 나만의 독특한 현상인 것 같다. 예전에는덜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 아내는 다시 사춘기로 돌아가느냐며 착각하지 말라고 놀리지만 결코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이런 날은 종일 헤드폰을 끼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다. 돌아보니 옛날에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하던 때, 비 오는 날이면 퇴근길에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가고는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왔다. 그때는 차창에 쏟아지는 ..

사진속일상 2006.06.08

부모는 파업중

아침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중년 부부가 말 안 듣는 자녀들 때문에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녀들의 나쁜 행실을 고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 보다가 되지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집안 일 보이콧 파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얼마나 말썽을 부렸으면 이럴까 공감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음이 씁쓰레하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모가 자신의 10대 자녀들의 게으름을 뜯어고치겠다고 집에서 나와 파업을 벌이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시드니 모닝 헤랄드 인터넷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터프라이즈에 살고 있는 전업주부 캐트 버나드(45)와 공무원인 할란 버나드(56) 부부는 자신들의 두 자녀 벤자민(17)과 키트(12)가 집안일에 너무나 비협조적으로 ..

길위의단상 2004.12.10

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동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가정 / 박목월 아버지가 그립다. 이젠 찾아볼 길 없는 아버지의 위엄과 권위가 그립다. 지금 아..

시읽는기쁨 200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