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버이날의 단상

샌. 2008. 5. 8. 13:59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는 제왕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지 부모의 언행은 아이의 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부모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폭군이 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의 내적 상처 가운데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작게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에서부터 크게는 원한에 이르기까지 부모와 자식 관계는 사랑이 바탕으로 깔려있으면서도 상처 또한 주고받는 관계다. 도리어 부모이기 때문에 그 상처는 예민하게 느껴지고 심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런 부정적인 면에 대해 의식적으로 숨기려 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왜곡된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한 개인의 성격적 특징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으로 부모로부터 각인된 것이다. 콤플렉스나 심리적 갈등의 근원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사랑과 희생이라는 가족애 뒤에는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함을 부정하지 못한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상상속의 존속살해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에 따라 한 개인의 일생은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이 부모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려고 집착하는 이면에는 어두운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지 않지만 내면세계는 어지럽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부모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를 하게 된다.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서 부모의 흔적을 읽으며, 자신 또한 부정적으로 보았던 부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때 부모님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의 체험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많은 부분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이런 화해의 단계를 거치며 사람들은 응어리를 풀고 성숙한 관계로 나아간다.


내 마음 속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다. 부모님에 대해서 고맙고 존경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안쓰럽고 서운한 복합적인 것인데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 감정이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문득문득 내뱉는 말 속에서 아내는 내 속의 앙금을 눈치 채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 자신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만한 나이가 되고 보니 부모님은 부모님 그대로 인정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성격과 가치관대로 열심히 사신 것이다. 사실 내 부모님만큼 열심히 사신 분들도 드물다. 지금의 나는 생전의 아버님의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버님은 존경받으실만한 분이셨다. 어쩌면 나에게는 아버님을 능가할 수 없다는 열등의식, 혹은 질투의식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모든 원인은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마음이 지어낸 부모님의 허상에 매달려 허깨비놀음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묘한 것은 부모님에 대해 느꼈던 서운함을 지금 내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듯 나 역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놀고 있을 뿐이다. 인생이란 짓궂은 장난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큰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너나 나나 우리 모두는 또한 한량없이 불쌍한 존재들이다. 부모님도 불쌍하고 자식도 불쌍하고, 그렇게 느끼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버이날에 느끼는 쓸쓸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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